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긴 남자와 목소리 좋은 남자 중에서 누가 여성의 마음을 더 사로잡을 수 있을까?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의외로 여성들은 목소리가 좋은 남자에게 끌리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은 여성이 시각보다 청각에 보다 더 예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목소리가 좋은 남자가 노래까지 잘 부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노래에 더해 악기 연주까지 잘 한다면 더 이상 볼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그녀를 위한 노래를 작곡해서 들려주는 것이다. 100마디의 말보다 1번의 노래가 더 낫고, 그 노래를 직접 만들어서 들려준다면, 사랑하는 그녀는 내 품에 안겨올 것이다.

음악은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 묘약이다. 음악이 감정을 실어 나르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음악이 있고 음악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 그래서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는 음악을 매개로 한 사랑 이야기가 유독 많은가 보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Schubert, Franz)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Schubert, Franz) ⓒ 위키피디아


'겨울 나그네'란 가곡이 있다. 제목에서 오는 느낌만으로도 외롭고 쓸쓸한 내면 여행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동명의 소설과 영화, 드라마가 제작되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가곡이기도 하다. 이 가곡을 작곡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인 슈베르트다. 그는 생전에 600여 편에 달하는 가곡을 작곡했다. '보리수', '송어',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들장미' 등 듣기에 편하고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가곡을 많이 작곡해서 '가곡의 왕'이라고도 불린다. 

슈베르트는 가곡 이외에도 관현악곡을 비롯해서 실내악·피아노곡 등도 많이 작곡했다. 교향곡도 13편이나 남겼는데 그중에는 미완성 교향곡도 하나 있다. 원래 이름은 '교향곡 제8번 B-단조'이지만 편의상 '미완성 교향곡'으로 불리는 그 곡이 미완성인 채로 남은 데 대해서는 무성한 추측이 있다. 그러나 추측은 추측일 뿐 사실을 아는 사람은 슈베르트 자신 뿐일 것이다.

흔히 교향곡은 4악장으로 이루어지지만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은 2악장으로 끝난다. 그의 사후 40여 년이 지나서야 발표가 되었던 이 곡은 미완성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완벽해서 그 자체만으로도 완결미가 있다. 작곡가 브람스는 "이처럼 온화하고 친근한 사랑의 말로써 다정히 속삭이는 매력을 지닌 교향곡을 나는 일찌기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교향곡이 미완성으로 남은 특별한 까닭이라도 있는 것일까?

영화로 만들어진 미완성 교향곡

슈베르트는 이 교향곡을 그의 나이 25세인 1822년에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후 6년 뒤에 세상을 떴으니,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미완성인 채로 남았다.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왜 미완성인 채로 남게 되었는지 한 번쯤은 의문을 가져볼 만하다. 영화감독인 윌리 프로스트(Willi Forst)는 이 점에 착안해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까지도 똑같은 '미완성 교향곡, Unfinished Symphony'이 바로 그것이다. 

이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82년 전인 1934년에 만들어졌다. 이렇게 오래된 영화다 보니 화질과 음향의 상태도 조금은 불량일 수밖에 없다. 마치 오래 된 LP레코드판이 튀는 것처럼 영화를 보는 중간 중간에 간혹 음이 튀는 경우도 있다. 그것마저도 정감 있게 느껴지는 것은 흑백영화가 주는 따듯한 느낌에다 아름다운 가곡들이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

슈베르트 역을 맡은 주연 배우 한스 쟈레이(Hans Jaray)는 배역에 충실하기 위해 슈베르트의 행동양식을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했다고 한다. 화면에 보이는 그의 모습이 초상화를 통해 본 슈베르트와 너무나도 흡사해서 만약 슈베르트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꼭 저럴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슈베르트는 살아 있을 때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늘 가난 속에 허덕이며 궁핍하게 살았다. 방세가 밀려 아끼던 악기를 전당포에 저당 잡히기도 하고 연주복을 잡혀 돈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런 그를 전당포의 딸이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도와주고는 했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근근이 생활한다. 그러나 수업 중에도 악상이 떠오르면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버리곤 한다. 이런 그를 좋게 봐줄 사람은 없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눈 밝은 이는 그의 곁에 없었다. 수업에 충실하지 않은 그는 내쫓길 수밖에 없었고, 안 그래도 가난한 그는 먹고 살 길이 더 막연하게 되었다. 다행히 궁중의 음악을 담당하는 감독관의 눈에 들어 공주가 주최하는 궁중 음악회에 연주자로 발탁되지만 그 역시 잘 풀리지 않았다.

