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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는 목사들의 성 문제로 무너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ID YH**)

전병욱·이동현·김해성 목사 등 잇달아 벌어지는 교회 목회자(목사) 성추행·성폭행 문제에 한국 교회는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까. 기독시민단체인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가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교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제안포럼'을 열었다. 단체 공동대표인 박득훈 목사는 "피해자들에 사과한다"라고 말하면서 포럼을 시작했다.

"먼저 목회자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그분들이 듣고 싶은 사과는 가해자(목사)의 사과겠지만, 쉽지 않은 현실에서 동료 목회자의 사과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목회를 위해 노력하는 동료 목회자들에게도 양해를 구합니다. 당장은 아프고 힘들더라도, 치부를 드러내어 수술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중병이 치료될 것입니다."

기독시민단체인 교회개혁실천연대가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교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제안 포럼'을 열었다. 인사말을 하고 있는 박득훈 목사(공동대표)
 기독시민단체인 교회개혁실천연대가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교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제안 포럼'을 열었다. 인사말을 하고 있는 박득훈 목사(공동대표)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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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목회자 성폭력'이라는 치명적 중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라며 "500년 전 종교개혁 때도 교황·사제들의 성적 타락이 만연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교회 성폭력은 표면적 증상일 뿐, 교회 내 여성차별 의식과 목회자 중심의 권력·위계 구조 등이 뿌리 깊은 원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2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포럼에서는 '교회 성범죄 관련 각 교단 헌법의 실태·처리 등 구조 연구(강문대 변호사)'와 '해외 교단의 성 정책 관련 자료 조사(김애희 사무국장)' 등 발제와 더불어, 교회 성폭력 근절 관련 심층 토론이 진행됐다. 토론에는 최유진 목사(숭실대 교수)와 홍보연 목사(대한감리회 선교국 양성평등위 공동위원장) 등 여성 목사, 권대원 삼일교회 집사(치유·공의를위한TF팀) 등이 참석했다.

해외 교단, 어떻게 처벌하나... "목회자 성범죄, 전적으로 목회자 책임"

김애희 개혁연대 사무국장은 "교회 내 목회자 성적 비행은 심각한 수준"이라며 "한국 교단이 어떤 정책적 노력을 해야 할지, 그 제안에 앞서 해외 교단의 관련 정책들을 살펴봤다"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목회자의 성범죄와 관련해 어떻게 처벌하는지 등 독일·미국 등 교회들의 사례를 발표했다.

미국 장로교회(PC USA)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독일 개신교회(EKD), 캐나다연합교회(UCC) 등 해외 교단 별로 목회자 성범죄 관련 사항들을 살펴보자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 모두 ▲ 교단이 앞장서 성범죄 피해 신고·상담 접수 기관을 운영하고 ▲ 성범죄 관해 목회자 책임을 크게 처벌하며 ▲ 피해자 구제 대책·절차 등을 자세히 안내하는 등 교단이 피해 구제 과정에서 조력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김 국장은 특히 "해외 교단에서, 목회자의 성적 비행은 모두 목회자의 책임"이라며 "이는 목회자가 그 권위와 힘을 남용해 기독교 윤리상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으로 취급된다"라고 밝혔다.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에게 비교적 우호적이고 관대한 한국 교회 분위기와는 상반된 모습이다(관련 기사: 한국 기독교회, 성추행 목사 절대 처벌 못 한다, '성추행 의혹' 김해성 목사 측 신자들 "목사님 믿겠다").

"해외 교단에서는, 교회 내 성폭력이나 성적 비행에 있어 모든 책임은 (여신도가 아닌) 목회자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목회자는 교인에 대해 절대적인 힘의 우위에 있다. 목회자에 비해 교인들과 전도사는 항상 자원과 힘의 사용에 있어 약자로 위치한다. 의미 있는 동의란 있을 수 없다. 표면상 합의로 이뤄진 관계라 할지라도,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비행임은 분명하다."(김애희 국장)

김 국장은 이어 "캐나다연합교회의 경우 매해 1회씩, 모든 교회 직원을 대상으로 성폭력·성 학대 예방 교육을 3일간 진행한다"라며 교단 차원의 성범죄 관련 교육을 강조했다. "해당 교단에서는 성적 학대(목회자 성범죄) 관련 기구 구성에서도 여성을 꼭 포함하고, 다수를 구성하는 위원이 여성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 교회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대안도 있을까? 김 국장은 목회자 청빙·피해자 지원 등을 들었다. "목회자 청빙 과정에서 미리 성 정책 지침서를 숙지·동의하는 절차를 거치고, 과거 성적 비행으로 인해 징계받은 적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교회 성범죄가 발생할 경우, 교단이 먼저 피해보상을 위한 보험에 가입하는 등 관련 법적 비용을 부담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 교회는 그렇지 않다.

"한국 교단? 총체적 부실"... 성범죄 처벌 규정 있는 교단 한 곳도 없어

현재 한국 교회 상황은 어떨까. 성범죄와 관련한 한국 교단의 현황은 해외 교단의 그것과는 정반대에 가깝다. ▲ 한국 교회 내 성범죄 관련 신고·상담기관 전무 ▲ 교단 노회·총회 등 남성 목회자 위주로 이뤄진 의결기구 ▲ 교회 내 뿌리 깊은 여성차별 ▲ 남성 목회자들의 낮은 성 평등 의식 등이 바로 그것이다.

'구강성교 강요' 의혹 등 전병욱 목사(54, 남,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성추행 피해자 측 8명의 주장·증언이 담긴 책 <숨바꼭질>을 펴낸 이진오 더함공동체 목사는 성범죄 대처 관련 한국 교회 현실을 "총체적 부실"이라고 비판했다. "성 평등 교육도, 관련 상담 기관도, 징계 규정도 없으며 처벌마저도 동료 목회자들의 '봐주기'로 인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총체적 부실"이라는 지적이다.

