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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칭 '교통 오타쿠',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가 연재합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그런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 기자 말
지하에 건설된 판교역 승강장의 모습.
 지하에 건설된 판교역 승강장의 모습.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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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 여주시로 대표되는 경기도의 동남부 지역은 도로교통이 강세인 지역이었다. 이전에 일제가 쌀 수탈을 위해 부설한 협궤철도인 수려선에 대한 수요가 1971년 영동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극도로 적어졌다. 결국 수려선은 이듬해인 1972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는 영동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등 굵직한 노선들이 이들 지역을 통과하고 있지만, 수요를 분담할 국도망, 시내교통망, 그리고 철도망이 빈약해 교통분담이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 문제 중 대표적으로 나타난 것이 매 주말, 그리고 매 추석마다 시민들이 겪는 영동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의 심각한 정체가 아닐까.

그래서 2016년, 수려선이 반쪽이나마 부활한다. 바로 시흥시 월곶역과 원주시 무실동의 신원주역, 대관령을 거쳐 강릉을 잇는 경강선 계획이 세워져, 공사가 시작(2007년)된 지 10년만에 1단계 구간인 판교-여주 구간이 개통하는 것이다. 지난 9월 13일부터 18일까지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무료 시승행사가 진행됐고, 오는 23일 개통식을 거쳐 24일부터 정식 운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무료 시승행사의 첫날이었던 지난 13일 판교에서 여주, 여주에서 부발까지 시운전 열차를 탑승했다. 한 시간 간격으로 다니던 열차에 탑승한 후기, 그리고 이번 노선의 기대점과 부족했던 점까지 담아본다.

시운전 행사가 열린 판교역의 모습
 시운전 행사가 열린 판교역의 모습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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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에서 여주까지 48분... 버스보다 더 빨라요

첫 시승일이었던 13일 오후 3시, 판교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탔다. 4량 편성으로 이루어진 열차는 블루톤이어서 보기에 꽤나 좋았다. 이날 열차에 엄청난 수의 인파가 몰리면서 흡사 9호선 급행열차를 보는 듯했다. 탑승한 시민들은 승객이 많다는 사실에 불평을 표하기는커녕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그 배경에는 시간과 요금이 깔려 있었다.

이번에 나온 시간표에 따르면 판교에서 여주까지 48분, 운임요금은 2150원이었다. 비슷한 구간을 운행하는 성남-여주간 시외버스의 요금이 5500원(소요시간이 1시간 30분)인 것과 비교하면 요금은 1/3에 불과하고 소요시간도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판교역, 이매역에서 지하철과 환승을 할 수 있고, 다른 역에서 시내버스와 환승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제 시민이 체감하는 요금은 더욱 줄어든다.

열차는 이매역을 지나 성남시내를 그대로 관통해 광주시로 들어섰다. 삼동역을 지나 경기광주역까지 갔다. 경기광주역 인근에는 개발 호재가 열려 광주역세권개발사업이 착착 진행 중이었다. 이번에 개통되는 모든 역 인근에 개발 붐이 일었다고 하니, 철도를 중심으로 개발이 이루어졌던 근대시대 도시 형성 모습이 떠올랐다.

시운전에 대한 기대 탓이었는지, 꽤나 많은 승객이 열차 안에 들어찼다.
 시운전에 대한 기대 탓이었는지, 꽤나 많은 승객이 열차 안에 들어찼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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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역인 이천역, 부발역 등을 지나 세종대왕릉역에 도착했다. 원래 공사명은 능서역이었는데, 여주시가 세종대왕릉을 기념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놓은 이름이라고 했다. 선릉역, 사릉역과 같이 세종대왕릉 대신 '영릉'이라는 정식 이름이 있는데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의아했다. 또 영어 표기에서도 단순히 음차한 'Sejongdaewangneung station'을 사용한 것도 외국인 관광객을 배려하지 않은 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역인 여주역에서는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다. 대부분 승객이 열차에서 내리지 않고 되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연계교통도 각 지자체에서 임시버스를 운행하면서 나름대로 잘 되는 모양인데, 대다수 시민들의 목적은 그냥 열차를 타 보는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몇몇 승객이 왜 사람을 내리게 하지 않느냐고 큰 소리로 항의하는 부끄럽고 멋쩍은 모습도 보였다.

