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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남기 농민 추모 및 박근혜 정부 규탄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장례식에 모인 촛불 "살인정권 규탄한다"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남기 농민 추모 및 박근혜 정부 규탄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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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7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 고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기 위한 촛불문화제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과 퇴근 후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장례식장 인근을 가득 메웠다.

전날(25일) 백남기 농민이 숨지자 경찰은 서울대병원을 겹겹이 둘러쌌다. 법원이 부검 영장을 기각하기 전까지 경찰은 떠나지 않았고, 시민들은 장례식장을 지켰다. 26일 오전 6시 법원의 기각에도, 경찰이 영장을 재청구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실제로 경찰은 27일 영장을 재청구했다). 26일 저녁, 장례식장 인근은 다시 분노와 공포의 분위기가 조성됐다.

문화제 취재를 위해 사람들 틈 사이에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 옆자리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았다. 은색 깔개 위에 쪼그리고 앉은 할머니는 때론 손뼉을 치고, 때론 구호에 맞춰 주먹을 흔들었다.

아들 잃은 어머니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26일 오후 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백남기 농민 추모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26일 오후 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백남기 농민 추모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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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였다. 말소리가 스피커 고성에 묻힐까 봐,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눈가의 주름이 더 짙어질 만큼, 환한 미소가 돌아왔다.

1987년 6월 9일 아들이 경찰의 최루탄을 맞기 전까지, 배씨는 여느 엄마들과 똑같은 엄마였다. 그 날, 그 사건이 이날 배씨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있게끔 만들었다.

그때도 그랬다. 1987년 7월 5일 새벽, 이한열의 숨이 끊어지자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이번 백남기 농민이 숨졌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땐 부검 영장을 법원이 발부해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날 시신을 가져가려던 경찰은 학생들의 저항에 막혀 물러서야 했다.

이후 가족·교수·학생 대표가 입회한 가운데 부검이 진행됐고, 최루탄 파편이 뇌를 손상시켜 이한열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최루탄을 맞고 숨진 사람이 있는데, 쏜 사람은 없었다. 당시 검경 모두 최루탄을 쏜 전경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진상이 드러나지 않으니 책임자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김수길 서대문경찰서장은 직위해제 됐다가 3개월 후 복직했다. 이후 승진도 했다.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30년이 지나도 여전한 외침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의 부검영장 재신청이 이뤄진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밤을 샌 백남기대책위와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의 부검영장 재신청이 이뤄진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밤을 샌 백남기대책위와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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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이번에 숨진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이 외치고 있는 말이다. 물대포를 맞고 317일 사경을 헤매다 숨졌는데, 검경은 부검을 통해 사인을 알아야겠다고 주장한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명예롭게' 은퇴했고, "정치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은 1987년에도 배씨가 외쳤던 말이다. 하지만 그 소망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그 두 가지가 이뤄지지 못했으니 재발 방지 대책이 나왔을 리 만무하다.

그렇게 또 백남기 농민이 죽었고, 배씨는 길거리에 나왔다. 최루탄이 물대포로 바뀌었을 뿐이다. 배씨는 "마음이 아파 어제(25일)도, 오늘(26일)도 여기에 나왔어요"라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의 아내를 만나서는 "힘내시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단다. 이런저런 질문을 건넸지만, 배씨는 그저 "진상을 밝혀야죠. 그래야 가신 분의 명예도 회복되죠"라는 말을 반복했다.

문화제가 끝나고, 배씨가 악수를 건네 왔다. 손을 붙잡은 뒤 자리를 떠나려는데, 기자의 귀에 대고 대뜸 배씨가 말했다.

"저는 생각이 많아요. 옛날부터 지금까지 생각이 많은 사람이에요. 또 이렇게 사람이 죽었어요. 그래..."

또 이렇게 사람이 죽었다.


태그:#백남기, #이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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