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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서울시가 앞서 시행하고 있는 박원순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청 정문.
 김영란법 시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서울시가 앞서 시행하고 있는 박원순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청 정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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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즉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시행이 불과 일주일 앞(28일)으로 다가왔다. 직접 적용 대상자만 400여만 명, 넓게 잡으면 전 국민이 적용받을 수 있는 만큼 대한민국 전체가 떠들썩하다.

사람들은 만나는 자리마다 김영란법의 적용 범위나 그 영향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고, 각 기관과 기업들은 이미 수차례씩 설명회를 열어 애꿎은 직원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 특히 이른바 '시범케이스'에 걸리지 않도록 시행 직후에는 바싹 엎드릴 것을 노골적으로 주문하는 곳도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유독 무덤덤한 곳이 있다. 바로 서울시가 그렇다. 서울시 역시 김영란법 대응 TF를 구성하고 직원들 상대로 교육을 실시하는 등 대비하고 있지만 직원들의 표정에서 특별히 긴장하는 눈빛은 없다.

서울시가 이같이 느긋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2년 전부터 김영란법보다 훨씬 더 세다고 하는 '박원순법'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돈 1천원만 받아도 처벌... 지금까지 8명 '원스트라이크아웃'

박원순법이란 공무원이 단돈 1000원만 받아도 금액 규모나 대가성, 직무 연관성 등을 불문하고 강력히 처벌토록 한 서울시의 '공무원 행동강령'이다.

100만원 이상이란 단서가 붙은 김영란법에 비해 돈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일단 받았다 하면 중징계를 내리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가 적용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평까지 듣고 있다.

지금까지 '원스트라이크아웃제'에 의해 징계된 서울시 공무원은 파면 4명, 해임 3명, 강등 2명 등 모두 9명. 파면 조치가 내려지면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 연금마저 한 푼도 못받게 되며, 해임의 경우 연금의 일부(반 정도)밖에 수령할 수 없다. 공직사회에 '퇴직 후 연금 받기 위해 공무원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공무원들이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직무 관련자들에게서 수십만원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은 게 적발돼 막상 해당 구청에서는 자체 규정에 따라 경징계 의견을 냈으나 서울시로부터 해임 이상의 중징계를 받거나, 이후 소청이나 소송까지 가서 감경을 받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시행 초기 본청, 산하기관만을 대상으로 했던 것을 지난달부터는 19개 전 투자·출연기관까지 전면 확대 시행하고 있다.

박원순법 '원스트라이크아웃제' 적용 현황
 박원순법 '원스트라이크아웃제' 적용 현황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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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비위 확 줄어... 공무원 89% "공직사회 긴장도 높아졌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박원순법 시행 후 공무원 비위 건수가 대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시행 전 1년간(13.10~14.9) 금품수수·음주운전·성범죄·복무위반·상해폭행 등 공무원들의 비위 건수는 모두 73건이었던 반면, 시행 후 1년간(14.10~15.9)은 50건으로 32%가 줄어들었다. 이후 6개월간(15.10~16.3)은 11건으로 나타나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시행 1년이 지난 작년 9월 서울시 공무원 16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89%가 "박원순법 시행으로 서울시 공직사회 긴장도가 이전보다 높아졌다", 93%는 "박원순법이 공직사회 청렴성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는 긍정 답변을 내놓았다.

이와 함께 박원순법 도입과 함께 개설한 공직비리통합신고센터 '원순씨 핫라인'에 접수된 시민들의 제보 및 신고는 무려 670%(110건→746건)나 급증, 청렴한 공직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도 덩달아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박원순법 시행은 중앙정부에까지 영향을 미쳐 지방공무원 징계 기준이 엄격해졌다. 과거에는 공무원들의 금품 수수 징계기준이 100만원, 300만원으로 제각각이었으나, 작년 11월 행정자치부는 이를 박원순법과 동일하게 100만원으로 하향·일원화 했다.

박원순법 대 김영란법... 밀어주고 끌어주고

박원순법과 김영란법을 태생부터 따져보면 두 법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일란성쌍둥이같은 존재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1년 6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공직사회 기강확립을 위해 제안했던 법이다. 그러나 제안과 함께 '한국인의 관행에 어긋난다', '인간관계를 해친다', '경제활성화를 방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논란이 붙어 속도가 나지 않자 서울시가 '선수'를 친 게 박원순법이다.

김영란법은 법률이기 때문에 국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박원순법은 서울시의 의지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행동강령'이기 때문에 박원순법은 2년 전인 지난 2014년 10월 비교적 손쉽게 도입됐다.

