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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서관에서 학생을 만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말 걸어보는 방법, 교과와 협력수업을 통해 정규 수업시간에 만나는 방법, 방과 후에 책에 관심이 많고, 친구들을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 나누는 방법 등으로 아이들을 만난다.

그중 마지막 방법으로 만나는 아이들을 사랑하다 못해 존경한다. 방과 후에 친구들은 학원, PC방, 집으로 향하는데,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들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며칠 전 그들과 그림책을 읽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가 함께 읽은 책은 존 버닝햄이 지은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라는 책이다.     

제법 진지해진 아이들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의 첫 부분.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의 첫 부분.
ⓒ 황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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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에드와르도는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꼬마야"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끔씩 에드와르도는 물건을 발로 걷어차고, 시끄럽게 떠들고, 어린아이들을 못살게 굴고, 동물을 괴롭히고, 지저분했다. 그런 에드와르도를 보고 어른들은 눈치 없다, 사납다, 시끄럽다, 버릇없다는 말로 일관한다. 어느새 에드와르도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말썽쟁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분을 발로 찼는데 흙 위에 떨어진 것을 보고 '다른' 어른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에드와르도야,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구나. 정말 예쁘다. 다른 식물들도 좀 더 심어 보렴."

하루는 학교에서 어린 동생 알렉을 세게 밀었을 때, 교실의 전등 하나가 알렉이 서 있던 자리에 떨어졌다. 선생님은 에드와르도에게 말했다.

"네가 알렉을 구해줬구나. 정말 재빠르기도 하지. 네가 어린 동생들을 돌봐 주면 되겠다."

위 그림책이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난 에드와르도에게 큰 변화가 찾아왔다는 기적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에드와르도는 여전히 어수선하고, 사납고, 지저분하고, 방도 어지럽히고, 눈치 없이 굴고, 버릇없이 굴었다. "하지만 에드와르도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야"라며 그림책이 끝난다.

며칠 전 학교가 꾸역꾸역 아이들을 토해내고 있을 무렵, 도서관에는 12명의 아이들이 찾아왔다. 그들과 함께 이 책을 읽었다. 책을 읽을 때는 첫 번째 에드와르도 이후부터는 그날 모인 아이들의 이름을 대입하면서 읽어줬다.

"다른 아이들처럼 수정이도 시끄럽게 떠들었다. 이수정, 넌 정말 시끄러운 아이로구나."

아이들은 그림책에 점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세상 모든 에드와르도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야."

책을 덮었을 때, 아이들의 얼굴은 웃음기 그득한 얼굴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에드와르도 같은 경험이 있는 친구?"
"......"

어려운 질문으로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누구에게나 있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쉽게 말 못할 내용이다.

"선생님이 먼저 이야기해볼게. 선생님은 20년 전 이 학교(모교에 발령받음)에 다닐 때 에드와르도 같은 학생이었어. 선생님 집이 어렵게 살았거든. 누구나 다 어렵게 사는 시절이었지만, 단칸방에 화장실도 없는 곳이었어. 언제나 차갑게 식어버린 물로 씻어야 했어. 여름에는 괜찮았는데, 겨울에 되면 늘 씻기가 어려웠지.

중학교 2학년 때, 그해 겨울이 유난히 추웠어. 한 20일을 씻지 않았을 거야. 학교에 가면 내 냄새가 교실을 가득 채운 것 같았어. 친구들도 내 냄새 때문에 힘들어했지. 담임선생님도 이런 저런 핑계로 바람 좀 쐬고 오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근데 그때 선생님이 지저분한 녀석이라고 했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선생님은 아무런 말도 없이 항상 바람 쐬고 오라고 하실 뿐이었어. 그리고 사회선생님은 나를 아들처럼 대하셨는데, 토요일 방과 후에 목욕탕에 데리고 가셨어. 2차 성징이 나타나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싫지는 않았어. 오랜만에 개운했거든. 돈가스도 사주셨으니 더 좋았지."

"낙인찍힌다는 것이 참 무서운 일이야. 낙인이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

"네. 그냥 콱 찍히는 거요."

"그래, 선생님은 그때 낙인찍히지 않아서 참 행복했던 것 같아.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될 수 있으면 조심스레 행동을 하는 편이지. 너희들은 '학주'가 하나도 학주스럽지 않다며 투덜대는 아이도 있지만, 너희 모두 다 사랑스러운 에드와르도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자기 경험을 이야기해보고 싶은 사람 없어요?"

여전히 눈치만 보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조심스러운 내용이긴 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낙인에 대한 또 하나의 경험이 있어. 선생님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했어."

"3년이나요?"

어떤 학생이 말을 끊고 혼잣말처럼 물었다. 그리고 할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아니, 일 년에 한 번씩 일주일만. 어쨌든 그때 할머니 한 분을 만났는데, 그 할머니는 한센병을 앓았었지.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와 얼굴 모양새가 조금은 달랐어. 어릴 때 한센병이 생겼다고 하시더라. 소록도 봉사활동을 가면 집안 청소를 하거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동무가 되어드리는 일들을 하는데 그 할머니와는 참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지.

하루는 할머니가 녹동읍내에 나가고 싶다고 말씀하셨어. 봉사활동 계장님에게 허락을 받고, 다음날 배를 타고 할머니를 모시고 나갔어. 할머니는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말씀하셨어. '바다 냄새가 참 좋아요. 감옥 같던 바다가 오늘은 참 좋네요. 할머니가 이야기하시는 동안 할머니는 반짝이는 바다보다 더 눈부셔보였어.

할머니는 60년 전 한센병에 걸렸고, 한센병에 걸려서 마을에서 쫓겨날 때 아버지가 사주셨던 검정색 구두도 잃어버렸다고 하셨어. 그리고 죽기 전에 그런 구두 한번 신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지. 그래서 신발가게에 가서 검정색 구두를 샀어. 녹동 읍내에서 장도 보고, 함께 붕어빵도 사 먹었어."

아이들의 표정이 제법 진지해졌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음해 또 봉사활동을 갔는데…. 할머니를 만나지 못했어.(아이들의 눈빛을 맞추며) 할머니는 검정 구두를 안고 다른 세상으로 가셨다고 하더라고.(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눈물을 간신히 참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센병을 '문둥병'이라고 했어.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을 문둥이로 낙인찍은 거지. 가족도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게 했어. (잠시 쉬고) 혹시 우리 중에서도 이렇게 낙인찍히거나 또는 낙인을 찍었거나 한 사람 있을까?"

아이들은 무거운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아이들에게 포스트잇을 나눠주었다. 혹시나 낙인으로 힘들어하거나, 낙인을 찍어서 상대를 힘들게 하거나, 낙인이 아니어도 현재 힘든 점이 있으면 포스트잇 뒷장에 쓰도록 했다. 그리고 포스트잇 앞장에는 내가 들으면 힘이 되는 말을 쓰도록 했다.

발표를 시키려했더니 직접 발표하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아이들의 눈가에도 눈물 자국이 조금씩 보였다. 포스트잇을 걷어서 내가 대독했다. 그리고 들으면 힘이 되는 말은 아이들 전체가 말하도록 했다.

(* 다음 연재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청소년문화웹진 킥킥에 중복 투고함



태그:#순천신흥중, #도서부, #사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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