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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도 꽃이다 1,2
 풀꽃도 꽃이다 1,2
ⓒ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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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현실을 두고 보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작가는 3년간 집중적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학교와 사교육 현장을 찾아가 관련 종사자를 취재한 후 소설의 틀을 짜 원고지 2300매의 장편소설 <풀꽃>을 세상에 내놓는다."

출판사가 지난 7월에 내놓은 조정래의 <풀꽃도 꽃이다> 1, 2권(아래 <풀꽃>) 홍보 내용이다. 소설이긴 하지만 '3년간 집중 취재'한 현실성 있는 교육현장 고발 글이란 얘기다. 그러나 교사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사교육 천국, 학생 지옥, 엄마들의 부화뇌동, 혁신학교의 성공, 진보교육감의 탄생 등등 대부분의 내용은 누구나 아는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하지만 심각한 오류 또한 여러 곳에서 있었다.

우선 교육현실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잘못된 정황이 있다.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를 반대하는 여론이 커질수록 불도저식을 더욱 거세게 몰아대는 것과 똑같이 일제고사도 기세등등하게 밀어붙여 나갔다. …한 해 300명 선의 청소년 자살자가 해마다 증가해 일제고사 실시를 계기로 마침내 500명을 넘고 있었다."(1권)

조정래는 지난 6일 제7회 풀꽃콘서트에서도 "연간 550명의 아이들이 성적을 비관해 자살을 택합니다. 하루에 1.5명이 죽어가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주장한 수치는 많게는 5배가량 '뻥튀기'된 것이다. 교육부 통계를 보면 초중고 모두에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가 존재하던 2012년 초중고교 자살 학생은 139명이었다. 이후 2013년 123명, 2014년 118명, 2015년 93명으로 점점 줄어든다.

'자살 학생 수, 상담 대상' 데이터... '뻥튀기' 가능성

"고민이 생겼을 때 누구와 상담하느냐는 질문에 학생들 40.2퍼센트는 '친구'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0.9%였다. …엄마는 아예 없다.…아이들은 선생도 가차 없이 버려 상담 대상으로 0.1%도 나오지 않게 해버렸다."(2권)

나는 조정래가 적은 위 데이터를 찾지 못했다. 대신 다음과 같은 상반된 결과들만 찾을 수 있었다.

교육부가 2012년 전국 초중고생 5만7902명을 상대로 '고민 상담 대상'을 조사한 결과 고민을 상담하는 상대는 친구(43.1%)와 부모(30.1%)였다. 교사는 2.8%였다. 지난 해 여성가족부와 통계청 조사 결과도 고민 상담 대상은 친구와 부모가 각각 46.2%와 26%였다. 한 출판기업이 올해 5월, 전국 초중생 5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고민을 가장 잘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엄마(61.6%)와 친구(16.4%), 아빠(13.7%) 순이었다.

둘째, 이 책에는 교육현실에 맞지 않는 오류 사례가 여럿 있다. 일제고사 폐지, '오륀지' 사건, 왕따 처벌 문제 등이 그것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일제고사에 대한 조정래의 오류 또는 착각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일제고사를 무한경쟁의 뼈대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오류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일제고사 폐지 여부에 대한 잘못된 서술이 책 10여 군데에나 나온다.

"(이명박이) 네 개의 큰 강을 '죽이기에 성공'한 것처럼 일제고사도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을 괴롭히고 국가 교육을 망치는 여러 상처를 남기고 막을 내리게 되었다."(1권)

"교장 선생님. …결국 일제고사는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모의고사는 자율로 하되, 성적공개는 공립에서는 전면 금지시켰습니다. 사립학교만 자율에 맡겼는데…."(고교교사인 강교민 발언, 1권)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인 초중고 일제고사가 생긴 때는 이명박 정부 첫 해인 2008년이다. 그런데 전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올 해 6월에도 일제고사를 치러야만 했다. 박근혜 정부 첫 해인 2013년에 폐지된 것은 초등학교 일제고사일 뿐이었다. 이 소설에서 무한경쟁의 상징으로 등장한 중고교 일제고사는 없어지지 않았다.

멀쩡히 살아 있는 중고생의 일제고사, 없어졌다고 하다니...

게다가 강교민의 발언 '성적 공개는 공립에서는 전면 금지시켰지만 사립엔 자율에 맡겼다'는 발언 또한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공사립 고교 모두 교육관계법령에 따라야 하는 동일한 '공교육 기관'이기 때문이다.

일제고사에 대한 다음 내용은 더 심각하다.

"일제고사를 볼 때마다 아들의 등수가 떨어진다고 아들을 때려오던 엄마가 매를 견디지 못한 아들 손에 맞아 숨진 것이었다."

1년에 한 번 보는 일제고사는 개인 학생의 등수를 공개한 적이 없다. 학교도 학생의 등수를 알 수 없다. 다만 학생 개인에게 '우수학력·보통학력·기초학력·기초학력미달' 등 4단계로만 통지한다. 따라서 '등수가 떨어진다고 아들을 때렸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이 책에서 조정래는 일제고사와 대입 모의고사를 헷갈렸을 수는 있다. 교육용어에 대한 착각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 얘기다.

이런 착각은 '오륀쥐' 사태에서도 발생한다.

"우리 대통령께서는 두 번째로 영어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오륀쥐'로 강조하게 되자…"(1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2008년 대통령직인수위 당시 영어 조기교육을 강조한 것은 맞다. 하지만 '오륀지'로 강조한 장본인은 이 당선인이 아니라 당시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이경숙이었다.

다음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

"학교폭력은 상해 피해를 일으키기 때문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만들어 철저히 처벌을 하고 있어서… 그러나 왕따는 상해 피해가 없어서 그런 조처(학교폭력대책자치위 회부)를 안 취했기 때문에 무슨 처벌 방법이라는 게 없습니다."(강교민 발언, 1권)

따돌림은 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에 따라 학교폭력의 범주에 들어가는 폭력행위다. 따라서 왕따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에 회부하지 않았다거나, 처벌 방법이 없다는 내용은 잘못된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이 책을 펴낸 '해냄'출판사 관계자는 기자의 서면질의에 대한 구두 답변에서 "이 소설은 (조정래) 선생님이 교육단체 전문가와 도서, 뉴스, 교육현장 교사들 의견을 종합하고 참고해서 쓰고 교정과정에서도 (사실관계를) 확인한 것"이라면서 "개별적으로 (진위 여부를) 대답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선생님과 상의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일제고사 폐지 건도 선생님께서 현장교사 분들 의견을 많이 듣는 등 확인하신 것"이라면서도 "기사로 지적된 것에서 수정할 것이 있으면 나중에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풀꽃도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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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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