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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3대 불탑이 들어서 있는 나모 붓다(Namo Buddha)사원
 네팔의 3대 불탑이 들어서 있는 나모 붓다(Namo Buddha)사원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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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사내 모한의 농막에서 이틀째. 이른 아침, 마당 한가운데의 작은 돌 위에는 어제처럼 꽃과 함께 뭇 짐승들을 위한 밥이 놓여있고 모한의 어머니는 이층 창문에 얼굴을 내밀고 먼 산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어머니의 시선이 머문 곳에 오래된 불교 사원이 있다며 모한이 덧붙여 말한다.

"오늘은 저기 불교 사원에 가보는 게 어떻습니까? 나모 붓다, 네팔에서 아주 유명한 불교 사원입니다."

마을에서 산길을 타고 2~3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릎이 시원찮은 나로서는 1시간 이상 산길을 걷는 것은 무리였다. 그 사실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배낭을 농막에 보관해 놓고 여권과 몇 가지 귀중품을 챙겨 그의 모터사이클 뒷좌석에 앉았다. 나모 붓다 사원으로 향하는 산길은 생각보다 완만했다. 두런두런 애기를 나누며 산책하듯 오를 수 있는 부담없는 길이었다.

그렇잖아도 네팔에 머물면서 불교 사원을 찾아가고 싶었다. 나는 네팔에 관한 사전지식이 없었기에 어디에 불교사원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찮게 모한 가족과 인연이 닿게 되면서 불교 사원을 찾아가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네팔에서 손꼽히는 나모붓다 사원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찾게 된 네팔 나모붓다 사원

나모붓다 사원에 세워진 불탑은 카투만두의 스와암부나트와 보드나트 불탑과 더불어 네팔의 3대 불탑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나모붓다 사원에 세워진 불탑은 카투만두의 스와암부나트와 보드나트 불탑과 더불어 네팔의 3대 불탑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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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호랑이에게 몸을 내준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가 얽혀 있는 나모붓다 사원의 불탑, 스투파.
 굶주린 호랑이에게 몸을 내준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가 얽혀 있는 나모붓다 사원의 불탑, 스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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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모붓다(Namo Buddha) 사원 입구에는 불탑이 모셔져 있었다. 모한 말로는 사연이 깊은 불탑이라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나모붓다 사원에 세워진 불탑은 카투만두의 스와얌부나트와 보드나트 불탑과 더불어 네팔의 3대 불탑으로 유명했다.

모한은 불탑 앞에 들어서 있는 작은 성소로 안내한다. 무수한 버터 등불과 함께 온갖 공양물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성소 벽면에 어느 성자가 호랑이에게 팔 한 짝을 내 주는 부조가 새겨져 있었다. 그가 부조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아주 오래전 이 지역에 왕국이 있었습니다. 그 왕국의 왕자가 굶주린 호랑이에게 온몸을 내 주었다고 합니다. 그 왕자가 바로 전생에 부처님이었다고 합니다. 나모붓다 스투파는 전생이 붓다였던 그 왕자의 유골을 모신 것입니다."

나모 붓다 명상 교육센터 홈페이지에는 이곳 불탑의 유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놓고 있다. 아주 오래전 카브레 계곡이라 불렸던 이 지역을 통치하던 마하라타라는 왕이 있었다. 그에게는 현명하고 자비로우며 용맹스러운 왕자, 마하사티와가 있었다. 어느 날 왕자는 숲 속에서 병든 어미 호랑이를 만났다. 병들어 사냥을 하지 못하는 어미호랑이는 갓 태어난 새끼 호랑이들과 함께 아사 직전에 이르러 있었다.

어미호랑이는 왕자 마하사티와에게 하소연했다. "당신의 팔 하나만 내주세요, 배고파 죽을 지경입니다" 왕자는 고민 끝에 팔 하나 없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다 여겨 팔 한 짝을 보시했다. 팔 한 짝으로 부족한 호랑이는 다시 부탁했다. "당신의 몸을 준다면 정말로 고맙겠습니다, 그 업보로 훗날 당신은 부처가 될 것입니다." 자비심 넘치는 왕자는 굶주린 새끼들을 보면서 자신의 몸을 보시했다.

