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0일, 당시 한화는 35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48승 3무 58패로 7위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 5강권과 3.5게임 차이던 상황에서 김성근 한화 감독은 남은 경기에서 20승 이상을 하면 가을야구를 기대할 수 있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9월 한 때 5연승을 달리며 잠깐 상승세를 타자, 지난 15일에는 잔여 15경기를 남긴 상황에서 '13승 이상'을 거두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김 감독은 SK 시절의 사례를 언급하며 "어떤 드라마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한화가 연출한 드라마는 김성근 감독이 기대했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한화는 김 감독의 발언이 나온 직후 거짓말처럼 5연패의 역주행을 했다.

총력선 선언 후 역주행한 한화

한화의 현재 성적은 60승 3무 72패, 순위는 8위로 한 달 전보다 오히려 더 떨어졌다. 김 감독의 첫 20승 발언이 나온 시점부터 계산해도 12승 14패로 5할에도 못미친다. 잔여경기를 불과 9경기 남겨놓은 가운데 5위 기아와의 격차는 5.5게임으로 벌어졌다. 설사 한화가 남은 경기를 다 이겨도 5할 승률 회복은 불가능해졌고 기아가 자력으로 3승 이상만 거두면 한화의 가을야구는 자동으로 물거품이 된다. 사실상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한화 팬들에게는 이 장면이 웬지 낯설지 않다. 한화는 지난해에도 막판까지 5강 경쟁을 하다가 끝내 고비를 넘지못하고 탈락했다. 당시 한화는 68승 76패(승률 0.472)로 6위를 기록했다. 마지막  와일드카드 티켓을 거머쥔 5위 SK와의 격차는 단 2게임이었다.

내용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한화가 지난해보다 올 시즌 더 대대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팀 총연봉 1위에 오른 팀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승률과 순위는 오히려 떨어졌다. 지난해와 올 시즌 모두 실패의 공통적인 원인은 한 가지로 요약이 가능하다. 바로 지난해 실패에서 배우지 못한 '김성근 야구'의 한계다.

한화는 2014년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면서 모든 목표를 '당장의 성적'에 맞췄다. 전력보강을 위한 대대적인 투자, 코칭스태프 구성과 팀 운영에 대한 전권 위임은 모두 김성근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포석이었다. 김 감독도 지난 2년 내내 오직 결과를 내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물론 성과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한화는 김 감독 부임 이후 만년 하위권을 탈출하며 어쨌든 시즌 막바지까지 가을야구를 놓고 경쟁하는 팀이 됐다. 매경기 포기하지 않는 총력전과 예측할 수 없는 접전이 이어지면서 한화의 야구를 두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의미에서 '마리한화'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마리한화는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될 김성근식 야구의 불행한 결말을 암시하는 회광반조에 불과했다. 잠깐의 쾌락을 위한 댓가로 육체와 정신까지 망가뜨리는 진짜 마약처럼, 눈앞의 1승이라는 달콤한 결과물에 취해 있는 동안 정작 팀의 미래가 망가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깨닫지 못했다.

혹사로 상징되는 김성근의 2년

 한화 불펜의 핵심 송창식과 권혁은 팔꿈치 통증으로 이탈했다.

한화 불펜의 핵심 송창식과 권혁은 팔꿈치 통증으로 이탈했다. ⓒ 한화이글스


김성근의 한화 2년을 정리하는 데 빠질 수 없는 키워드가 바로 혹사다. 원칙 없는 마구잡이 투수운용, 끝없이 반복되는 특타, 명분을 알 수 없는 벌투, 선수들의 석연치 않은 부상 릴레이까지, 김성근 야구의 모순을 집대성하는 모든 레퍼토리가 바로 혹사에 포함되어 있었다.

김성근 감독은 "투수의 어깨는 쓸수록 강해진다", "체력보다 의식", "한계를 넘어야 성장한다"같은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말들로 자신의 야구를 끊임없이 합리화해 왔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한화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혹사였다. 

2015년 후반기 한화는 에스밀 로저스라는 걸출한 에이스 투수와 권혁-박정진-윤규진 등 필승조가 있었지만 이들이 각각 부상과 구위 저하에 시달리면서 성적이 추락했다. 2016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전반기에 이미 많은 이닝을 소화한 권혁과 송창식이 부상으로 낙마했고 로저스는 스프링캠프부터 팔꿈치 부상에 시달리다가 아예 교체됐다. 만일 이들을 적절하게 관리해 주면서 시즌 막바지까지 끌어왔다면 한화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심지어 한화는 주축 투수들의 연이은 이탈 속에서도 후반기 토종 선발진과 타선의 힘을 앞세워 9월 초까지 가을야구에 대한 희망을 이어갔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총력전을 선언한 시점부터 투수진의 마구잡이 운용이 더욱 심화되며 그나마 잘던지던 투수들의 페이스까지 함께 망가졌다. 선발과 불펜 겸업을 오락가락하면서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 선수들은 폼이 흔들리며 구위가 하락했다.

