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긴 연휴. 사정상 가족을 만나지도 못하고, 함께 놀 친구도 바쁘고, 여행을 갈 잔고도 없는 당신. 그대의 연휴를 지키는 건 그저 IPTV와 인터넷 뿐. 하지만 슬퍼하지 마세요! <오마이스타>가 연휴에 ‘몰아보기’ 좋은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모처럼의 연휴를 가족, 친지와 보낼 생각에 가슴이 벅찬 사람이 적지 않다. 고향으로 가는 열차표는 일찌감치 매진이고 명절 선물이며 제사음식 준비에 상점들은 특수를 누리고 있다.

물론 모두가 즐거운 건 아니다.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는 본래의 취지에도 가족 앞에 내놓을 것 하나 없는 사람의 마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평소 교류가 적은 친척들에게 '취업은 했느냐?', '연봉은 얼마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공부는 잘하냐', '대학은 어디 쓸 거냐' 따위의 질문을 받아야 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물론 묻는 사람도 할 말이 있다. 서로 바쁘게 지내며 한 해 몇 차례 만나는 게 고작인 상황에서 근황을 묻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친척들끼리 모이면 정치, 사회, 종교 이야기를 피해야 한다는데 근황까지 묻지 말라니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는 볼멘소리도 나올 법하다. 20세기를 살아온 부모세대와 21세기 문화에 익숙한 자녀세대가 갈등을 빚고,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한 가사노동도 화두로 떠오르며, 선물에 용돈까지 주머니도 가벼워지니 까딱 잘못했다간 득은 적고 실은 많은 연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TV 채널마다 추석 특선이란 이름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가족과 둘러앉아 함께 영화를 보고 그 감상을 나누는 일상적 경험이 도리어 서로 간에 애정을 깊게 하고 이해를 싹틔울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영화를 봐야 할까. 성룡도 맥컬리 컬킨도 예전 같지 않은 요즘, 5일 연휴 동안 볼 영화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다음 5편의 영화를 자신 있게 추천한다.

[하나] <어바웃 타임>

 <어바웃 타임>은 시간, 가족 그리고 사랑에 관한 훌륭한 영화이다.

<어바웃 타임>은 시간, 가족 그리고 사랑에 관한 훌륭한 영화이다. ⓒ UPI코리아


추석을 맞아 보면 좋을 영화를 꼽으며 가장 많이 고려한 건 역시 '가족'이다. 아무리 혼자 사는 세상이라지만 곁에서 든든한 지지가 돼주는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가 있을까? 1년에 한두 차례 만나는 친척이라 해도 멀리서 시간을 내 달려오고 이를 기다려 맞이한다는 자체가 근사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는 이 영화를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어바웃 타임>은 시간이란 회칼로 인생이란 생선을 거침없이 회 뜨는 영화다. 쓰고 보니 비유가 너무 폭력적인 듯하다. 시간이란 과도로 인생이란 과일을 거침없이 깎는 영화쯤으로 하자. 가족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르러 기꺼이 최고의 드라마를 선사하는 멋진 영화라는 뜻이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데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빌 나이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나는 그의 한없이 진지한 연기를 통해 이 영화가 한 단계 더 나은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가 아들에게 자기 죽음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선 셀 수 없이 시간을 거슬러 담담하게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노력한 아버지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고, 그가 아들의 손을 잡고 과거로 돌아간 장면에선 그와 그의 아버지가 떠났을 마지막 여행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순간의 연기로 이토록 진폭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싶다.

추석 연휴, 가족과 함께 볼 영화를 생각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면 가족이란 함께하는 존재라는 것, 부족하고 마뜩잖은 부분이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기꺼이 함께이기를 선택할 소중한 인연들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둘] <옥토버 스카이>

 꿈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청춘. <옥토버 스카이>는 그런 젊음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꿈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청춘. <옥토버 스카이>는 그런 젊음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 UPI


추석이라고 모두 친척들과 만나 웃고 떠들며 즐겁게 지내는 건 아닐 테다. 각자의 이유로 가족과 만날 수 없는 이들도 많다. 추석에도 이 땅의 수많은 청년은 취업준비를 하고, 역시 많은 아르바이트생이 일을 한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인, 어쩌면 꿈을 잃고 현실에 떠밀려 꾸역꾸역 살아가는 그렇고 그런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좋은 영화 한 편이 주는 위안은 필수적인지도 모른다.

조 존스톤의 <옥토버 스카이>는 꿈을 갖지 말라고 강요하는 듯한 잔인한 세상에 맞서 꿋꿋하게 그 꿈을 지켜낸 치열한 젊음을 그린 작품이다. 어느덧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난 제이크 질렌할의 초기작으로, 그는 방황과 고민 끝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청춘을 멋지게 표현해냈다.

특별하지 않아 평범함을 강요받는 이 땅의 수많은 젊음들, 1957년의 콜우드와 지금의 한국사회가 별반 다르지 않기에 더욱 안타깝고 쓸쓸하며 동시에 짜릿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꿈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특별하거나 우러러 보이지 않는 꿈이라면 비웃음을 사는 세상이라도 그 꿈을 지켜내야 한다고, 꿈이란 바로 나 자신이므로.

