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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대학교는 대안학교의 일종인 신촌대학교를 모태로 개설되는 시민대학이다.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취지에 공감한 용산구청이 수업 장소를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조자룡창술배워볼과', '강제동원 그들을 아십니과', '난 언제 제대로 연애할과'

도대체 뭘 뜻하는 걸까. 낯설고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런데 이 단어들이 전부 대학교의 학과명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바로 오는 10월 개강을 앞둔 '이태원 대학교'에 개설 예정인 과목들이다.

이태원 대학교는 대안학교의 일종인 신촌대학교를 모태로 개설되는 시민대학이다. 지난 2015년 4월 처음 문을 연 신촌대학교는 개강 당시 '배우고 싶은 것은 뭐든지 과목이 될 수 있다', '누구든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며 기존의 대학교육을 거부한다고 선포하여,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그동안 개설된 과목들도 '노무현을 배워볼과', '가라오케현대사', '그까짓창업학과', '연애할과' 등 이색적인 과목명으로 숱한 화제를 낳았다. 개교 1주년을 맞은 지금, 신촌대학교는 개설된 강좌만 50개를 넘었고, 수강생 역시 150명을 돌파했다. 입소문을 타고 늘어나는 신촌대학교의 인기는 그만큼 기성교육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반증한다.

신촌대학교 개설과목 '오피스요가나해볼과' 수업 장면.
 신촌대학교 개설과목 '오피스요가나해볼과' 수업 장면.
ⓒ 신촌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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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을 넘어 노량진·이태원으로

그러나 신촌대학교를 만든 이들의 목표는 신촌에만 머물지 않았다. 신촌을 넘어 전국 방방곡곡에 대안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그들의 최종 목표. 신촌대학교 운영위원회 측은 이미 그 목표에 다가서기 위한 일환으로, 올해 초 두 번째 분교인 '노량진 대학교'를 개설한 바 있다. 이번에 개설되는 이태원 대학교는 세 번째 도전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노량진 대학교·이태원 대학교라는 새 틀을 고집하는 걸까. 신촌대학교라는 이름으로 계속 진행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이태원 대학교 개설을 주도한 윤범기 운영위원장은 "신촌대학교라는 이름에는 지역색이 강하다, 수업도 주로 신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노량진 대학교, 이태원 대학교 등 서울 주요 도시명을 시작으로 전국 방방곡곡의 지역명을 본따는 방식으로 전국에 캠퍼스를 추가 개설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사실 신촌대학교에는 변변한 캠퍼스 하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수업 역시 신촌의 몇몇 스터디 공간을 대관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왔다. 이태원 대학교 역시 개설을 앞두고 '수업 장소'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이태원의 관할 지자체인 용산구청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취지에 공감한 용산구청이 수업 장소를 무상 제공하기로 한 것. 덕분에 이태원 대학교는 이태원에 위치한 '용산문화예술창작소'를 캠퍼스로 제공받게 됐다. 번듯한 강의실까지 생기자, 대학 개설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태원 대학교 운영방침을 설명하는 윤범기 운영위원장. 그는 교육 혁신이라는 뜻을 품고 '신촌대학교'와 '노량진 대학교'에 이어 '이태원 대학교' 개설을 주도했다.
 이태원 대학교 운영방침을 설명하는 윤범기 운영위원장. 그는 교육 혁신이라는 뜻을 품고 '신촌대학교'와 '노량진 대학교'에 이어 '이태원 대학교' 개설을 주도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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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제한, 나이 제한 없는 이상한 학교

이태원 대학교 역시 신촌대학교와 마찬가지로 이색적인 과목명이 돋보인다. 현재 30여개에 이르는 개설 예정 과목들 중, 어느 하나 튀지 않는 이름이 없다.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기창(旗槍)을 배우는 '조자룡창술배워볼과', 솔로탈출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난 언제 제대로 연애할과' 등 이색적인 과목명은 수강생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개설되는 과목들만큼이나, 과목 개설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도 다채롭다. 이태원 대학교에서는 과목을 개설해 운영하는 이를 '학과장'이라고 부르는데, 학과장들 중에는 현직 언론인, 교수, 변호사, 아나운서와 같은 전문 직업인들부터 대학생, 가정주부 심지어 최연소 고등학생도 있다.

