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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농민들이 논에서 갓 벤 벼 이삭을 지고 백남기 농성장 앞 대학로에 모였다
▲ 갓 벤 볏단을 지고 있는 농민 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농민들이 논에서 갓 벤 벼 이삭을 지고 백남기 농성장 앞 대학로에 모였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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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이 화창하던 지난 22일 오후 두 시, 마로니에공원이 있는 서울 대학로 백남기 농민 농성장 앞에 밀짚모자 쓰고 볏단을 든 사람들이 5천여 명 모였다. 전국 각지에서 바쁜 가을철 농사일을 멈추고 나락을 짊어지고 올라온 농민 4천여 명과 이들 농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시민사회단체 천여 명이 그들이다.

지난 6월 25일 1차 대회에 이어 올 들어서만 대학로에서 두 번째 전국농민대회가 열렸다. 11월 12일로 예정된 2016 민중총궐기 대회까지 더하면 올 한 해에만 세 번이나 서울에서 전국농민대회가 열린다.

한해 농사지어서 '손해' 본 농민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올해 두번째 전국농민대회 대회사와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올해 두번째 전국농민대회 대회사와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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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집회를 주관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이종혁 정책부장은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정부가 쌀 전면개방을 선언한 2014년 쌀시장 개방 반대 투쟁을 내걸고 서울에서 전국농민대회가 세 번 열렸다"며 "광주전남 지역을 비롯한 쌀 주산지에서 쌀값 폭락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게 되어 11월 민중총궐기대회를 앞두고 집중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이번 전국농민대회를 열게 되었다"고 말한다.

추석 전 수확을 하는 조생종 벼 40Kg 가격이 3만5천 원으로 떨어지며 농민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는 4만원대 아래로 떨어졌다. 이는 30년 전의 시세로 나락값을 쌀로 환산하면 (도정수율 72 퍼센트 기준) 햅쌀 80kg 한가마가 9만 7천원대로 10만 원도 안된다는 소리다.

9월 15일자 정부공식 통계 산지 쌀 가격은 13만5천 원이지만 실제로는 산지에서 12만 원대까지 쌀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이는 쌀밥 한 그릇을 먹을 때 쌀 재배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쌀값이 100~200원대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마저도 생산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이 없고 손해이다. 추석 이후 전체 생산량 중 86%에 이르는 중만생종 벼 수확이 시작되면 대혼란이 벌어진다고 농민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이런 상황을 두고 김영호 전국농민회연맹 의장은 "농민들이 쌀을 일제시대처럼 수탈당하고 있다"며 통탄했다.

이번 전국농민대회는 벼 수확철에 논 갈아엎기, 나락 야적 투쟁, 농기계 도로 점거 시위 등 각 지역에서 표출된 농민들의 분노와 소망을 담은 쌀값 보장 요구 외에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건 해결 촉구, 농산물 최저가격 인상, LG 농업 진출 시도 저지 등을 더해 네 가지 핵심 의제를 세상에 알리고 결의를 다지는 자리였다.

팔을 들어올리며 대회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목청껏 <농민가>를 부르고 나서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대회사로 집회의 문을 열었다. 김영호 전농 의장은 "4대 의제에 대해 책임이 있는 야당은 민중의 기대를 저버리고 무능함과 배신감만 키워주고 있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민생과 민주주의는 내팽개치고 낯부끄러운 막장 정치만 보여주고 있다"며 정치의 실패를 규탄했다. 이제는 문제 해결을 위해 농민이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다며 이번 농민대회와 11월 12일 민중총궐기대회 사이를 집중투쟁기간으로 선포했다.

김영호 전농 의장과 김효신 쌀생산자협회 회장과 농민들이 삭발식을 하고 있다.
▲ 쌀값 대폭락 박근혜 정권 퇴진을 결의하는 삭발식 김영호 전농 의장과 김효신 쌀생산자협회 회장과 농민들이 삭발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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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전국농민대회를 주최한 (사)전국쌀생산자협회 이효신 회장은 "쌀값이 이렇게까지 폭락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며 "나락값이 1Kg에 875원까지 떨어지고 정부가 수매조차 하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요구에 따라 쌀을 마구잡이로 수입해서 내리 4년째 쌀값 폭락에 불을 지른다"며 "올해 쌀 생산량이 410만 톤에 이르는데 수매는 41만 톤만 하겠다"는 정부의 시늉만 하는 대책을 비판했다.

