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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한 여배우와 남자 감독 사이의 스캔들이 꽤나 시끄러웠네. 굳이 찾아 보지 않으려 해도 세간에 화제가 되다 보니까 아빠도 자연스럽게 읽어 보게 되더라고. 22살이나 차이가 나는 아가씨와 가정이 있는 아저씨가 사랑에 빠졌다며 그들 입장에서는 '사랑의 도피', 사회적으로는 '불륜의 행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인 거지.

사실, 텔레비전도 잘 보지 않고,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는 아빠로서는 그들이 무엇을 하건 간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기사의 한 줄이 갑자기 생각을 하게 하더구나. 그 아저씨 감독에게는 대학생 딸이 있다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으로서의 의무도 새로운 사랑을 위해서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거지.

선뜻, 잘 이해가 안되었어. 사람은 그 입장이 되어 보기 전까지는 모른다고 하지만, 딸 아이들을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는 그 입장이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일단 이해가 잘은 안 되는구나.

십 년 뒤에 아빠가 그 사람의 나이가 되고, 너희가 대학생이 되는 상황을 생각해봤어. 그 나이에 내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그 전에 사랑했던 대상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될까? 아빠가 그 때 너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단다' 라고 말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 때 너의 표정은 어떨까? 과연 나를 이해해줄까?

아빠가 딸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딸은 과연 아빠의 사랑을 지지하고 믿어 줄까? 아니 그 전에 아빠로서 딸에게 했던 수많은 '사랑한다'는 말의 진심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일 것 같아. 아니, 사실 막상 현실에 닥치게 되면 이성이 아니라, 감정적인 분노와 슬픔, 실망이 더 앞서게 되지 않을까?

국내 최고 수준의 골프장에서
▲ 여유와 일탈 국내 최고 수준의 골프장에서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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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살아보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참 복잡하고, 모순적이지. 여자들은 잘 모르니, 언젠가 남자를 만날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아빠가 본 사례들을 이야기 해볼게. 아빠는 전에 제휴 마케팅을 하면서 VIP고객들을 몇 년 간 상대했었단다. 그 중에 J라는 분이 있었어. 시골에서 정말 고생하면서 자수 성가한 멋진 CEO지.

스스로 일어선 자의 당당함과 힘이 느껴져서 배울 게 많았지. 식사와 술 자리도 함께 하면서 친분을 쌓게 되었지. 그러던 어느 날, 술 자리에서 그 분의 전화기가 울렸어. 내 앞에서 전화를 다정하게 한참을 하셨지. 느낌이 부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전화를 끊고,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애인이라며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했어.

그리고 계속 대화는 이어지다가, 그 분의 대학생 아이의 이야기가 나왔어. 그 딸에게 과거에 있었던 어려운 일을 이야기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지시는데, 아이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묻어 나왔지. 너무 대비되는 상황이지 않니? 분명히, 그 분은 자신의 아이를 사랑해, 그렇지만 애인이 있는 거지.

만약, 그 분이 사랑하는 그 분의 딸에게 자신에게 애인이 생겼다고 말한다면 그 딸은 아빠의 사랑을 충분히 받았으니 이해해줄까? 너라면 이해할 수 있겠니? 하지만, 의외로 아빠는 이 분만 아니라, 이런 남자들을 제법 많이 봤어.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유층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 건 사실이지만,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런 경우는 존재한단다.

아빠 지인 중에도 있고 말이야.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결론을 결국 이해 받지 못하고, 불행해지는 것으로 끝이 날 확률이 더 높지. 자신은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고, 걸리지 않으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감정은 그리 완벽하게 통제되는 게 아니라서, 이중의 삶을 사는 인생 자체가 그리 행복할 확률이 높지는 않을 것 같아. 경제적인 것은 행복의 필요 조건이긴 하지만, 충분한 조건은 아니거든.

남자를 불신할 필요도 없지만, 속성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 엄마 입장에서 보면 모두 똑같은 외도이고, 불륜 이겠지만, 남자들에겐 나름대로 다양한 동기들이 있단다. 불륜의 역사나 트라우마 관련 책들을 보면, 어린 시절의 억눌린 욕망을 표출하고자 하는 이유에서 계속 새로운 여자를 찾는 경우도 있고, 그저 성욕을 채우기 위해 다른 여자를 찾는 경우도 있지.