[셋] <아마존의 눈물>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해서 가족끼리 보기 부적절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해서 가족끼리 보기 부적절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 (주)마운틴픽쳐스


다음은 다큐멘터리다. 아는 사람이 많은 명작 다큐멘터리지만 못 본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은 작품이니 추천해도 좋을 것이다. MBC의 정신이 비교적 꼿꼿하게 살아있던 시절, 5부작으로 상영돼 크게 인기를 얻고 마침내는 극장판까지 제작된 <아마존의 눈물>이 그것이다. 그런데 왜 이 다큐멘터리가 추석 연휴 추천영화냐고? 존경해마지않는 마이클 잭슨 형님이 그러셨다. '위 아 더 월드'라고.

아마존은 특별하다. 브라질 영토의 60%에 달하는 거대 원시 밀림으로 매분 매초 엄청난 양의 산소를 배출하는 정화의 땅,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먹이는 자연 그 자체이자, 생존이 아닌 이유로는 다른 존재에 피해를 준 적 없는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 살아가고 죽어간 땅. 그런 아마존이 부조리한 구조와 탐욕스런 사람들로부터 상처 입고 눈물을 쏟는다. 그곳에 사는 원주민 역시 마찬가지. 우리는 과연 이 비극에 책임이 없는가.

스스로 단군의 자식이라 칭하는 한반도 주민들이라지만 같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족에 지구라는 행성의 동거인이요 똑같이 먹고 자며 숨을 쉬는 생명체다. 가족, 친척과 만나 우애를 다지는 큰 명절에 지구 반대편 먼 친척들이 처한 충격적 상황을 살펴보는 건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자본과 지리적인 문제로 국내에서는 심층적으로 다뤄진 적 없었던 아마존 부족들의 삶. 비록 미접촉 부족이며 전 세계 최초공개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조에 족이 실은 프랑스와 일본 방송에 먼저 공개된 바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이 다큐멘터리에 비친 그들의 삶은 아주 새롭고 매력적으로 여겨질 것이다.

[넷] <언더 더 쎄임 문>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반드시 봐야 할 영화이다.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반드시 봐야 할 영화이다. ⓒ 유니코리아문예투자


한국 내 체류 외국인 200만 시대.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은 이제 더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족과 떨어진 만리타향에서 명절을 맞아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마음이란 얼마만큼 슬프고 아련한 것일까. 불과 수십 년 전 독일이며 중동으로 수만 노동자를 내보낸 이 나라에서 이들의 애환을 돌아보고 공감하는 건 그리 특별한 수고가 드는 일도 아닐 테다.

<언더 더 쎄임 문>의 주인공은 미국에서 일하는 엄마가 보고 싶어 국경선을 넘은 멕시코의 9살짜리 소년. <엄마 찾아 3만리>를 떠올리게 하는 구성으로 엄마를 찾아 떠난 어린 아들의 고행에 어느 누가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연을 맡은 아드리안 알론소와 엄마 역의 케이트 델 카스티요는 가슴을 울리는 연기를 펼쳤다는 표현을 들을 자격이 있다. 더불어 그 진실한 감정들을 카메라 안에 온전히 담아낸 패트리시아 리건의 연출도 비범한 수준이다.

미국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착취와 멕시코 노동자들의 애환에 대한 가사가 붙은 흥겨운 음악도 마음에 들었다. 영화 초반 소년이 차를 얻어 탔을 때, 그 차에 타고 있던 음악가들이 소년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장면은 잊기 어려울 만큼 매력적이다. 세상 어느 곳에서나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 세상은 더욱 견딜만한 것이다. 선 굵은 전개부터 섬세한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영화다.

저기 미국에선 유력 대통령 후보가 멕시코와의 국경선에 만리장성을 쌓겠다고 공언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는데, 다른 누구보다 그가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더불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 나라 많은 사람도.

[다섯] 미스 리틀 선샤인

 이 영화를 볼 때는 반드시 손수건을 준비해라.

이 영화를 볼 때는 반드시 손수건을 준비해라.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이건 성장, 아니 그 이전에 해방이고 혁명이며 사랑의 이야기다. 단 한 번만이라도 대책 없는 열정에 몸을 맡겨본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다른 이를 위해 스스로를 던져본 사람이라면, 인생 최악의 지점에서 미소를 지어보았던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라면 아무 거리낌 없이 폭소를 터뜨리고 깊이 공감하고 소리 내 울어버릴 수 있는 그런 영화다.

치밀한 각본, 가슴을 울리는 연기, 그 모두를 최고의 지점에서 조화시키는 영감 어린 연출. 그 모두가 모여 만들어낸 깊이 있는 드라마. 올리브와 가족들의 결코 짧지 않은 여정 동안 아버지는 진정으로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는 어머니가 되었으며 가족들은 모두 그 자신이 한 가족의 구성원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이 여정이 준 최고의 성취라면 그들 개개인이 진정으로 더 나은 자신이 되었다는 게 아닐까.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 마지막 후보로 나온 올리브의 열정적인 공연, 그 공연을 함께 장식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삼촌, 그리고 노란 고물 버스 트렁크에서 올리브를 응원하고 계셨던 할아버지. 그래, 바로 이것이 가족이라 불리는 것이었지!

드웨인의 가슴 아린 절망으로부터 그 속 '뻥-' 뚫리는 엔딩 시퀀스까지 보는 동안, 눈물 콧물 질질 짜며 울어버린 게 오직 나만은 아니었을 테다.

이번 추석 연휴, 가족들과 둘러앉아 볼 만한 영화로 이보다 나은 작품이 있을까? 떠올리기 어렵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추석특선영화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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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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