여기에 휴식 없이 매일같이 계속되는 특타와 벤치의 잦은 개입은 타자들의 타격 컨디션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감독이 성적에 대한 집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가뜩이나 힘든 선수들에게 부담을 안겨준 것은 역효과만 냈다.

결국 이미 지칠대로 지쳐버린 선수들이 기계가 아닌 이상, 막판까지 최상의 집중력을 유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김성근 감독은 "0.1%의 세밀함이 부족했다", "근거 있는 야구를 해야 한다"며 이번에도 선수들을 질타했다. 하지만 정작 한화의 몰락은 오로지 0.1%의 작은 이익에만 집착하다가 멀쩡한 99.9%를 놓쳐버린 김성근 감독의 과오에 더 큰 책임이 있다.

김성근 감독이 비판 받는 이유, 성적 때문만이 아니다

 19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KIA의 경기. 한화 김성근 감독이 스코어 1대1 상황에서 4회말 한화의 공격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19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KIA의 경기. 한화 김성근 감독이 스코어 1대1 상황에서 4회말 한화의 공격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무엇보다 김성근 감독이 '최악의 리더'로 전락한 이유는 단순히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한화 역대 감독들을 살펴봐도 김 감독보다 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한 감독들도 많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김성근 감독만큼 질타를 받지는 않았다. 김 감독이 비판 받는 이유는 감독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피해가려고 하는 태도 때문이다.

김 감독은 평생 야구인으로 살면서 많은 부와 명예를 누렸다. 여기에 SK와 고양 원더스 사령탑을 거치면서 사실상 존경받는 사회 원로이자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위상까지 얻었다. 그러나 한화 감독으로 취임한 지난 2년은 그동안 성적이라는 허상과 언론플레이에 가려진 김성근 리더십의 초라한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시간이었다.

'야구는 감독이 한다'고 주장하는 김성근식 야구의 가장 큰 한계는 바로 선수를 감독의 소유물이나 부속품 정도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구성원의 희생, 의식 변화 등을 강요하지만 그안에서 선수들의 개성, 심리, 성향의 차이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로지 김 감독의 개인적 주관에 따라 몇몇 특정사례를 성급하게 일반화하려는 고집만 도드라져 보인다.

또한 김 감독은 자신의 지도자 인생 동안 혹사로 인하여 야구인생의 기로에 섰거나 은퇴의 길에 내몰린 수많은 선수들의 희생에 대하여 한 번도 진심으로 반성이나 유감을 표시한 적이 없다. 아예 혹사라는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바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으니 책임져야할 것도 없는 것이다.

김 감독의 시각에서 모든 문제의 근원이란 혹사당하고 지쳐도 '똑바른 폼으로 공을 던지지 못했거나 근성이 부족한' 선수들이며 '제대로 지원을 해주지 않고 감독의 권한을 침범하는' 프런트와 고위층, '현장 사정을 모르고 외부에서 비판하는' 언론과 팬들이다.

이처럼 자신의 실수나 과오에 대해서는 반성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적을 만드는 리더는 조직 전체를 피로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실패한 한화의 2년,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

요즘 김성근식 야구에 비판적인 야구팬들 사이에서 김 감독은 더 이상 야신이 아니라 '내로남불', '김일성근' 등으로 통한다. 하나같이 김 감독의 독선적인 모습을 풍자한 별명들이다. 자신의 주관이나 이익에 부합하는 일에는 원칙과 소신을 거론하며 목소리를 높이다가, 정작 자신을 향한 외부의 비판에 대해서는 잣대가 한순간에 바뀌는 일이 다반사다. 김성근 감독의 기묘한 이중잣대는 그의 숱한 과거 어록들만 돌아봐도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한화에서 김 감독의 지난 2년의 실패는 단순히 성적의 실패가 아니라, 리더십과 방향성의 실패였다.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 야구계가 오랜 세월 축적해온 원칙과 상식을 압도하고 망가뜨린 사례이기도 하다. 현실의 김성근은 결코 전지전능한 야구의 신도 아니었고 훌륭한 리더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그가 수많은 강의와 어록 등을 통해서 리더의 자격과 비전에 대하여 설교했던 숱한 내용을 되돌아보면 그 괴리감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김 감독은 아직 한화와 계약이 1년이나 남아있다. 하지만 이젠 지난 2년간의 결과물에 대하여 김 감독이 책임을 져야할 시점이다. 한화 구단도 손을 놓고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시행착오와 혼란에 대한 교통정리가 있어야 한다.

김 감독이 앞으로도 자신의 개인적 명예와 야구관을 지키는 데 집착할수록 한화의 미래는 더 불행해질 뿐이다. 남에게 한계를 넘으라고 요구하던 김성근 감독은 정작 자신의 한계는 넘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무능한 데다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리더는 적보다 더 위험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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