'영웅호색'이라는 판타지를 믿을 필요는 없지만, 욕망이 강한 사람은 성공확률이 높은 경우도 많고, 거꾸로 초식남 같이 착한 남자는 사회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낮을 수도 있단다. 물론, 통계가 있는 건 아니고,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본거야.

그래서 누굴 믿어야 하고 누구를 만나야 하냐고? 글쎄, 결국 정답은 없지. 인연이라는 게 만나고 싶다고 만나지는 것도 아니고, 과거와 달리 누굴 만나 결혼한다고 해서 평생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니 말이야.

다만, 네가 마음을 건강하게 살고, 삶을 충실하게 살면 자연스럽게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릴 수 있는 확률을 높아지지 않을까?

내셔널 갤러리에서 찍은 사랑과 시간에 대한 풍자
▲ An Allegory with Venus and Cupid 내셔널 갤러리에서 찍은 사랑과 시간에 대한 풍자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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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에 가면 시간과 사랑의 알레고리(An Allegory with Venus and Cupid)라는 아뇰로 브론치노(Bronzino)라는 피렌체 화가의 작품이 있단다. 처음에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좀 이상하고 인상 깊었어. 그래서 나중에 책을 찾아서 봤는데, 여러 가지 의미가 있더구나.

키스 장면이 비너스와 아들인 큐피트의 모습인데, 엄마와 아들 사이에는 '뽀뽀'를 하지 '키스'를 하지 않잖아? 그런데 그림을 보면 완전히 키스의 모습이지. 작품은 금지된 사랑(불륜)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해. 그림 뒤 편 여인은 푸른 천으로 키스 장면을 가리려 하지만, 한 노인은 이를 걷어내어 보여주려 하지.

결국 잘못된 사랑은 들킬 수 밖에 없다는 의미를 상징한다고 해. 왼쪽의 머리를 쥐어 짜는 남자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고통만 남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지. 우측 하단의 가면은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를 상징하는 데, 전통적으로 불륜의 관계를 의미한다고 한단다.

사실, 역사 이래 계속 권력이나 부를 가진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첩이나, 애인이란 이름으로 가지려 하고, 이는 오늘 날에도 형태가 변할 뿐 유사하게 내려오고 있는 것이지. '사랑'이란 표현 보다는 '욕망'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겠지.

몇 가지 이야기가 더 있는데, 한 번 나중에 볼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삶의 쾌락은 오래 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그림은 보여주고 있는 거지.

아빠도 네가 크는 만큼 나이가 들면서 남성의 매력이 줄어 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욕망이 없어진 건 아니란다. 다만, 그 욕망보다 더 큰 것들이 있어서 이를 통제하면서 사는 거지. 그게 불쌍한 게 아니라, 그것이 더 행복한 길인 것을 알기 때문이야. 그건 아마 엄마도 마찬가지일 거야.

대신에 더 행복한 것이 있지. 내 아이가 나를 사랑해주는 기쁨, 아내의 환한 미소, 그리고 스스로에게 감출 것이 없는 삶에 대한 마음이 다른 이와 외도에 빠지고자 하는 욕망보다 더 큰 거란다. 네가 이 글을 읽을 즈음이면 이 감독과 여배우의 사건은 먼 과거의 것이 될 것이고, 지금은 궁금한 그들의 미래도 넌 알 수 있겠지? 

네가 먼 미래에 나를 추억할 때, 우리 아빠는 가족을 사랑했던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 지금은 그런 때를 살고 있는 게 나니까. 사람에겐 때가 있단다. 돌봄이 필요한 때, 열심히 공부해야 할 때, 그리고 놀아야 할 때, 누군가와 미친 듯이 사랑에 빠져야 할 때, 한 사람과 미래를 약속해야 할 때, 그리고 자신의 인생과 가족을 돌봐야 할 때, 그 순간 순간들을 열심히 살기를 소망한다.

자신의 삶에 충실할 때, 자존감이 생기고, 그게 너에게 어떤 사람이 너에게 좋은 남자인가를 판단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설사, 먼 미래의 그가 너를 실망시킨다고 해도, 상관없이 넌 네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가렴. 사는 날까지는 아빠도 열심히 살아볼게.

덧붙이는 글 | http://electricjin.blog.me/
개인 블로그에는 함께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로맨스, #불륜, #욕망을절제한다는것, #아빠에게애인이생긴다면, #사랑과시간에관한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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