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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이자 제작자이자 <경인방송(90.7MHZ)>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백가마)' 디제이(DJ)인 백영규(65)씨를 지난 9월 5일 오후에 만났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매일 오후 4시부터 진행하는 생방송을 해야 하기에 남구 학익동에 있는 <경인방송>에서 만났다.

백씨는 1978년에 데뷔해 '슬픈 계절에 만나요' '잊지는 말아야지' '우리 순이' 등의 히트곡을 남긴 7080세대의 대표적 싱어송라이터다. 그러나 한동안 티브이(TV) 브라운관에서 그를 못 봤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유명해져 방황의 시간이 길었다는 그는 현재 제작자로서 삶도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인천의 노래 활성화 추진단' 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의 노래와 삶, 방황과 재기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인천을 주제로 한 노래 190여 곡 발굴

싱어송라이터 백영규씨
 싱어송라이터 백영규씨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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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는 '인천 가치 재창조'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4월 '인천의 노래 활성화 추진단'을 발족했다. 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 관장, 김종현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김학균 인천예총 인천문화회관 관장, 이배원 한국연예예술인협회 인천지회장, 윤두율 인천민예총 음악분과위원장, 김종문 필그림 앙상블 대표 등, 총11명이 단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추진단은 '인천의 노래' 10~15곡을 선정해 음반을 제작한 후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예정이다. 시는 10월 15일 인천시민의 날을 기념해 문학경기장에서 개최하는 행사에서 상징적으로 한두 곡을 부를 예정이고, 이를 시민들에게 전파할 계획이다.

"인천을 테마로 한 노래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저도 깜짝 놀랐으니까요. 노래를 찾는 과정이 보람 있고 자부심도 생깁니다. 처음에는 예술가인 제가 회의를 하는 구조에 들어간다는 게 낯설어 거절했어요. 그런데 음악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제의에 함께했죠."

그런데 백씨는 '인천의 노래' 찾기를 추진단이 생기기 전부터 시작했다. 인천에서 태어나 부평서초등학교를 다니고 동산중·고교를 졸업한 백씨에게 인천과 관련한 노래를 발굴하는 것은 당연해보였다.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다 제작자로 나선 그는 서울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미사리에서 라이브카페를 운영하다가 2007년부터 인천에 정착했다. 정착하자마자 디제이로 활동했다.

"매주 목요일 인천 노래 특집 코너를 제가 요구해 편성했어요. 사실 알지도 못하는 인천 노래를 1시간이나 편성한다는 것 자체가 배짱이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히트곡도 나왔어요."

시 문화팀장과 같이 진행하는 이 코너는 매주 20여 곡을 소개한다. 1940년대 이후의 곡을 찾아보니 190여 곡이나 된다. 낯선 노래로 방송을 어떻게 꾸려갈지 걱정이었지만 시민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단다.

"청취자들이 찾는 곡도 상당합니다. 핸드폰 뒷자리 번호가 '3459'인 주부가 있는데 음악 마니아예요. 그 분이 열렬한 애청자인데 많은 곡을 찾아 저희에게 알려줍니다."

사람냄새 나는 방송하고 싶어

"서울 활동과 미사리 라이브카페를 정리하고 2007년에 연수구 동춘동에서 라이브카페를 시작했어요. 그해 대학 동문이기도 한 장우식 <경인방송> 본부장이 찾아왔어요. 처음엔 창작활동에 더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 디제이 제의를 안 받았죠. 장 본부장이 '인천의 문화를 외면하실 겁니까?'라고 반 협박을 하는데 호기심도 생겨 하기로 했어요. 사실 그전에도 디제이 제의가 있었는데 안 한다고 했다가 인천에서 라이브카페를 개장하면서 인천으로 돌아온 느낌으로 받아들였던 거죠."

카페를 개업하고 처음에는 손님이 넘쳐났단다. 동문들의 격려방문과 구경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디제이를 하면서 카페를 안 나가고, 당시 라이브카페가 사양 산업이 돼 7년 만에 문을 닫았다.

"방송 프로그램 이름을 제가 지었는데 사람 냄새가 나는 느낌의 이름을 원했어요. 방송을 하면서 몇 년은 오버도 하고 이중적인 제 모습을 보았죠. 그걸 없애려면 사람냄새를 풍겨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인격이 성숙된 느낌이에요. 청취자들을 리더라고 생각하니까요. 특히 복귀하고 방송에서 사람냄새가 더 짙어진 느낌입니다."

백씨는 2007년부터 방송하면서 1년에 한 번씩 방송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2014년 어느 날 아침 못 나간다고 통보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방송을 중단했다. 그리곤 3개월간 창작에 몰입했다. 밥 먹고 노래만 만들었던 시간이었는데 무려 20곡이나 만들었다.