말하자면 박원순법의 모태가 김영란법인 셈. 그러나 김영란법 역시 박원순법에 빚을 졌다는 평가도 많다. 즉, 박원순법 시행 2년 동안 서울시 공무원 사회에 청렴문화가 확산됐고,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친 증거가 없기 때문에 헌재 '합헌'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얘기.
김영란법과 박원순법 비교
 김영란법과 박원순법 비교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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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둘 가운데 어느 쪽이 셀까.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김영란법은 법률이고, 박원순법은 서울시 공무원들의 행동강령이다. 따라서 김영란법은 법적 근거가 명확하고, 적용 대상이 우리나라 전체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 등 일부 민간인까지 포함된다는 점에서, 법적 근거가 미약하고 서울시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박원순법에 비해서 훨씬 강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처벌 기준으로 들어가면 박원순법이 더 강력하다.

우선 김영란법은 부정청탁 처벌 대상으로 인허가, 인사, 예산, 수사, 병역, 계약, 심의 등 15개 유형을 들고 있지만, 박원순법은 공무원의 모든 업무를 청탁금지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 등이 직무 관련 또는 대가성과 관계 없이 1회 100만원 또는 연간 300만원을 넘는 금품을 받으면 처벌되지만, 박원순은 '일체의 금품'을 금지시켜 단돈 1천원만 받아도 처벌된다.

김영란법은 1인당 3만원 이상의 식사, 5만원 이상의 선물, 10만원 이상의 경조사비를 받으면 처벌되지만, 박원순법은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한 경우에만 3만원 이상의 식사가 허용되고 경조사비와 선물도 통상적 사교·의례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경우에 한해 5만원까지만 허용된다.

김영란법은 본인 외 배우자까지 금품수수가 금지되지만, 박원순법은 본인과 배우자 외 본인·배우자의 직계존비속까지 금지된다. 또 김영란법은 8촌 이내 혈족끼리의 금품수수는 처벌의 예외로 두지만, 박원순법은 4촌끼리만으로 제한한다.

김영란법은 직무와 관련되거나 지위·직책 등을 통해 요청받은 외부강의나 토론 등으로 받은 사례금 상한액을 시간당 장관급 50만원부터 5급이하 20만원까지 규정하고 있지만, 박원순법은 대가를 받는 모두 외부강의와 토론에 대해 시장 40만원부터 5급이하 10만원까지 제한하고 있다.

특히, 자신이 수행하는 직무가 본인,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이해와 직접 관련되거나 직무관련자가 학연, 지연, 직연 등 지속적 친분 관계에 있는 경우 스스로 그 직무에서 배제되는 '이해충돌방지조항'은 김영란법에는 없고 박원순법에만 있는 것이다.

당초 김영란법에서도 있었지만 법안 도입과정에서 삭제된 반면, 박원순법은 3급 이상 고위 공무원을 대상으로 이해충돌 심사를 연간 1회 의무화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해충돌 심사대상을 향후 4급으로 확대 시행할 방침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등 시청 공무원들이 지난 1일 국민권익위원회 성영훈 위원장(왼쪽)으로부터 '김영란법' 강연을 듣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등 시청 공무원들이 지난 1일 국민권익위원회 성영훈 위원장(왼쪽)으로부터 '김영란법' 강연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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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소송으로 낮아지는 징계 수위... 박원순법은 실효성이 약하다?  

한편,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한 번 수수하면 공직사회에서 퇴출시킨다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 실시 이후 대상자들의 징계 수위가 소청이나 소송 등으로 당초보다 낮춰지는 사례가 발생, 법적 구속력이 약한 박원순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체로부터 50만원의 상품권과 12만원 상당의 놀이공원 이용권을 받았다가 서울시로부터 해임 처분을 받고 '원스트라이크아웃'된 송파구 간부가 지난 5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고 원직에 복귀한 사례가 대표로 꼽힌다.

한 사회단체 간부는 "강력한 처벌을 받아도 소송 등으로 취소되거나 징계수위가 낮아진다면 법 취지 자체가 약해지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같은 우려에 대해 서울시는 지나친 '기우'라고 반박한다.

강희은 서울시 감사위원회 감사과장은 "지금까지 원스트라이크아웃 된 공무원이 소송까지 가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송파구 사례밖에 없다"며 "이런 일은 공직사회뿐 아니라 어느 기업에서도 있을 수 있는데, 그 한 건 때문에 법 취지가 약해진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강 과장은 이어 "대법원이 송파구 사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것도 박원순법이 잘못 됐다는 것이 아니고 금품수수 행위가 능동적이지 않았다고 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공무원이 어떤 행위를 하기 전에 법 위반 여부를 미리 문의하는 '사전컨설팅감사'제도를 확대 시행하고, 해당 조직이 직원들의 법 위반을 예방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 감독을 했다면 면책해주는 '자율준수프로그램'을 올 연말까지 도입하는 등 강력한 처벌 일변도에서 벗어나 비위 행위를 사전예방하는 방향으로 박원순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방침이다.


태그:#박원순법, #김영란법, #청탁금지법, #파면, #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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