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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갯가길을 상징하는 디자인 ' 청색 거북이 '
 여수 갯가길을 상징하는 디자인 ' 청색 거북이 '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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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품격있게 운동하는 방법으로 바닷가 산책길을 찾았다. 여수 방죽포 해수욕장 주차장까지 승용차를 이용하고 거기서부터 걷는 데까지 걷다가 돌아오는 느긋한 코스를 짰다. 주말(지난 24일) 점심 후 도착한 방죽포는 송림이 여전히 우리를 반긴다. 

방죽포 해수욕장 송림
 방죽포 해수욕장 송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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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죽포 의 상징인 해송.  여수사람에게  친근한 방죽포 송림은 여전히 사람을 반긴다.
▲ 방죽포 해송 방죽포 의 상징인 해송. 여수사람에게 친근한 방죽포 송림은 여전히 사람을 반긴다.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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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길 3코스는 방죽포에서부터 시작해 연이어 포구를 지나야 한다. 방죽포에서 기포, 백포, 대율, 소율, 임포까지 여섯개의 아름다운 포구를 지나는 멋진 바닷가 산책길이다. 방죽포 주차장의 게시판이 3코스가 약 '8km 거리'라고 안내한다.

산책의 목표치가 없으니 내게 8km는 무의미하다.  걷는데까지 걷다가, 버스 길로 나와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어차피 모르는 시간표이니 막연히 기다리다가 오는 버스 잡아타고 방죽포 주차장으로 오면 그만이다. '싸목싸목' 걷다보니 이곳저곳 해찰하기도 좋다.

그래도 갯가길에서 시야의 목표는 늘 바다다. 뻥 뚫린 곳에서 직접 보고 걷기도 하다가, 숲 사이로 힐끗 내다 보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걷다 뒤돌아 보니 첫번째 포구 방죽포가 훤하다. 남쪽으로 눈을 돌려도 푸른 바다는 또 훤하다.

초반에 20여분쯤 걷다가 뒤돌아 본 방죽포 포구
 초반에 20여분쯤 걷다가 뒤돌아 본 방죽포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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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야에서는 바다가 등장한다. 갯가길의 묘미다.
 늘 시야에서는 바다가 등장한다. 갯가길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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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늘상 훤히 트인 바다만이 아니다. 숲길로 들어서면 호젓한 산길이다. 지난 여름 무더위가 내려앉고 서서히 지쳐가는 녹음이다. 계절이 바뀌는 초입. 사색길로 제격이다.
참으로 무더웠던 지난 여름이었다. 지치게 만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급기야 지축이 흔들리는 지진까지 우리를 온통 흔들어버린 시간이었다.

"그래, 흔들리기까지 했던 우리, 좀 추스리자. 조용한 시간을 갖자."

호젓한 산길은 그냥 우리 뒷산이기도 하다. 여름을 보내며 가을을 맞이하는  사색길로 제격 아닐까?
 호젓한 산길은 그냥 우리 뒷산이기도 하다. 여름을 보내며 가을을 맞이하는 사색길로 제격 아닐까?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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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길을 놓치기도 한다. 하지만 늘 '청색 거북이'가 안내한다.

"그래, 거북이처럼 천천히 가자!"

그러고 보니 길 안내하는 거북이를 참 잘 택한 것같다. 사단법인 여수갯가에서 거북이처럼 '싸목싸목' 가라고 길잡이로 정했을 것이다.

걷다보니 뻔한 곳이어서 '길치'라도 걱정없는 코스다. 바닷가에 서서 좀 응시하다가, 아니면 덜썩 앉아 쉬면 그만이다. '아마 저기가 길일 것이라'라고 생각해서 걸어가면, 거의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는 길 찾기 쉬운 3코스다. 거기다 늘 거북이가 따라와 주니 어렵지 않다.

바닷가 바위의 안내도 거북이다. "그래 거북이와 함께 천천히 가자"
 바닷가 바위의 안내도 거북이다. "그래 거북이와 함께 천천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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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보내려는 사람을 더러 만났다. 세월을 여기저기서 낚는다. 

저 분들도 지난 여름을 보내버리며 이제 '새로운 세월'을 낚으려 하겠지. '훤히 트인 바다 처럼 우리 모두의 가을도 환하게 트이고 막힘이 없었으면...' 하면서.

늘 바다는 훤히 트였다. 낚시하는 저 사람들도 나처럼 훤하게  트인 시절을 기다리겠지.
 늘 바다는 훤히 트였다. 낚시하는 저 사람들도 나처럼 훤하게 트인 시절을 기다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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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바다는 한때 북한의 반잠수정까지 찾아낸 곳이다. 동해안처럼 철조망이 점령하진 않았어도 군데군데 초소와 군사시설이 있다. 7391부대장 이름으로 '접근금지' 경고문도 보인다.