 영화 <미완성교향곡>

영화 <미완성교향곡> ⓒ <미완성교향곡> 공식포스터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교향곡을 청중들 앞에서 시연하는 날이었다. 곡이 클라이막스에 이르렀을 무렵 젊은 여성의 경박스러운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집중해서 연주를 하던 슈베르트는 순간 흔들리고 말았다. 이로 인해 연주를 망치고 만다.

슈베르트의 연주회를 망치게 한 사람은 백작의 딸이었다.  연주회를 망친 슈베르트는 그녀를 탓하며 연주회장을 뛰쳐나가고 만다. 궁중 음악회에서 있을 수 없는 행동을 슈베르트는 하고 만 것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되고, 이후 설 자리가 더더욱 없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음악 선생님으로 초빙하고 싶다는 백작의 제의를 받고 간 슈베르트 앞에 지난 번 연주회를 망치게 한 그녀가 나타났다. 정중하게 사과를 하는 그녀를 용서하고 음악 교습을 한다. 그러다가 그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과연 음악은 사랑을 실어 나르는 큐피트의 화살이자 묘약이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백작의 딸과 가난한 음악가의 결합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신분의 차이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렇게 헤어질 운명이라는 걸 알기에 그들의 사랑은 더 애틋했던 걸까.

슈베르트는 사랑의 아픔을 달래려고 작곡에 매진한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미완성이던 교향곡을 완성한다. 하지만 사랑했던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약속한 몸이었으니, 그녀를 위해 작곡한 교향곡을 결혼식 축가로 연주하게 될 줄이야...

미완성으로 남은 교향곡

그러나 이번에도 연주는 끝을 맺지 못한다. 슈베르트의 연주를 듣던 그녀가 감정이 북받쳐 올라 그만 기절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번 초연 때는 분위기에 맞지 않게 크게 웃어서 연주회를 망치더니 이번에는 너무나도 절절한 마음으로 연주를 듣다가 그만 혼절하고 말았으니, 그 교향곡은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가 보다.

사랑을 잃었으나 또 사랑을 얻은 슈베르트였다. 그녀에게 사랑은 슈베르트 한 사람 밖에 없었다. 슈베르트는 완성한 교향곡의 뒷부분을 찢어버린다. 언젠가 그녀가 자신을 다시 찾을 때, 그때 완성해서 그녀에게 들려주겠다는 마음으로 미완성으로 남겼다. 그들의 사랑이 미완성이듯 둘을 연결해주었던 교향곡 역시 미완성인 채로 남게 되었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게 바로 사랑의 미덕이다. 그래서 모든 사랑은 그 시점에서는 다 미완성이다. 우리는 사랑의 완성을 꿈꾸고 바란다. 그리고 내게만은 아픈 사랑이 찾아오지 않기를 희망한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게 사랑의 속성이라고 해도 미완성은 피하고 싶은 게 사람의 공통 심리다. 그것이 아무리 뜨겁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해도 말이다.

비련의 슬픔을 슈베르트는 음악으로 치유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그의 모습이 나온다. 이때 그가 작곡한 '아베 마리아'가 장중하게 흘러 나온다.

"아베 마리아, 고결한 분이시여 / 고통 속의 저희를 구원해 주소서 / 잔인하게 모욕당하고 쫓겨났지만 / 아침까지 저희가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 마리아여, 저희를 보살펴 주소서."

슈베르트 미완성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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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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