이태원 대학에 학과장이 되는 데 있어 학력 제한, 나이 제한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목 개설을 위한 한 가지 요건이 있다면 '청년의 흥미를 끌 만한 과목'이기만 하면 된다.

이태원 대학교 10월 개설강좌 시간표. 이름부터 톡톡 튀는 30여개의 과목들이 눈길을 끈다.
 이태원 대학교 10월 개설강좌 시간표. 이름부터 톡톡 튀는 30여개의 과목들이 눈길을 끈다.
ⓒ 이태원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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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런 튀는 과목들만 골라 개설하는 걸까. 윤 위원장은 "기존의 대학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는 "이제는 인생 2모작이 아니라 10모작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라고 강조한다. 어느 한 직장에 길게 자리 잡지 못하고, 이직과 전직을 밥 먹듯이 하는 것이 요즘 시대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자라나는 미래 세대의 기대 수명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런 현실에서 한 가지 전공과, 직업만을 고수하는 것은 스스로 도태되는 지름길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다 다양한 과목을 통해 수강생 스스로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찾게 도와준다.

그는 정부의 직업교육에 대해서도 매섭게 비판했다. "정부에서는 새로운 직업교육을 알선한답시고 대대적으로 지원하고 광고하지만, 거기에만 매달리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정부가 선전하는 직업교육에 우르르 몰리다보면 결국 그 직업도 '레드오션'이 되는 건 시간 문제라는 것.

그는 단적인 예로 '바리스타'를 예로 들었다. "정부에서는 새로운 대안직업으로 바리스타를 권하지만, 지금 카페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미래를 위한 대책으로 바리스타에만 매달리는 것은 위험한 도박에 가깝다"고 충고한다.

수강생들의 요청에 따라 강좌가 개설되기도

과목 개설은 학과장 개인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지만, 수강생 및 다른 학과장들의 요구에 맞춰 개설되기도 한다. 이태원 대학교에서 유일한 역사 강좌인 '강제동원 그들을 아십니과'가 그에 해당한다.

"갈수록 잊혀져 가는 우리 역사에 대해 배워보고 싶다"는 학과장들의 요청에 따라 개설된 이 과목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자행된 강제동원의 역사를 배워보고, 피해자들의 아픔을 공유할 목적으로 개설됐다.

이태원 대학교 개설과목 '강제동원 그들을 아십니과' 포스터.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자행된 강제동원 및 수탈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피해자들의 아픔을 공유하려는 목적으로 개설됐다.
 이태원 대학교 개설과목 '강제동원 그들을 아십니과' 포스터.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자행된 강제동원 및 수탈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피해자들의 아픔을 공유하려는 목적으로 개설됐다.
ⓒ 양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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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맡은 이는 얼마 전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양희성(23)씨. 그는 할머니와 함께 '수요집회'에 관한 뉴스를 보던 중, 할머니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어릴 적 할머니와 친했던 언니도 일본의 거짓말에 속아 끌려갔다는 것. 양씨는 남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역사가,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강제동원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작하다가 영장이 날아와 군에 입대했다. 군에 가서도 그는 밖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와 관련되어 날아오는 소식들은 늘 부정적인 뉴스들 뿐이었다.

"군대에서 뉴스를 보는데 계속 안 좋은 소식만 들려왔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을 방해하는 외교부와 피해자들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통과된 위안부 합의 소식을 접하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역하자마자 내가 알고 있는 진실에 대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역 후 자신의 뜻을 실현하고자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학사 학위조차 없는, 이제 막 제대한 청년을 연사로 세워줄 강단은 없었다. 그때 마침 구세주가 나타났다.

"평소 내 뜻을 알고 있던 지인으로부터 이태원 대학교에서 강의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강의를 하려고 해도 마땅히 할 곳이 없어 막막하던 차에, 아주 좋은 기회라 생각해 바로 합류를 결정했다."

