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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대의 명절' 이라는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농산물 직거래를 하는 생활협동조합(생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것을 실감했다. 먼저 매장에 입고되는 물건의 양이 많아졌는데 일상적으로 입고되는 물품 외에도 명절 차례상에 올리거나 선물하는 용도의 과일이나 한과 등이 많이 입고된다.

생협 아르바이트를 하며 본 소비의 경향성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제수용품 등을 준비하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제수용품 등을 준비하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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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과일이나 한과를 비롯한 상품들을 사가는 사람들의 성별과 연령대가 정해져있다. 생협이라는 특성이 존재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내가 일하는 곳의 주 고객은 여성, 특히 중장년의 여성이다.

평소에도 빵이나 과자, 음료수 같은 주전부리 종류는 비교적 다른 소비자층이 많이 찾곤 했지만 기본적인 식재료는 아무래도 중장년의 여성이 많이 구매했다. 사실 압도적인 수준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일상적인 농산물이나 식품류뿐만 아니라 명절에 입고되는 과일이나 한과 선물세트의 경우에 그것을 주로 구매하는 이들은 여성이었다. 연휴를 앞두고 일을 하며 보니까 과일 상자를 택배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거나 명절 준비를 위한 재료들을 잔뜩 사 가는 사람들도 여성, 특히 앞서 이야기한 대로 '주부'라고 할 수 있는 중장년의 여성이었다.

어느 곳을 가도 쇼핑하는 것은 여성들

비단 내가 일하는 생협이 아니라 대형마트를 가도 양상은 비슷했다. 장을 보기 위해 집 인근에 있는 대형마트를 찾았을 때 거기서 장바구니를 들거나 카트를 끌고 쇼핑을 주도하는 이들의 대부분 역시 중장년의 여성이었다.

고기 코너, 채소 코너, 수산물 코너를 가리지 않고 여성 소비자들은 마트를 돌아다녔고, 아마 가족 구성원일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따라다니거나 짐을 드는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마트 내 판촉 내용에도 "주부님들" 이라는 말이 매우 많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말은 곧 '주부'들이 차례 음식이나 다른 요리를 위한 식재료를 많이 구매하는 '원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을 주된 판촉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인데, (적어도) 식료품에 있어서 판촉의 대상인 (중장년의) 여성이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었다거나, 여성주의적 문화가 뿌리내렸다거나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집안일, 이 사례들로 특정하자면 음식을 하는 것이 여전히 '주부'로 분류되는 여성의 몫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관찰을 한 결과 내린 결론은 식재료를 구매하는 거의 대부분의 과정에서 그들은 혼자였다. 생협 매장 안에서 그들이 장을 볼 때 '남편'들이 함께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었다. 장바구니를 옆에서 들어주는 수준은 차라리 양반이었다. 매장 밖에 대 놓은 차 안에서 여성들이 장 본 물건을 들고 타기를 기다리거나 매장 밖에서 왜 이렇게 안 나오냐는 눈빛을 하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효도는 셀프라는데…

텐바이텐 표어 종이 - 효도는 셀프
 텐바이텐 표어 종이 - 효도는 셀프
ⓒ 텐바이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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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에서건 마트에서건 재래시장에서건 장을 주도적으로 보는, 아니 정확히는 장을 주도적으로 봐야만 하는 위치에 있는 여성들은 그 장 본 거리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 주도적으로 음식을 한다. 집 안의 식구들이 먹을 저녁거리뿐 아니라 다가오는 추석의 차례상 음식도 신경 써야할 것이다.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들은 만들기 어렵거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 대다수이다. 예를 들어 잡채 같은 경우에는 재료를 하나하나 볶거나 데쳐 당면과 함께 양념장에 섞어야 하고, 전 같은 경우는 재료를 손질하고 밀가루와 계란물을 입혀 튀겨내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온 몸에 기름이 튀고 냄새가 배기 마련이고 그런 음식을 어찌 보면 쓸데없을 정도로 많이 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일종의 사회경제적 낭비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서 작용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앞서 여러 번 이야기한 성별 간 가사노동 분배에 대한 것이다. 전을 부친다는 말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여성이 팬 앞에 앉아 큰 소쿠리를 옆에 끼고 전을 부치는 것을 연상한다. 이러한 공통적 연상은 결국 실제고 그러한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인터넷에서 쓰는 시쳇말 중에 '효도는 셀프'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 특히 배우자에게 자신의 효도를 미루지 말고 직접 하라는 이야기이다. 한국의 차례 풍습은 대개 남자 측 조상에게만 지내거나, 혹은 그 위주로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심한 경우에는 차례 이후 여성과 남성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성별에 따라 상을 다르게 쓰고 그에 따라 반찬도 달라지는 경우도 여전히 존재한다. 남성 구성원 측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데 막상 그 차례상을 차리기 위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상을 차리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다. 이는 여전히 한국이 가부장적이고 성평등하지 못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재미있는 지점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내 부인이 추석 음식 하는 것을 '돕는다'"라며 반박하는 사람들이 꼭 보인다는 것이다. 누가 보면 자기 조상이 아니라 부인 조상 차례상만 차리는 듯 들리는 이 말은 그 자체로 굉장히 성차별적이다.

'같이'한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돕는다'는 것은 차례상 차리는 것은 결국 부인, 즉 여성의 일이고 자신은 그 일을 할 필요가 없지만 도와 준다는 꽤나 시혜적인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자가 벌어온 돈으로 상을 차리는 것이다" 라는 말도 달리곤 하는데, 이 역시 남성의 일(돈 벌어오는 것)과 여성의 일(가사노동을 하는 것)이 다르다는 이야기와 돈을 벌어오는 것이 가사노동보다 중요하다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 또한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있고, 그렇지 않은 여성들도 집에서 놀지 않는다.

국민의당의 이상한 추석 현수막

국민의당 현수막
 국민의당 현수막
ⓒ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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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운전 내가 할게~ 전은 당신이 부쳐~" 라는 국민의당의 추석 현수막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화자와 청자의 관계가 어떤지, 즉 부인과 남편인지 남편과 부인인지도 불분명하거니와 "나는 A를 했으니 너는 대신 B를 하라"는 일종의 보상적이고 '나는 할 일을 다 했다' 라는 무책임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와 청자를 어떻게 설정해도 문제점을 찾을 수 있는 문구인 것이다.

말마따나 '효도는 셀프'인 법이다. 적어도 이번 추석부터는 자신이 해야 할 효도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 특히 여성에게 미루지 않는 '셀프 효도'의 실천이 절실하다.  여성에게 가사 노동을 전가하고 자신은 여성의 일을 그저 돕기만 하면 된다는 인식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태그:#추석, #한가위, #가사노동, #차례상, #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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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글로 기억하는 정치학도, 사진가. 아나키즘과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자리(Frontier) 라는 다큐멘터리/르포르타주 사진가 팀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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