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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유명인사들이 묻힌 곳이다.
▲ 노보데비치 수도원 부속 묘지 러시아의 유명인사들이 묻힌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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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데비치 수도원(Новодевичий монастырь)은 우리가 계획했던 모스크바 일정의 첫 방문지이다. 먼저 눈에 띤 곳은 부속묘지이다.

묘지라기보다는 조각공원 같은 느낌이다. 제정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문학의 거두인 니콜라이 고골, 안톤 체호프,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구 소련 서기장 흐루시초프 등 저명한 학자, 작가, 정치가, 영웅, 군인이 묻혀 있다.

살아온 생을 웅변하는 각각의 상징들, 일테면 조각상이나 현판, 글귀 등이 삶보다 더 치열하게 느껴진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음을 이렇게 은근히 각인시킴은 전쟁으로 점철된 러시아의 역사 때문이리라.

그의 도움으로 고아와 결손 가정 아이들을 위한 예술서커스 중점학교인 ‘15번 학교’가 기숙학교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 러시아의 국민 희극배로 불린 유리 블라지미로비치 니꿀린의 묘 그의 도움으로 고아와 결손 가정 아이들을 위한 예술서커스 중점학교인 ‘15번 학교’가 기숙학교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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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련의 첫 직선대통령으로 당선돼 스스로 소련의 붕괴를 선고하고 러시아의 부활을 선언했다. 그래서인지 묘비석도 펄럭이는 러시아 국기모양을 하고 있다.
▲ 보리스 옐친의 묘 그는 소련의 첫 직선대통령으로 당선돼 스스로 소련의 붕괴를 선고하고 러시아의 부활을 선언했다. 그래서인지 묘비석도 펄럭이는 러시아 국기모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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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를 통과하여 노보데비치로 진입한다. '노보데비치'는 수녀원으로서,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와 모스크바강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 수녀원은 1542년 폴란드령이었던 스몰렌스크를 모스크바 대공 바실리 3세가 탈환한 것을 기념하여 건립되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교회당 내부에 이른바 모스크바파와 노브고로트파 화가들이 그린 이콘(성화상)이 많으며, 스몰렌스크 대성당, 표트르 성당, 17세기에 건립된 대종루, 1km에 달하는 웅장한 성벽 등이 아름답게 어울려 있다.

우리를 맞은 수녀원은 반쯤 화장을 지운 모습이랄까 수리와 단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단장을 마친 꾸뽈(러시아와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양파 모양의 돔)은 지나치게 반짝이는 금빛이어서 500년 가까운 역사의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금칠이 벗겨진 칙칙한 고동빛의 꾸뽈이 소박하면서도 성스러웠다.

일행이 성벽을 따라 입구로 이동 중이다.
▲ 노보데비치 수도원 성벽 일행이 성벽을 따라 입구로 이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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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의 두 꾸뽈이 금색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 노보데비치 수도원 회색의 두 꾸뽈이 금색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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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가 '백조의 호수'를 작곡할 때 영감을 받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 노보데비치 수도원 옆의 호수 차이코프스키가 '백조의 호수'를 작곡할 때 영감을 받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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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 옆의 호수는 차이코프스키가 '백조의 호수' 영감을 받은 곳이라고 한다. 백조는 보이지 않고 오리 몇 마리가 한가롭다.

참새언덕(Воробьёвы горы) 입구에 들어서니 빗방울이 듣는다. 해발 110m 정도로 그리 높은 언덕은 아니지만, 산을 찾아볼 수 없는 모스크바에서는 가장 높은 지역이다. 언덕 앞을 흐르는 모스크바 강물 위에 세워진 커다란 다리가 인상적이다.

아름드리 떡갈나무 터널 사이로 비를 피하며 언덕을 올랐다. 모스크바 시내의 멋진 뷰를 기대했던 우리 앞에 빗물에 더욱 흐려진 수채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차라리 이런 흐릿한 그림이 낫겠다 싶다. 태양 아래 제 속살을 다 드러냈으면 모스크바의 이미지가 더욱 딱딱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오는 날이어서 뿌연 윤곽만 보인다.
▲ 참새 언덕에서 내려다 본 모스크바 시내 전경 비오는 날이어서 뿌연 윤곽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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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뒤쪽에는 엠게우(МГУ), 즉 모스크바 국립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스탈린 혁명시대의 웅장하고 뾰족한 첨탑 양식의 건물 위용이 빗속에서도 압도적이다. 1755년 모스크바 중심가에 세워졌던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는 1940년대 말, 스탈린에 의해 이 자리에 재건축되면서 236미터 34층의 위압적인 모습으로 탄생했다.

스탈린은 모스크바 시가지의 상당 부분을 소위 '스탈린 고딕' 양식으로 재건하고자 했다. 스탈린의 '일곱 자매'라고 불리는 일곱 개의 마천루가 시내 중심지에 건립되어 모스크바 어디에서도 보이게 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는 '일곱 자매' 중에서도 가장 높은데, 1988년까지 동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독일군 전쟁 포로들의 노동력으로 지어졌으며, 33킬로미터의 복도와 5천 개의 강의실이 있다. 중앙 타워의 꼭대기에 있는 별은 무게가 12톤에 달한다.

건물 모양 때문에 '웨딩 케이크'라는 별명이 붙어 있지만, 별명처럼 그렇게 매력적이거나 낭만적인 건물이 아니라 오히려 위압적이다. 왠지 대학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필자는 대학 시절 20층 넘는 고층 건물이 있는 캠퍼스에서 공부를 했다. 늘 이 넓은 곳에 왜 저런 위압적인 건물을 지어 캠퍼스를 누르고 있을까 불만스러웠다. 대학이야말로 가장 낮고 자유로워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운명처럼 현재 근무하고 있는 대학도 20층 높이의 뾰족 건물이 있다. 대학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모스크바 일곱 자매'로 불리는 '스탈린 고딕' 건물 가운데 가장 크고 높은 건물이다.
▲ 참새언덕에서 바라 본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모스크바 일곱 자매'로 불리는 '스탈린 고딕' 건물 가운데 가장 크고 높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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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러시아,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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