뼈만 남은 왕자의 시신을 발견한 마하라타 왕은 슬픔에 잠겨 그 시신 위에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언덕저편에서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탑 하나가 연꽃처럼 피어났다. 그 자리에 세워진 불탑이 현재의 스투파, 나모붓다 불탑이라고 한다. 또한 호랑이에게 몸을 던져 보시한 왕자 마하사티와는 붓다의 수많은 전생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붓다의 전생 이야기는 본생경(本生經) 혹은 본생담(本生譚)에 기록하고 있다. 본생담은 팔리어로 '자타카'라고 한다. 자타카는 본래 '태어나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러다가 전의(轉義)되어 '이승에 태어나기 전까지의 전생 이야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본생담은 선행과 공덕을 쌓아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선인선과(善因善果)의 윤회이야기다. 본생담은 고오타마 붓다로 태어나기 전의 수많은 전생을 담아내고 있다. 국왕, 귀족 때로는 바라문, 고행자, 상인이었거나 코끼리, 사자, 원숭이, 새, 토끼, 말, 사슴 같은 동물로도 태어나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오타마 싯다르타가 붓다가 된 것은 단지 현생에서 이루어진 수행의 결과가 아니라 전생에 무수한 공덕과 인연을 거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생담에서 언급하고 있는 붓다의 전생에 대한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다. 불교의 핵심사상은 자비다. 본생담에서 말하고 있듯이 뭇 생명들은 붓다의 또 다른 모습이다. 삼라만상 모든 것이 부처 아닌 것이 없다 했듯이 삼라만상 모든 것이 붓다처럼 존귀한 존재임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삼라만상 모든 것이 붓다 아닌 것이 없다면 어찌 뭇 생명들을 함부로 하겠는가.

저 산 아래 어딘가에서 나모붓다 사원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고 있을 모한의 구순 노모가 떠올랐다. 평생 육식을 멀리해가며 매일 아침마다 붓다를 향해 꽃을 바치고 뭇 생명들을 위해 밥 한 술을 떠놓고 있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구순 노모에게 있어서 뭇 생명들은 붓다나 다름없는 귀한 존재일 것이었다.

황금빛 지붕을 올린 나모붓다 사원에는 의료시설을 갖춘 스님들의 교육기관인 명상교육센터가 들어서 있다.
 황금빛 지붕을 올린 나모붓다 사원에는 의료시설을 갖춘 스님들의 교육기관인 명상교육센터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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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탑, 스투파가 있는 자리에서 조금 더 산길을 타고 올라가면 정상에 황금빛 지붕의 나모붓다 사원(Namobuddha Monastery, 혹은 트랜지 타시 장강 사원 THRANGU TASHI YANGTSE MONASTERY)이 나온다. 이 사원에는 명상 교육센터가 들어서 있다. 의료시설을 갖춘 이곳 4층 건물의 명상 교육센터에서는 영어, 네팔어, 수학, 컴퓨터, 의학 등의 일반교육 과정과 더불어 불교에 관련된 명상, 경전,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9개 학년, 250여 명의 승려들의 배움터인 이곳의 모든 교사들 또한 승려라고 한다.

나모붓다 사원으로 들어서는데 어디선가 깊고 낮은 소리가 가슴으로 파고든다. 나는 점점 그 그윽한 울림에 빠져든다. 그 알 수 없는 악기의 소리가 만트라 읖조리는 소리와 뒤섞여 들린다. 온몸을 전율케 하는 그 소리에 이끌려 가파른 계단을 단숨에 타고 오른다.

고요하면서도 웅장한 힘을 지닌 울림이 내 몸과 영혼을 휘감는다. 마치 천상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다. 나는 그 소리의 진원지 앞에 서서 저절로 머리 숙여 합장을 한다. 부처님을 모신 사원 안에서는 20여 명의 승려들이 만트라를 반복해서 읖조리고 있었고 그 옆에서 두 명의 승려가 티벳 불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기다란 망원경 모양의 악기 '둥첸'을 불고 있다. 나의 존재감이 그 울림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존재는 누구인가.

나는 사원 안에서 공부하는 승려들 사이에서 한없이 낮은 자세로 엎드려 절을 올린다. 내가 절하는 대상은 사원 가운데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 아니다. 나를 한없이 낮은 자세로 임하게 만들어준 존재, 둥첸을 불고 있는 승려와 만트라를 읖조리는 승려들에게 올리는 절이다. 내게 한없는 평화를 가져다준 그들이야말로 살아있는 부처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수업을 마친 승려들이 다른 학습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수업을 마친 승려들이 다른 학습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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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안으로 함부로 들어선 개가 동자승들과 놀고 있다.
 사원 안으로 함부로 들어선 개가 동자승들과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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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첸 소리와 독경소리가 잦아질 때까지 사진 찍기를 까마득히 잊은 채 사원 한구석에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사원 복도 벽면에는 환경오염으로 망가져 가는 지구를 살리자는 생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사원 복도 안으로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들어선다. 그제서 나는 사진기를 꺼내든다. 저만치 동자승 몇몇이 개를 불러 장난을 친다. 사원 마당도 아닌 사원 건물 안으로 들어선 개와 동자승들이 친구처럼 어울려 놀고 있는 모습이 나모붓다 사원의 넉넉한 자비심으로 다가온다.