또한 2백만톤에 이르는 쌀재고가 쌓여있는데도 해마다 40만9천 톤의 쌀을 수입하고, 밥쌀 수입까지 하는 상황이 쌀값 폭락의 진정한 원인이지 풍년이 원인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이어서 쌀 수입을 전면 중단하고 2백만 톤이나 쌓여있는 재고쌀은 대북지원과 해외원조를 하고, 이중곡가제를 부활하고 수매량을 1백만 톤으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호 전농 의장의 대회사와 이효신 전국쌀생산자협회 회장의 투쟁사가 마무리 되고 투쟁 결의를 다지는 삭발식이 진행되었다. 김영호 회장, 이효신 회장과 30여 명의 농민들이 삭발을 하고 머리띠를 둘렀다.

"백남기 국가폭력, 철저히 수사해 처벌하라"

백남기 대책위 정현찬 공동대표 (가톨릭농민회 회장)가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특검제 도입을 원내 야3당에 요구하고 있다.
 백남기 대책위 정현찬 공동대표 (가톨릭농민회 회장)가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특검제 도입을 원내 야3당에 요구하고 있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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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식을 마치고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건과 관련하여 백남기 대책위 공동대표이자 가톨릭농민회 정현찬 전국회장의 발언이 이어졌다. 정현찬 공동대표는 "지난 9월 12~13일 백남기 농민 청문회가 개최되었으나 이 땅의 경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것 확인했을 뿐"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형식적인 청문회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지 말고 특검을 통해 철저히 수사하고 진실을 밝혀 박근혜 대통령이 사죄하고 책임자 처벌을 하도록 원내 야 3당이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어서 "314일째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백남기 농민은 억울해서 눈을 감지 못하고 버티고 있다"면서 "백남기 농민의 한을 농민들이 풀어드려야 하는 책임이 있다, 백남기 농민의 처지가 우리 농민들의 처지이기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6분여에 걸친 사자후 같은 연설을 마무리 하며 "우리 농민들의 목숨이자 마지막 남은 보루인 쌀과 시설재배를 강대국과 LG와 같은 재벌에 맞서 정치권이 아니라 우리 농민들의 힘으로 지켜내야 한다"면서 "11월 12일 민중총궐기대회 때까지 각 지역에서 집중 투쟁을 하자"고 역설했다.

4천명의 농민들과 천여명의 시민사회단체이 집회를 마치고 종로 거리 행진에 나서고 있다.
▲ 전국농민대회 종로 행진 4천명의 농민들과 천여명의 시민사회단체이 집회를 마치고 종로 거리 행진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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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 정각에 시작된 전국농민대회 1부 집회가 연설과 공연을 하며 두 시간동안 이어졌다. 1부에 이어 집회 참가 농민과 시민 5천 명은 깃발을 휘날리고 꽹가리와 북 장단에 맞춰 구호를 외치며 대학로에서 종로 영풍문고까지 거리 행진을 했다.

거리 행진에서는 전북고창농민회에서 몰고온 콤바인이 등장했다. 콤바인은 벼를 베어 탈곡을 하는 농기계로 이번 전국농민대회가 벼 수확철 투쟁임을 강조하기 위해 고창농민회에서 트럭에 싣고 올라왔다.

지난 6월 25일 1차 전국농민대회 때보다 2천 명 가까이 늘어난 참석인원이 말하듯이 농민들은 본격적인 쌀 수확을 앞두고 쌀값 대폭락에 대해 허탈감을 넘어 분노와 저항을 거세게 표출하고 있다. 한 해 농사지어 나락을 팔아 손에 쥐는 돈이 생산비에도 못미친다.