그가 이번 강의에 활용할 교재도 군 복무 시절 틈틈이 수기로 작성한 '친필 교재'다. 그는 "단순히 감정으로 분노하는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실제로 그들이 어떠한 대우를 받으며, 어떻게, 왜, 누가 끌고가고, 끌려갔는지, 그리고 왜 합의가 안 되는지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한 쟁점에 대해 분명하게 알아보고자 한다"며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어떤 점에서 잘못된 결정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많은 청년들이 들었으면 한다"고 특별히 당부했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로부터 증언을 녹취하는 양희성 씨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로부터 증언을 녹취하는 양희성 씨
ⓒ 양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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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없고, 학점 없고... 등록금은 '반의 반의 반의 반값'

이태원 대학교의 또다른 특징은 '학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당연히 시험도 없다. 수강생들에게는 그저 순수하게 과목을 즐길 것을 강조한다. 기존의 대학이 더 이상 순수한 자기계발과 학문의 완성을 위한 장이 아니라, 학점에만 목매는 풍조로 변질된 것을 비판하기 위함이다.

이태원 대학교의 등록금 정책 역시 주목할 만하다. 한때 전국의 대학교가 '반값 등록금' 문제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반값 등록금 실현도 어려운 마당에, 이태원 대학교는 파격적인 등록금 정책을 내걸었다.

'반의 반의 반의 반값 등록금'을 고수하기로 한 것이다. 기본 2과목 필수 선택에 8만 원으로, 과목당 4만 원의 등록금을 납부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등록금을 저렴하게 책정한 까닭 역시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대학 등록금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인 셈이다.

등록금이 저렴하다 보니 대학의 운영구조 역시 '재능기부'에 가깝다. 수강료의 절반은 학과장에게, 나머지 반은 강의 교보재, 강의실 대관료 마련 등 대학 운영비로 들어간다. 실제 대학 운영위원들에게 돌아가는 수입은 '0원'.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돌아이'들의 신념이 아니었다면 애당초 운영이 불가능한 수입구조다.

남들과 상생하며 살 수 있는 길을 모색

부모의 기대와 사회적 시선을 충족시키기 위해 원치 않는 전공을 선택하는 고3 수험생들,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의 문턱을 넘기 위해 도서관에 틀어박혀 토익 시험에 매달리는 대학생들. 이도 저도 안된다 싶은 이들은 결국 '노량진 고시촌'으로 향한다. 이러한 세태는 기존의 대학 교육이 한계에 직면했음을 증명한다.

어쩌다가 젊은이들이 이렇게까지 '획일화된 길'로 내몰리게 되었을까. 이태원 대학교에 학과장으로 참여하게 된 A씨는 "정답을 요구하는 사회가 이런 현실을 만들어낸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인서울 4년제 대학 출신으로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평생 연금이 보장되는 공무원이 되는 삶이 과연 정답인 것일까.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더라도 자신이 정말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 아니겠느냐"며 "많은 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응원하기 위해 이번 과목 개설에 기꺼이 동참했다"고 밝혔다.

이태원 대학교 PT 발표 현장. 이태원 대학교에 과목 개설을 신청한 학과장들은 다른 학과장들 대상으로 5분 PT 발표를 통해 과목 개설의 적합 여부를 심사받는다.
 이태원 대학교 PT 발표 현장. 이태원 대학교에 과목 개설을 신청한 학과장들은 다른 학과장들 대상으로 5분 PT 발표를 통해 과목 개설의 적합 여부를 심사받는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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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윤 위원장은 "결국 남을 짓밟아야만 일어설 수 있는 과열경쟁사회에서, 남들과 상생하며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이태원 대학교를 비롯한 모든 대안대학의 최종 목표일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대학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 사회에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출범하는 이태원 대학교.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그 작은 움직임이 사회를 바꾸는 바람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Tip] '이태원 대학교' 수강신청은 어떻게 하나

이태원 대학교의 공식 개강일은 10월 1일(토)이다. 개강 전 날인 9월 30일(금)까지 수강신청이 가능하며, 구글독스(http://goo.gl/Zfc2vY) 혹은 전화(010-4215-0524)로 수강신청을 하면 된다. 기본 두 과목 필수 선택에 수강료는 8만 원이며, 과목을 추가 수강할 시 한 과목 당 4만 원의 추가 비용이 존재한다. 용산구민에게는 1만 원 할인혜택이 적용된다.

이태원 대학교 수강생 모집 공식 포스터
 이태원 대학교 수강생 모집 공식 포스터
ⓒ 이태원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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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문의: 이태원 대학교 (010-4215-0524)



태그:#이태원 대학교, #신촌대학교, #열정대학, #대안대학,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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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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