승강장에 마련된 대기 셀터의 모습.
 승강장에 마련된 대기 셀터의 모습.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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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를 타고 아까 지난 부발역으로 돌아왔다. 추후 평택부발선, 중부내륙선 등이 만나는 중요한 역이 될 예정이고, 이미 차량기지도 이곳에 마련된 상태이다. 내리는 승객은 많지 않았다. 부발역을 비롯해 거의 모든 지상역에는 에어컨이 달린 대기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지상역의 대부분이 기온 문제로 승객들의 비판을 받는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대기실 마련은 좋은 모습이었다.

크지는 않지만, 수요 예측이 돋보이는 역들이 꽤 많았다. 가까운 미래를 대비한 듯했다. 앞서 거쳤던 역들에도 확장을 위한 간단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앞서 건설된 노선들이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망신을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괜찮은 결정이다.

또한 몇몇 역이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개통해 '선개통 후완공'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였던 것에 반해, 이번 경강선 전철은 충분한 시운전 기간을 두고, 역사를 모두 완공시킨 상태에서 개통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준비도 완료, 그리고 시운전도 완료한 상태로 경강선은 개통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영동선, 경부선의 새로운 바이패스 될까

경강선의 현재 종착역인 여주역의 모습.
 경강선의 현재 종착역인 여주역의 모습.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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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노선이 기대를 얻고 있는 것은 단순히 이천시, 광주시, 여주시 등 철도가 지나지 않았던 시 지역에서 철도가 생겨난 것 때문이 아니다. 이 노선은 노선명을 배경에 둔 '큰 그림'을 놓고 봐야 한다. 경강선의 이름은 이전에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 있었던 가평군의 '경강역'과 유사한 이름이다. 즉 수도권 지역과 강원 지역을 잇는 철도로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미 지난 8월 26일 서원주-만종 구간이 미리 개통한 데 이어, 2017년에는 새로운 구간이 개통한다. 바로 평창올림픽의 교통대책을 위해 세워지는 만종-강릉 구간, 즉 원주강릉선이 개통한다. 경강선의 가장 중요한 구간은 대관령권의 교통 편의를 위해 세워지는 이 구간인 셈.

2023년에는 끊어져 있는 여주와 원주 사이가 이어지고, 수인선 월곶역에서 판교역까지, 수도권 남부를 관통하는 구간이 역시 이어진다. 월곶-안양-이천-원주-강릉을 잇는, 현재의 영동고속도로를 백업하고,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중앙선과 태백선 구간의 운송·교통 편의를 증진할 수 있다.

추후 세 개 노선이 분기하는 역으로 거듭날 부발역의 모습.
 추후 세 개 노선이 분기하는 역으로 거듭날 부발역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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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로운 경부축으로 손꼽히는 중부내륙선이 같이 공사에 들어간다. 부발역에서 분기해 충주역을 거쳐 문경역까지 이어지는 철도노선인데, 이후 문경역에서 이미 운행되고 있는 문경선과 경북선을 이용하면 김천역에서 경부선과 직결된다. 이는 현재 포화상태인 경부선의 운송용량 역시 분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SRT(Super Rapid Train)가 개통되어 수도권고속선의 종착역이 될 수서역에서 판교역까지, 연결선을 개설해 중부내륙선과 경강선을 이용하는 여객의 편의를 돕겠다는 계획도 눈에 띈다. 수서역에서 새마을호, 무궁화호와 비슷한 열차를 이용해 여행을 가는 것도 먼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이번 노선의 개통 의의는 단순한 노선 하나가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기존 노선, 나아가 기존 경부축, 영동축 도로교통과 경부선, 중앙선 철도교통의 혼잡을 분산시키고 철도 정시성을 높여주는 새로운 노선체계이다. 하지만 이 혼잡 분산 효과가 개통 이후 한동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로 연결선의 부재 때문이다.

