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포스터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을 보는 내내 슬프고 분했으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답답했다. 내가 영화에서 본 것은 불시착을 하고도 155명의 생명을 무사히 구해냈다는 기적의 '미담'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을 구해내고자 애를 쓰고, 자기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 하던 사람들과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해 내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이었다. 너무도 부러웠다.
 
설리는 2009년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US 항공 1549편의 기장이다.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뉴욕을 떠나 샬롯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조종하게 된다. 하지만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떼와 충돌하면서 양쪽 엔진이 고장이 났고, 비행기는 추력을 잃는다. 아직 궤도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출발한 공항으로 회항하려 시도하였으나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아 허드슨강에 불시착을 한다. 탑승객 전원 무사 구조라는 기적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결코 훈훈하지 않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사고가 난 후에서야 시작한다.
 
집요한 조사 

"설리.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까? 승객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가능성은 없었나요?"
 
설리는 사고 이후 지속적으로 추락의 악몽과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자 하는 사고조사 위원회의 집요한 조사에 시달린다. 미국의 공권력은 영웅을 앞에 두고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의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혹시라도 조종실 안에서 판단 착오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파악하고자 한다. 그 조사 과정은 영화를 보는 관객인 나까지도 짜증스럽게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다시는 동일한 사고가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 말이다.
 
인간의 기억은 참으로 믿을 것이 못된다. 분명히 제대로 된 선택으로 실수 없이 상황을 판단했다고 자신감을 지녔던 그였으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집요하게 반복되는 질문 공세에 자신의 선택을 의심한다. 사실은 점차 흐려지고, 혹시라도 자신의 실수로 승객을 위험에 빠트린 것은 아닌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중대한 사고가 아니라 하더라도, 의심을 갖고 추궁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누구라도 이런 두려움에 빠질 수 있다. 그러니, 설리는 계속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불시착한 비행기의 기장들이 살아남아서, 그들과 함께 조종실의 대화를 같이 들은 것이 처음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영화의 결정적 장면인 조종실의 대화 공청회 장면에서 조사위원들의 발언이다. 왜곡되어버린 '의심'의 기억으로 힘들어하던 조종사들은, 공청회를 통해 그들이 사고가 벌어졌던 208초 동안의 대화를 같이 듣는다. 그들은 결국 '확인된 사실'을 통해, 마음을 가득 채웠던 '의심'을 밀어내게 된다. 모든 대화를 듣고 난 후, 설리는 휴식을 요청하며 부기장과 잠시 대화를 나눈다.
 
"괜찮은가? 나부터 얘기하지. 고맙네. 정말 멋지게 잘 해 주었어. 자네가 그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잘 대응해 준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었어. 고맙네."
 

결국,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적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종실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해 낸 조종사들이 있었고, 여객 칸에서 승객들을 안전하게 관리하며 위기를 넘기게 한 승무원들이 있었다. 비행기를 공항으로 회항할 수 있도록 애를 쓰는 관제사가 있었고, 영하의 강물에 불시착한 비행기에서 긴급 탈출한 승객들을 구해낸 출퇴근 선박의 선장과 승무원들이 있었으며, 긴급 상황을 인지하고 곧바로 현장에 출동해 준 전문 구조대원들이 있었다. 게다가, 육지로 나온 승객들을 제 때에 구해준 구급대원들과 적십자 구호팀이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국민을 구하기 위한 '위기 대응 매뉴얼'대로 모두를 구해냈다. 여기서 기적은 신의 뜻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모두의 일을 제대로 해 낸 인간들의 뜻이었다.

시스템이 부재한 대한민국

 지난 9월 24일 박주민 의원이 경주를 찾았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또 한 명의 희생자를 떠올렸다.

지난 9월 24일 박주민 의원이 경주를 찾았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또 한 명의 희생자를 떠올렸다. ⓒ 이창희


 
난 포항에 살고 있다. 최근 잇따른 강진이 발생한 경주에서 채 30킬로미터가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태어나서 처음 겪은 위험한 상황은 우리 모두를 극심한 두려움에 몰아넣었다. 위기 상황에 맞닥뜨리자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허비했고,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 몰라 허둥지둥했으며, 결국 각자도생만이 답이라며 자조했다.
 
어느 정도 상황이 안정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나를 두렵게 하는 건 이번 사태를 통해 나를 안전하게 구해줄 수 있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안심하라"는 말만으로는 국민을 안심시킬 수 없음을 이 나라는 절실하게 느끼고 있을까?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 묘사했듯이, 기적은 신의 역할이 아니라 제대로 동작하는 인간들의 시스템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에게 그런 시스템이 있기는 한가?
 
지난 9월 24일 토요일, 경주에서 박주민 의원의 강연회가 있었다. 박 의원은 "세월호는 끝나지 않았다. 관심을 가져달라"며 호소했으나, 국민의 관심만으로는 세월호 문제를 풀 수 없음은 명확하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에게 생명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진실을 얼른 덮어버리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명확해지지도 제대로 끝을 맺지도 못했다. 그리고 바로 지난 일요일, 국가는 또 한 명의 소중한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았나. 평범한 농민이었던 백남기 선생 말이다.

오늘날의 영화읽기 설리:허드슨강의 기적 대한민국의 위기관리 시스템 시스템에 의한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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