한 초소에는 긴 겨울밤 초병을 견디게 해준 군용 귀막이가 다른 잡동사니와 함께 나뒹군다. 채양까지 갖춘 곳은 지금 비가 와도 너끈히 피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초병들이 초소따라 내준 '군용 초소길'도 '여수 갯가길' 일부가 된 셈이다. 다양한 3코스 갯가길이다.

초소를 몇개 지나니 데크 길이 나오고 또 자갈해변이 반긴다. 그런가 하면 마을 앞 길도 지나고, 뒷 밭으로 다녔던 밭길도 밟는다. 마을과 마을을 어렵게 연결했지만 태풍이 날려버려, 예전 갯바위 길보다 더 엉망이 되어버린 길도 지난다.

군인들이 사용한 초소
 군인들이 사용한 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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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백포 해변으로 가는 길에 데크가 보인다.
 멀리 백포 해변으로 가는 길에 데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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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며 국경을 넘나드는  바다 쓰레기들은 갯가길 코스에서도 피할 수 없나 보다. 언제부턴가 바닷가 사람들은 흔히 만나는 저 쓰레기에 만성이 되어버렸다.  부유물들. 스치로폼 둥치나 폐그물 뭉치들... 무디어져 간다. 쓰레기라는 경각심보다는 아무렇지도 않게 돌덩이처럼 느껴진다. 이제 심지어 친근해 졌다.

친근해서인가. 갯가길은 거북이가 또 안내한다.  거친 길이지만 갯바위를 걷는 맛은 다르다.

거칠지만 바다 곁 바위길도 청색 거북이가 안내한다.
 거칠지만 바다 곁 바위길도 청색 거북이가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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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문제다. 세계의 모든 바닷가를 점령하고 있는 저 스치로폼들. 갯가길도 예외 아니다.
 참으로 문제다. 세계의 모든 바닷가를 점령하고 있는 저 스치로폼들. 갯가길도 예외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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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포 바닷가는 정치망 그물들 천지였다. 정치망 배 한 척에서 사용했던 분량의 그물을 어르신 한 분이 4일째 꿰매고 있다. 30년 넘게 그물을 기워온 어부의 손길이 날렵하다.

돌산읍 울림리 이순안(75세) 어르신의 그물 깁는 손길이 날렵하다. 배 한척 그물을 혼자서 4~5 일 손질한다.
 돌산읍 울림리 이순안(75세) 어르신의 그물 깁는 손길이 날렵하다. 배 한척 그물을 혼자서 4~5 일 손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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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포 해변에 지금 널려진 그물이 정치망 배 한 척에서 사용한 그물이다.
 백포 해변에 지금 널려진 그물이 정치망 배 한 척에서 사용한 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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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길은 사단법인 사람들이 나서기도 하지만, 시민들도 나선다. 곳곳에 시설물 기부 단체나 개인들의 이름이 보인다. '기부'라는 말은 늘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 모처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를 볼 때였다. 앉은 자리에 그 의자를 기부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팻말을 보고는 오페라 보는 기분보다 더 좋았던 적이 있었다. 고마운 분들 덕에 이 길을 걷는다.

시설물도 일부는 기부로 이뤄졌다.
 시설물도 일부는 기부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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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림까지 가면 3코스 전체를 산책할 수 있는데,  방죽포 시작한 길을 기포,백포,대율 지나 소율에서 멈추었다.  3코스 나머지 소율에서 임포까지 2km 이상 남겨놓고 산책을 마치기로 한것이다. 버스를 타려고 마을에 나와 계시는 할머님께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버스 정류장이 먼가요? "
"바로 나가면 되지. 저기 큰 길로 나가면 바로 정류장이 있어."

"버스 시간은 자주 있나요? "
"바로 있지. 시간시간이(시간마다) 있어!"

버스 정류장과 버스 시간을 안내해주는 소율 마을 박정래 (85세) 할머니, 혼자 사신다고 한다.
 버스 정류장과 버스 시간을 안내해주는 소율 마을 박정래 (85세) 할머니, 혼자 사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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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웃었다. 20분, 30분도 아니고 시간마다 있는 데도 바로 있다고 하신다. 할머니의 시간 셈법이다. '싸목싸목' 가겠다는, 느긋하게 잡히는 시간 그대로 걷겠다는 내가 할머니의 시간 계산엔 졌다. 

할머니에게 시간시간마다 있는 버스는 자주 있는 것이다. 나들이 하던 시절 한나절도 넘게 기다리셨을 버스 아니던가?

버스 정류장에서 내가 기다린 시간은 15분이었다.  거기서 차를 세워둔 곳까지는 10분쯤 또 걸렸다. 다시 승용차로 '슝' 집에 왔다.

"오늘 나는 과연 계획대로 '싸목싸목' 다녀온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게재합니다.



태그:#여수갯가길, #방죽포, #백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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