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교에서의 자연선택. 생존과 도태, 그 사이에서.

16.09.28 11:46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필자는 고등학교에서 생명과학을 가르치는 임용 11년차 교사이다.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다윈의 진화론'을 소개하며 '자연선택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연선택, 또는 적자생존이라고도 하는 다윈 진화론의 매커니즘은, 변화하는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개체만이 살아남아 번식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학교에서 나는 선택되는 개체인가, 도태되는 개체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곧잘 이야기한다. 이제는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인해 변화할 미래를 대비해야할 시대라고. 언론에서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없어질 직업군을 나열하기도 하고, 우리가 가진 메타인지를 무기삼아 그래도 인류가 인공지능보다 더 효율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위로하기도 한다.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이 '쉬운 것은 어려워질 것이고, 어려운 것은 쉬워질 것이다'라고 했던가. 컴퓨터에게 쉬운 암기, 집중, 정보처리 등의 기능에 인류가 맞춰질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에게는 어렵지만 인류는 해낼 수 있는 '소통', '공감', '배려', '협력' 등의 역량을 채워나가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고 공감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대학입시'라는 명목 하에 더 많은 교과 지식을 암기하기 바라고, 논리적 추론 능력을 빌미로 더 나은 '정보처리' 능력을 갖추기를 강요한다.
가르치는 교과의 수행평가를 '소통', '공감', '문제인식', '협력' 등의 키워드로 구성하여 진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기능'만을 장착하여 문제에 접근할 뿐이었다. 경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우리의 아이들은, 진정으로 함께하는 '친구'를 갈망하는 여유가 없다. '친구'가 '사치'인 아이들에게는 자신만의 색깔과 의견도 없다. 설사 있더라도 다름을 인정받고 더불어 지내기에는 학교 내 생활이 녹록치 않다. 다른 친구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관심이 없다. 그저 늘 해왔던 대로 정해진 하나의 목표(goal)를 향해 나아갈 뿐이다. 목표에 도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친구는 과감히 버린다. 생존 경쟁에서 그는 그저 도태된 하나의 개체일 뿐이다. 나의 수행평가에는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답이 열려 있는 문제를 학생들은 접해본 기회가 거의 없다. 그 혼란을 이용하여 나는 학생들이 조금 더 깨어있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때문에 끊임없이 자극하고 질문한다. 하지만, 나의 이상적 바람은 현실의 장벽 앞에 산산이 부서진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직면한 환경은 정답이 있는 세상이다. 정답을 맞추는 사람과 맞추지 못하는 사람으로 구별되는 세상이다. 그들은 그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한다. 어떻게 해서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자연계에서는 치열한 경쟁 결과 생존한 개체의 번식이 보장된다. 하지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치열하게 경쟁하여 생존해도 안전과 번식이 보장되지 않는다.
곧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다. 교육부는 '핵심역량'을 키워주라며 더 이상 교과 내용을 주입식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했다. '역량 중심'으로 학생들이 '창의력'과 '통합적 사고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우라'는 말이다. 여기서 '돕는 이'는 교사이고, 교사들은 스스로 '자기 역량'을 '잘' 갖추어서 아이들에게 통합적이고 창의적인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라는 팁(tip)도 제시한다. 이미 많은 교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역량'을 갖추고 진정한 '스승'이 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교사들은 학교 현장에서 스스로를 발전시킬 물리적‧정신적 여유를 갖기가 어렵고 승자독식의 입시제도는 변하지 않는다. 결국 현실적으로 교사들이 직면한 환경은 '입시'이고, 그로 인해 요구되는 '기능'은 더해만 진다.
나는 교육 현장의 자연 선택에서 도태되는 교사일까. 고3 교실에서, 사회 현상에 관심 갖기를 당부하고 똘레랑스를 강조한다. 지식의 탑재보다 공감의 여유가 더 필요한 시대에 행복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실천하기를 기대한다. 모두 허울 좋은 말 뿐. 학생들은 수학 가형 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어보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 관심 있는 교과목을 통한 지적 희열을 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등급이 잘 나오는 과목을 골라 수 천개의 문제를 풀며 그 유형을 외운다. 며칠 전이었던가. 올해 치러지는 수능의 제2외국어 선택과목은 아랍어가 약 70%를 차지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럴 수가 하는 소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역시나. 하는 슬픔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학교가 사라질 것이라 하였던가. 아니다. 학교는 인공지능에게 어렵다는 그 정서적 부분을 충족할 수 있는 공동체의 장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인류가 가진 인프라 중 절대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지금과는 분명 다른 형태의 학교. '함께 하는 배움의 공간'이다.
매번 입시 경쟁 속에 자신의 가치를 상대적인 잣대로만 비교하여 살아가는 학생들 속에서 외롭고 힘들게 나만의 길을 갈 지라도 나는 자연선택으로 도태되지 않고 싶다. 미래를 위한 '다양성'의 보험으로 한 몫을 하고 싶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많은 '다양성'들이 더 큰 힘을 내어 견뎌낼 수 있도록 나도 한 자리 단단히 차지하고 싶다.


태그:#교육, #입시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