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쾌락뿐이다. 그 중에서도 관능적, 육체적 쾌락이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 영국 세기말의 문제작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연출 이지나)다. 배경은 1884년 런던이다. 도리안 그레이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 잡는 아름답고 순수한 청년이다. 배질 홀워드는 청년의 아름다움을 초상화에 담고, 헨리 워튼은 '완벽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쾌락에 빠져야 한다며 속삭인다.

헨리의 말에 넘어간 도리안은 쾌락을 즐기며 영원한 아름다움을 꿈꾼다. 늙고 추악한 미래의 모습이 두려워진 그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가진 초상화와 자신의 영혼을 맞바꾸고, 점차 타락의 길로 빠져든다. 시간이 지나도 도리안 그레이는 젊고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타락에 젖어 잔인한 행동을 할 때마다 초상화 속 그는 추악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연출, 영상, 의상... 볼거리 풍성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공연 장면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공연 장면 ⓒ 씨제스컬쳐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관념적인 철학이 주를 이루는 작품이다. 독서가들 사이에서도'읽기 힘든 책'으로 꼽힌다. 이를 무대에 옮기기 위해 과감한 축약과 효과적인 시각화를 시도했다. 기존 뮤지컬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시도 역시 여기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영상을 활용한 연출은 특히 인상적이다. 영상을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하던 기존의 뮤지컬과 달리, 감정이 극대화 된 장면에서 비중있게 활용했다.

무대와 영상을 넘나드는 연출을 위해 영상 제작에도 공을 들였다. 공연에서 사용된 영상은 모두 체코에서 촬영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살렸다. 배우의 무대 연기에 집중하고픈 관객에게는 장애물이 될 수 있으나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시도 자체는 높이 살 만 하다.

음악에도 원작의 분위기와 메시지를 녹여 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관념적인 원작의 대사는 훌륭하게 뮤지컬 넘버에 반영됐다. 1800년대 런던의 분위기를 그리기 위해 극 전반의 음악은 클래식하고 잔잔한 분위기로 만들었지만, 도리안의 내면을 표현하는 장면에는 현대적 스타일의 빠르고 강력한 음악이 주를 이뤘다.

화려한 의상과 거대한 무대 장치는 장면마다 변화를 거듭한다. 확실히 볼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도리안 그레이의 감정이 변화함에 따라 의상의 색채와 스타일이 달라지는 점에서 섬세한 연출을 느낄 수 있다.

주인공 김준수, 존재감 돋보이지만...

많은 볼거리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도리안 그레이의 핵심은 결국 배우다. 김준수, 박은태, 최재웅이라는 세 주연의 이름 앞에 관념적인 원작의 난해함과 성남에 자리잡은 공연장의 먼 거리는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배우들의 실력이 출중한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인데다, 원 캐스트로 진행되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더욱 깊이 있는 캐릭터 해석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타이틀 롤 도리안 그레이 역의 김준수는 특히 존재감이 대단하다. 1막의 순수한 소년을 연기할 때는 특유의 탁성 때문에 캐릭터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았지만, 2막으로 가며 타락한 청년으로 변화하자 완벽한 도리안 그레이로 분했다.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도리안을 김준수가 아닌 누가 할 수 있을까. 도리안 그레이라는 작품 자체가 '도리안'이 아닌 '김준수'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는 장점이면서도 단점이다. 극 곳곳에 김준수를 위한 서비스 컷이 아닌가 싶은 신들이 보이는데, 러닝타임을 줄이기 위해 마지막 넘버를 커튼콜에 넣었다는 후일담을 들어보면 과연 장면이 효과적으로 배치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예컨대, 원작에는 도리안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자세하게 그려진다. 뮤지컬에서는 시간 관계상 많은 부분을 잘라내다보니 도리안의 감정 변화가 급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박은태와 최재웅의 팬들은 생각보다 적은 두 배우의 비중에 실망했을 수도 있다. 그만큼 작품이 도리안 위주로 진행된다. 하지만 적은 비중 속에서도 두 배우의 존재감은 김준수에 뒤지지 않았다. 눈을 뗄 수 없는 스펙타클한 내용은 아니지만 보는 맛이 있다. 무대와 음악, 의상은 훌륭하고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는 티켓 파워를 증명이라도 하듯 뛰어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은 '도리안 그레이'에서만은 예외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지안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wsoutlier.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도리안그레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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