모한과 함께 사원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사원 옆은 붓다의 진언을 새겨 걸어놓은 오색 천, 타르촉(룽타, 風馬)으로 뒤덮여 있다. 그 아래 작은 매점이 보인다. 거기서 모한과 함께 짜이를 시켜 놓고 있는데 매점 안에서 한국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먼 곳, 그것도 우연찮게 찾아간 평화롭기 이를 데 없는 불교사원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반가웠다.

매점 안에서 한국의 젊은 여성이 환한 웃음으로 반긴다. 이곳 매점에 딸려 있는 방에서 한국인 네 명이 민박을 하고 있다고 한다. 티벳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는데 몇 마디 얘기를 나누기도 전에 학습할 시간이라며 방으로 들어선다.

사원에서 울려 퍼졌던 그 웅장하면서도 잔잔한 울음의 감동을 한없이 누리고 싶어 몇날 며칠이고 머물고 싶어졌다. 길라잡이로 나선 모한에게 물었다. 그는 며칠 동안 머무는 것은 어렵다며 하루 정도는 함께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손자를 안고 있던 매점 주인 할머니가 머물 방이 없다고 한다.

"결혼 생활에 충실해야지 뭘 그리 돌아다니세요"

나모붓다 사원 옆에는 붓다의 진언을 새겨 걸어놓은 오색 천, 타르촉(룽타. 風馬)으로 뒤덮여 있다.
 나모붓다 사원 옆에는 붓다의 진언을 새겨 걸어놓은 오색 천, 타르촉(룽타. 風馬)으로 뒤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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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인도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지었던 혜초 스님을 떠올리게 했던 한국의 비구니 스님. 꼿꼿한 자세로 앉아 뭔가를 부지런히 필사하고 있다.
 신라시대의 인도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지었던 혜초 스님을 떠올리게 했던 한국의 비구니 스님. 꼿꼿한 자세로 앉아 뭔가를 부지런히 필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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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뒤로 하고 매점을 나오는데 한국의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저만치서 꼿꼿하게 앉아 무엇인가 적고 있었다. 반가운 인사말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 청정해 말을 건네는 것은 물론이고 차마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나는 저만치서 비구니 스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인도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지었던 신라의 혜초(慧超) 스님을 떠올렸다.

1300여 년 전 인도 불교 유적을 순례하고 카슈미르,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일대를 답사했던 혜초 스님 또한 낯선 이국땅 어딘가에서 저 비구니 스님처럼 꼿꼿한 자세로 부처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는 불경을 필사했을 것이었다.

필사를 하고 있는 비구니 스님 저만치에서 또 다른 한국의 비구니 스님 한 명이 향불을 피우고 있었다. 스님과 눈이 마주쳤다. 합장을 하며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담담하게 인사를 받는 비구니 스님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사원이 너무 좋네요, 우연히 오게 됐는데 사원에서 나오는 소리가 너무 좋아요."
"그렇죠..."
"예 그 소리에 이끌려 저기 저 민박집에서 하룻밤 묵으려 했는데 방이 없다네요."
"한국 분들이 공부하고 있을 겁니다."
"조금 전에 뵀어요,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도 좀 옆에 끼어서 듣고 싶었는데..."
"한 곳에서 공부에 매진해야지 이것저것 둘러보면 공부가 안돼요, 한 가지에 열중하셔야지..."

비구니 스님이 훈계하듯 툭 쏘아 붙였다. 가슴이 벌에 쏘인듯 따끔했다. 대체 뭔 공부에 매진하라는 것인가. 한 가지에 열중하라는 소리는 또 뭔가. 당황스러워하는 내게 스님이 매몰차게 물었다.

"결혼하셨어요?"
"예. 결혼했죠. 결혼 생활하면서도 배우는 게 많더군요."
"뭘 배울 게 있다구..."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공부가 있겠지요."
"그런 건 공부가 아녀요. 결혼하셨으면 결혼 생활에 충실해야지 뭘 그리 돌아다니세요."
"애들도 다 컸고 해서 결혼생활 20년 만에 이제 처음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요. 세 달 가까이 인도와 네팔을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배울 게 많더군요."
"처사님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여기는 게 문젭니다."
"예?"
"부인한테 허락 받고 돌아다니는 겁니까?.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다가는 평생 공부 못해요."