지난 수십년 정부는 주곡인 쌀 생산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경지정리사업, 간척지개발사업,저수지를 비롯한 수리시설 확충사업, 트랙터/이앙기/콤바인으로 상징되는 기계화사업에 천문학적인 국가예산을 들였다.

쌀 생산 장려를 위한 대규모 국가사업의 단전인 예가 새만금방조제사업이다. 노태우 정부 때 입안되어 노무현 정부 때 완공된 새만금방조제 사업의 당초 목적은 식량생산기반을 다진다는 것이었다. 새만금방조제사업이 완료되고 정부는 농경지를 상업용과 산업용으로 전환하여 대기업들에게 매각하고 있다. 또한 새만금바이오파크처럼 우리나라 농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농과 중농을 몰락시킬 대기업과 다국적기업의 농업 진출을 정부가 나서서 장려하고 있다. (관련: 남재작 박사 오마이뉴스 기사)

이에 더해 수십 년 동안 애써 조성한 논을 정부는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 공급을 줄여야 한다며 농업진흥지역에서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예전에 절대농지라는 분명한 뜻으로 불린 농업진흥지역은 주거, 상업, 산업 등 타 용도로 전환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하는 말 그대로 농사만 지어야 하는 땅이다.

논을 포함한 농지는 타 용도로 전환되면 원상복귀가 거의 불가능하다. 농지로 복원시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수리/관계시설이 필수인 논은 더욱 그렇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오랜 세월동안 들여 갖춰 놓은 논에 건물과 공장을 짓도록 하는 하책 중의 하책을 대책이라며 정부는 내놓았다.

농업생산기반을 스스로 파괴하고, 수입농산물을 마구잡이로 수입하며 식량주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박근혜 정권의 일방통행에 농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삭발까지 하며 결의를 다졌다.

이날로 314일째 의식불명인 채 서울대병원에 누워있는 백남기 농민에게 향했던 살인 물대포는 277만 우리 전체농민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며 있다.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는 농민들은 이제 농사짓고 살고 싶다며 결사 항전을 선언했다.

전국농민대회 사회를 진행하는 조병옥 전농 사무총장이 구호를 선창하고 있다.
▲ 밥쌀 수입 중단하라! 백남기를 살려내라! 전국농민대회 사회를 진행하는 조병옥 전농 사무총장이 구호를 선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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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를 마치면서 이번 대회의 뜨거운 열기와 결의에 대해 전국농민대회 사회를 맡은 전국농민회총연맹 조병옥 사무총장은 소회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쌀값 대폭락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가 상당히 높고 그것을 분출할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지역에서부터 다양한 투쟁이 벌어졌고 그것을 한자리에 모아 정부의 실정을 까발리고 쌀 백만 톤 수매의 내용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다양한 농업이슈(쌀값 폭락, 백남기 특검 도입, 농산물 최저가격, 대기업 농업 진출)를 분출하는 자리였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농정실책을 까발리고 정권퇴진 구호를 걸면서 그 책임이 박근혜 정권의 무능에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바쁜 농번기와 조직화 시기가 촉박함에도 생각보다는 조직화가 많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전술 도입으로 농민들의 투쟁의 기운을 높이는 자리였습니다."

다음은 농민들의 요구사항.

- 쌀 수입 중단하고 쌀값 보장하라!
- 정부는 100만 톤을 조기에 수매하라!
- 사료용 중단하고 대북쌀 교류 실시하라!
- 백남기농민 국가폭력 박근혜정부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하고 농민 참여 보장하라!
- 국회는 대기업 농업진출 차단하라!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지역 농민회에서 쌀값 폭락에 항의하며 종로에서 콤바인을 몰고 있다.
▲ 종로 거리에 등장한 콤바인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지역 농민회에서 쌀값 폭락에 항의하며 종로에서 콤바인을 몰고 있다.
ⓒ 박기수 전농 충북도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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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유문철 시민기자는 충북 단양에서 아홉해째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고 녹색당 농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블로그 <단양한결농원의 유기농사 이야기>와 페이스북 (필명 유기농민)에도 동시 게재합니다.



태그:#전국농민대회, #밥쌀 수입, #백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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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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