[관련 기사]
"성폭행 말하면 교회 사역 망쳐" 교회 목사 성 추문 반복되는 이유
성관계는 하나님 뜻? '영적 아버지' 목사들의 성 추문 흑역사

실제로 강문대 변호사(법률사무소 로그)가 한국 교회 각 교단의 헌법(교회법)상 성범죄 관련 규율·이후 처리 실태 등을 살펴본 결과, 각 교단의 헌법(권징勸懲조례) 중 성범죄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는 헌법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즉 목회자의 성범죄를 직접적인 처벌 사유 또는 대상으로 삼는 교단은 한 곳도 없다는 뜻이다.

2010년 9월께 '구강성교 강요' 의혹 등 교인 성추행 논란이 불거져 이후 교회를 옮기고 징계를 받은 전병욱 목사(예장 합동 소속). 전 목사 측은 이와 관련, 2015년8월 "성추행 피해는 단 한 건","구강성교 아닌 자극적 농담"이라고 주장했다.
 2010년 9월께 '구강성교 강요' 의혹 등 교인 성추행 논란이 불거져 이후 교회를 옮기고 징계를 받은 전병욱 목사(예장 합동 소속). 전 목사 측은 이와 관련, 2015년8월 "성추행 피해는 단 한 건","구강성교 아닌 자극적 농담"이라고 주장했다.
ⓒ 뉴스타파M, 조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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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여고생에게 4년 여간 수차례 성관계를 강요한 사실이 보도돼 지난 8월 자진사임·면직 당한 이동현 목사(49, 남, 전 라이즈업무브먼트 대표)의 경우에도 노회 징계 사유는 '성범죄'가 아니었다. 당시 이 목사는 '교리·도덕상으로 교인을 크게 실족하게 한 경우', '하나님 영광을 훼손하게 한 중죄를 범한 경우' 등을 근거로 처벌받았다.

이동현 목사가 속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예장 고신)은 물론 전병욱 목사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진보 성향으로 평가받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등도 구체적 징벌 규정은 없었다. 강 변호사는 "그나마 감리교(기독교대한감리회)·예성교(예수교대한성결교회) 교단의 경우 처벌 규정이 있긴 했지만, 동성애 등의 성관계 내용이지 성범죄 조항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포럼에서 "교회 내 성범죄가 발생한 경우, (교단 측은) '남자 목사'의 순간적 실수나 일탈 정도로 판단하곤 한다"라며 "피해자 진술이나 입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남성중심적 상황 판단, 피해자 실명 공개·비난 등 교단 측 피해자 2차 가해 등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09년4월 대법원 판결(2009도2001)을 예시로, "교회도 성범죄 관련 온정주의가 아닌 엄벌주의를 택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2009년 당시, 한 교회의  남성 목사가 다수 여성 교인을 추행하고서도 본인이 폭행·협박한 바 없으니 무죄라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피해자의 여성 교인이 피고인 남목사에 대해 '반항이 현저하게 곤란한 상태'에 있었다며 유죄를 인정, 즉 (목회자의) 준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한 것입니다."(강문대 변호사)

기독시민단체인 교회개혁실천연대가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교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제안 포럼'을 열었다. 왼쪽부터 홍보연, 권대원, 최유진, 강문대, 김애희, 박득훈 목사 등 참석자.
 기독시민단체인 교회개혁실천연대가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교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제안 포럼'을 열었다. 왼쪽부터 홍보연, 권대원, 최유진, 강문대, 김애희, 박득훈 목사 등 참석자.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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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에서 최유진 목사(여성·숭실대 교수)는 "예장 통합 측이 2015년 제정한 '목회자 (성)윤리 강령' 등을 각 교회에서 실제적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라며 "그러나 이 또한 선언적 수준이어서 한계가 있다, 이런 성범죄가 재발되는 이유는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들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윤실(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제안한 전병욱-이동현 법 등 특별법 제정에 힘써야 한다고 본다"는 설명이다.

최 목사는 앞서 "이동현 목사가 이끌던 청소년 단체는 교회가 아닌 반면, 전병욱 목사 건은 따르는 교인 등 서포트 그룹이 있던 게 달랐던 것 같다"라며 두 사건 차이점을 설명했다. 홍보연 목사도 이어 "성폭력은 성차별이 있는 곳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교회 안에 만연한 성차별부터 극복하려는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각 교단은 현재 1년에 한번 열리는 총회 시즌이라고 한다. 권대원 집사는 "곧 예장 합동 교단의 총회가 열린다, 앞서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전병욱 목사 건을 총회 차원에서 다루게 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수 피해자가 나왔음에도 노회가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좋지 않은 선례가 남을까 걱정"이라며 "이와는 별도로 성범죄 피해자 관련 상담 기구 설립 등을 당회가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포럼 후 이어진 질의응답 과정에서 한 참석자는 "(성범죄 관련 피해자 주장이) 사실이 아닐 경우에 대한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홍보연 목사는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 드러내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며 "무고한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라고 말했다.

강 변호사도 "(성범죄 피해자는) 신변 노출·구속 위험 등을 감수하고 나오는 것"이라며 "사실이 아닌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범죄만큼은 (총회 목회자들이) 자신이 전문가 아님을 인정하고, 차라리 전문성 있는 타 조사기관에 맡긴 뒤 보고서를 받고, 그에 근거해서 최종적인 판단을 진행하는 게 낫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태그:#목사 성범죄, #성직자 성범죄, #전병욱, #이동현, #김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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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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