'반쪽짜리 바이패스'는 안타까운 점

세종대왕릉역의 모습. 영어표기가 안타까운 역이었다.
 세종대왕릉역의 모습. 영어표기가 안타까운 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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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전구간 개통 이후에도 한동안 경부선의 화물열차, 여객열차가 경기도 구간의 새로운 선로를 이용해 신나게 달리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경부선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연결선의 부재 때문이다. 중부내륙선은 2019년 충주까지의 1차 개통 때도, 2021년 문경까지의 2차 개통 이후로도 당분간은 큰 수요를 분산하지 못할 노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만종역에서 강릉역까지의 대관령 구간은 중앙선과 연계되어 화물철도 운행이 가능해진다. 기획재정부에서 일 13회 화물열차 운행을 실시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예비타당성 조사보고서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장 열차가 붐비는 경부선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중부내륙선과, 서울 시내 철도와 중앙선 청량리- 원주 구간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부발 - 원주 간 구간이 연결노선 개통 이전까지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경부선에서 부발역까지 화물열차를 그대로 이어 줄 평택부발선 사업은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는 포함되어 있으나 아직 삽을 뜨지도 못한 상태이다. 판교역과 부발역 사이 구간은 지하구간에 역이 위치해 있고, 설계 축중((軸重)도 EL-18, 즉 전동차만이 안정적으로 운행이 가능한 축중이다. 평택부발선이 개통할 때까지는, 화물열차가 운행하기에 애로사항이 크다.

경강선과의 환승이 예정되어 있는 안양역과 광명역에도 경강선과 연결되는 선로를 건설할 계획이 현재 없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자연스럽게 경강선에 합류해 중앙선, 경북선 등으로 흩어질 여지가 현재로써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현재 수도권을 관통하는 경부선, 경의선, 경원선, 중앙선의 선로 용량이 포화인 상태에서 최대한 빨리 대책을 찾길 하는 바람이다.

경강선의 현재 종착역인 여주역의 모습.
 경강선의 현재 종착역인 여주역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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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교통수단 확충 등으로 해결방안 찾길

최근 개통하는 노선의 역이 반드시 갖고 있는 문제지만, 부발역, 여주역, 곤지암역 등 대부분의 역과 시내, 읍내 중심지와의 거리가 있다는 것 역시 문제이다.

이천역의 경우 이천시 버스를 운행하는 KD운송그룹과의 협의를 통해 버스 차고지를 이천역 인근으로 이전해 여객이 쉽게 이천역을 이용할 수 있게끔 했고, 앞서 설명했듯 경기광주역은 역세권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천시, 여주시, 광주시의 시내는 인구에 비해 좁고, 도로 역시 복잡해 많은 애로사항이 있다. 이번 노선의 개통과 더불어 좁은 시내가 갖는 교통정체, 인구 집중의 문제를 해소하고자 신시가지 조성 계획을 속속 내놓고 있다. 당장은 시내교통과의 연계를 편리하게 할 수 있게끔 하면서, 시내를 확장해 자연스럽게 역을 시내로 옮긴 효과를 낼 수 있는, 균형잡힌 개발계획을 내놓을 수 있으면 한다.

평창 올림픽 이후에도 수고할 수 있기를

경강선 무료 시승행사가 있었던 13일 판교역의 모습.
 경강선 무료 시승행사가 있었던 13일 판교역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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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강선은 2023년 전 구간이 개통하면 225.7km의 장거리 간선 노선으로 거듭난다. 해방 이후 공사가 시작된 간선철도 중에서는 가장 긴 거리의 간선철도이다. 그 이전 개통된 간선철도로는 1973년 완공된 104.1km 구간의 태백선, 2007년 개통된 61km 구간의 인천공항철도가 있었다.

첫 구간이 개통된다고 해서 바로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겠지만, 2017년 대관령 구간 개통 이후 태백선의 여객 수요와 화물 수요를 분산하고, 2019년 1단계 구간이 개통하는 중부내륙선을 비롯해 여러 연결선이 완전히 개통된다면 경부축, 영동축의 수요분산이 이루어지는 효자노선으로 거듭날 수 있다.

물론 이 노선의 계획은 '성남여주선' 계획에서 시작했다. 평창올림픽 개최로 인해 평창에 KTX를 투입할 계획이 잡힘에 따라 성남여주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이다. 절약을 추구하는 측에서는 환영하지 못할 일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수요분산과 정시성 회복이라는 큰 목표를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어찌보면 작은 광역철도 하나가 올림픽으로 인해 간선축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이 노선이 의도대로만 잘 운행된다면 '평창올림픽 덕분에'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평창올림픽 이후, 경강선과 중부내륙선을 통해 개량이 필요했던 노선들이 막힘없이 개량이 이루어지고, 꼭 필요한 지선이 끊임 없이 개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림픽을 계기로 개통한 노선이 포화에 달한 교통망을 분산시키는 '효자망'이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다른 나라에 마음껏 홍보할 수 있는 '올림픽으로 인한 경제성장 효과'가 아닐까.



태그:#교통, #대중교통, #경강선, #광역철도, #시외교통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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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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