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언제 마지막으로 말해봤는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입에 올려본 적 있는가? '부모님'만큼 익숙한 단어건만 우리는 선생님을 잊고 살 때가 참 많다.

2016년 KBS 대표 단막극 드라마스페셜의 출발을 이끈 '빨간 선생님'은 교사와 제자의 이야기다. 1985~87년 시대상을 중심으로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우리에게 각인시킬 만큼 제목과 내용에서 메시지가 일치하는 드라마다.

압박받는 시대 '빨간 책'이 전한 메시지  

드라마의 줄거리는 이렇다. 1985년 교감앞잡이이자 학생들 사이에서 선생 취급도 받지 못하는 교사 태남(이동휘 분)은 엄청난 필력의 빨간 책 '장군 부인의 위험한 사랑'을 발견한다. 사람들 몰래 태남이 버린 책을 순덕과 친구들도 읽게 되고 그들은 책 내용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책방을 아무리 뒤져도 후속편이 나오지 않는 상황. 이를 기다리다 못해 순덕은 직접 2편부터 쓰기 시작한다. 태남은 순덕의 글을 몰래 읽는 팬이 되고 이 책은 은밀하게 유명해진다.

문제는 이 책이 이적 표현물로 찍혔다는 것이다. 당시 '장군(전두환)'을 불륜도 못 막는 무능한 인물로 그려냈다는 것. 전국적인 금서가 된 빨간 책의 원작자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 찾아 나선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둔 순덕은 강력한 용의자로 찍힌다. 태남은 순덕을 몰래 도와주고 숨겨주다 결국 막을 수 없게 되자, 자신이 원작자라고 밝히고 조용히 선생을 그만둔다.

불명예 퇴진한 태남은 학급 단체 사진에서도 얼굴이 사라진 선생이 되고 만다. 하지만 순덕은 태남이 자신을 도우려고 학교까지 그만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간이 흘러 1987년, 시대는 뒤바뀐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는 대학생이 된 순덕은 서울 재수학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는 태남을 찾아온다. 그리고 뒤늦게 그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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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드라마는 다양한 내용을 전달한다. 소재는 야한 소설을 담은 '빨간 책'이지만 그 함의는 간단하지 않다. '빨간 책'의 내용이 장군 부인의 불륜을 그렸다는 점에서 당시 지도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오해를 불렀고, 그런 이유로 아이들이 호기심에 읽는 책들이 정치적 금서로 정해질 만큼 시대는 엄했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순덕이지만 그의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사상에 의심을 거두지 않는 안기부의 모습 또한 의미심장하다. 학생들의 소지품 검사는 옳지 않다고 바른 소리를 하는 젊은 신임교사를 두고 '왜 그런 말을 하냐'고 권위로 찍어 내리는 교감의 모습 역시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작가는 '빨간 책'을 활용해 유쾌하고 흥미롭게 드라마를 이끌어가지만 그 안에 깊은 메시지를 담았다. 제목에 '빨간'을 넣으면서 단어에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내용이 진행될수록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아울러 당시 시대상을 풍자적으로 표현해 다른 의미로 엄혹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OST로 발매된 적절한 배경음악, 이동휘의 맛깔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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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이나 배우들의 연기력 면에서도 '빨간 선생님'은 시청자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제작진은 드라마 중간, '시선을 멈추게 하는' 풍경을 그려내면서 눈을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또한 극 중 극인 '장군 부인의 위험한 사랑'을 표현하면서도 영화 <밀정>이 연상되는 기차의 모습이라던가, 저택 풍경까지 세심하게 담아냈다.

배경음악 또한 눈에 띄었다. 억압받던 욕구가 해소되는 상황에서 퀸의 'Under Pressure(억압 하에서)'를 삽입했고, 태남이 순덕이 몰래 쓴 책을 읽다 걸려 이를 던지는 장면에서 영화 <미션>의 경건한 OST가 흘러 나온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아울러 남혜승 음악감독이 드라마를 위해 만든 배경음악도 OST로 출시될 만큼 완성도 높았다. 에이프릴 세컨드가 드라마를 위해 작곡한 '그리워하네'도 적재적소에 배치돼 감정을 고조시켰다.

이동휘 역시 '준비된 배우'를 넘어 극을 이끌어도 부족함 없을 연기력을 선보였다. 사투리 연기에 능한 이답게 자연스럽게 대사를 소화했고, 상대역인 정소민과 갈등 부분에서 호흡도 무난히 맞춰냈다. <응답하라 1988> 때의 학생과는 사뭇 다른 선생님으로서 성장한 모습을 잘 보여줬다.

첫 방송된 드라마스페셜, 지난주 KBS 관계자가 드라마스페셜의 퀄리티를 자신한 것처럼 부족함 없는 작품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만족시켰다. 아울러 '미리보기'에서는 숨겨뒀던 시대상에 대한 이야기,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줄 만한 이야기를 본방송에서 가감 없이 드러내며 기대 이상의 기쁨을 선사했다. <빨간 선생님>, 영화보다 조금 짧고 한 회분 드라마보다 조금 더 긴 '영화드라마'를 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건희 시민기자가 속한 팀블로그(byulnight.tistory.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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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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