비구니 스님의 말투는 갈수록 태산이었다. 그녀는 마치 입시를 앞둔 청소년에게 집에서 공부나 하지 뭘 그리 싸돌아다니고 있냐는 식으로 내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당신처럼 화기운 많은 마누라에게 대들다가 쫓겨났다고 말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속에서 부르르 화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비구니 스님이 대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다고 큰 스님이 동자승에게 호통치듯 한단 말인가.

'스님이야 말로 절간에 가만히 앉아 공부나 하지, 무엇 때문에 네팔까지 흘러들어왔나. 승복을 입었다고 모두를 가르치려 드는 심보는 또 뭔가. 신통력 있는 무속인처럼 만난 지 오 분도 채 안 된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가르치려 하는가. 한국의 스님들은 왜 중생들의 말을 들어주기보다는 툭하면 가르치려 드는가. 승복을 걸쳤다고 건방을 떨어도 되는가.' 이런 말을 함부로 쏟아 놓고 싶었다지만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조금 전까지 기분이 아주 좋았는데 내 마음자리는 금세 뒤틀리고 말았다. 이게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자리의 실체였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어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자리는 따지고 보면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비구니 스님의 성품과는 상관없이 순전히 내 문제였다.

독경 읊는 자세로 여유만만하게 비구니 스님의 호통을 들어줬어야 했는데 비딱하게 그녀를 공격하려 했던 것이다. 누군가 나를 공격할 때 스폰지처럼 흡수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공격적인 누군가를 흡수할 수 있는 마음자리가 없었다. 아이들과의 대화에서는 얼마든지 받아들이고 있는데 왜 무엇 때문에 나이 먹은 성인들과의 대화에서는 화가 치밀어 오를까.

그녀와 더 이상 대화를 나눠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런 마음 상태로 대화를 하다가는 그녀에게 '이런 싸가지 읎는...' 어쩌구 해가며 욕지거리라도 퍼붓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불쾌한 마음을 추스리고 스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아이구 말이란 게 참 그렇네요,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내 평화로운 마음자리는 언제 어느 때고 산산조각이 날 수 있는 얇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비구니 스님이 그런 나를 일깨워 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공격한 이유는 무엇일까. 긴 머리에 긴 수염을 기른 거지같은 행색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수행자에게 결혼을 통해 배울 것이 많다느니 했으니 그녀 또한 마음이 상했을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를 공격적으로 가르치려 했던 그녀의 모습은 내 모습이기도 했다. 그녀가 뜬금없이 나를 공격한 것은 내 안에 공격적인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살아오면서 저 비구니 스님처럼 누군가를 알게 모르게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가르치려 했을 것이었다.

비구니 스님에게서 돌아서는 저만치에 히말라야 설산이 흐릿하게 펼쳐져 있었다. 네팔 사내, 모한 말대로 날이 좋으면 나모붓다 사원 앞산 저만치에 우뚝 솟아 있는 히말라야의 모습을 훤히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갈등과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사에서 잠시 고개 돌리면 평화가 있다. 자비의 사원 나모붓다 저만치로 평화롭게 둘러서 있는 히말라야가 그렇게 침묵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말은 소통의 도구이면서 또한 소통을 가로막는 갈등의 도구인 것이다.

때로는 모든 것을 내주고 스스로 침묵하고 있는 저 히말라야 설산처럼 침묵이 최고의 선이 될 수 있다. 말이 앞서는 말법시대에서 침묵은 또 다른 행동이다. 말없이 뭇 생명들에게 밥을 내주는 모한의 노모가 그러했고, 말없이 호랑이에게 온몸을 내준 붓다의 전생, 마하사티와 왕자가 그러했다. 또한 말없이 청정한 자세로 뭔가를 필사하고 있던 한국의 비구니 스님이 그러했듯이 말없는 침묵의 행동은 누군가를 한없이 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자비심이 될 수 있다.

나모붓다 사원 앞산 저멀리 희긋하게 보이는 히말라야. 모든 것을 내주고 스스로 침묵하고 있는 저 히말라야 설산처럼 때로는 침묵이 최고의 선이 될 수 있다.
 나모붓다 사원 앞산 저멀리 희긋하게 보이는 히말라야. 모든 것을 내주고 스스로 침묵하고 있는 저 히말라야 설산처럼 때로는 침묵이 최고의 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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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네팔 나모붓다 사원, #스투파, #둥첸, #한국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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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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