10개월 후 방송에 복귀한 후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용하면서 청취자들과 호흡하고 있다. 방송을 10여 년 하면서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았다.

"몇 년 전 한 청취자가 키우는 강아지가 아픈데 병원에 데려갈 돈이 없다고 연락했어요. 치료를 못해 유기견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다른 청취자가 치료비를 주겠다고 해, 감동을 줬죠. 

저희 프로그램 이름이 '백가마'잖아요. 한 청취자가 쌀 100가마를 모으자는 취지로 100가마가 아닌 '쌀 1000가마 모으기 운동'을 제안했어요. 쌀을 모았는데 택배로 부치거나 방송국으로 직접 들고 오는 사람도 있었고, 대량으로 사주는 사람과 현금으로 참여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청취자들이 운동에 참여했죠. 모은 쌀을 연수구 임대아파트 주민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장학금을 3~4년간 모아 학생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언더그라운드의 실력 있는 가수를 뽑아 '동창회'라는 브랜드로 콘서트를 했다. 부평문화사랑방과 부개문화사랑방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당시 박윤배 부평구청장의 협조로 음향과 조명을 지원받고 송창식 등 유명가수를 초청해 공연했는데 성공이었다. 장학금을 꽤 모았다.

제작자, 인생에서 최고의 경험
   
싱어송라이터 백영규씨.
 싱어송라이터 백영규씨.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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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스물일곱에 데뷔한 백씨는 '의외의 용감성' 덕분에 가수가 됐단다.

"군대 다녀와 대학 졸업하고 데뷔했는데 당시에는 늦은 나이였죠. 그때는 기타를 못 치면 간첩일 정도로 누구나 통기타를 칠 때였어요. 대학 1학년 때 학과 대표로 축제에 나갈 사람을 뽑는데 얌전했던 내가 손을 들었어요. 나한테 의외의 용감성이 있더라고요. 그게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그 후 '순이 생각'을 부른 데모 테이프가 지인의 소개로 아세아레코드사로 들어갔고, 가요계에 입문한 겁니다."

나오는 곡마다 연거푸 인기절정이었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백씨는 유명인의 삶이 버거워 방황했다. 공백은 길어지고 대중은 그를 잊었다. 그러다 제작자로 재기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그를 가수 출신의 첫 음반 제작자라고 말한다.

"1984년이에요. 나를 포함해 네 명이 옴니버스로 만든 앨범인데 욕심 없이 만든 가장 순수한 앨범입니다."

12곡을 수록한 첫 앨범은 백씨가 모두 작사·작곡했다. 그 이듬해는 그가 제작한 김세화의 '아그네스'가 담긴 음반이 인기를 얻었다.

"제작을 한다는 건 돈도 돈이지만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거라고 봅니다. 사실은 '내 나이 50~60세에 누가 내 음반을 만들까' 생각했는데 그게 맞았던 거죠. 성공해서 만든 게 아니라 예전의 경험이 있어서 지금 음반을 만들 수 있게 된 겁니다. 제작은 인생에서 최고의 경험이었습니다. 그 경험으로 디제이도 하게 됐고요."

백씨는 청취자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청취자가 하루 DJ가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실제 다운타운에서 일하던 사람이 나왔는데 백씨는 그가 아까워 매주 월요일 4부를 맡겼고, 그 프로그램의 이름을 '추억의 신포동'이라고 지었다. 자신이 젊은 날 놀던 곳이기도 한 신포동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었다. 2011년에는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를 타이틀로 '추억의 신포동'을 포함해 세 곡으로 싱글 앨범을 냈다. 올해는 가수 아라가 부른 '추억의 신포동2'를 제작하기도 했다.

백씨를 인터뷰한 날은 백씨가 자신의 싱글 미니앨범을 마지막으로 작업하는 날이었다. '술 한 잔'이 타이틀곡이고 '세상이 보인다' '내 고향 대동호'까지 세 곡을 수록했다. 그 앨범이 조만간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타이틀곡인 '술 한 잔'의 첫 장면은 해고된 남편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는데 아내가 위로하는 장면이에요. '세상이 보인다'는 제목 그대로 좀 건방지게 썼어요. '내 고향 대동호'는 백가마에서 '노랫말 한번 써보실래요?'라는 프로그램에서 청취자 대상으로 가사를 공모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뽑힌 가사에 제가 곡을 붙여 완성한 노래입니다."

여전히 왕성한 창작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는 창작이야말로 '자신을 지켜주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창작은 내 마음의 건강을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마음이 넓어지고요. 가사를 쓸 때 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면 못 씁니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하고 소통하고, 또 그 사람한테 배우는 거죠. 창작은 나를 그냥 나이 먹는 할아버지가 아닌,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게 지켜줍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백영규,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 #경인방송, #추억의 신포동, #슬픈 계절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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