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가을 추석 명절이 코앞이다. 귀성길을 앞둔 사람들이든 아니든 가족 친척과 만나 명절을 지낼 생각에 몸도 마음도 점점 바빠질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설이나 추석 명절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명절이면 음식과 가사 일을 도맡아해야 했던 주부들은 고단한 노동을 생각하면서 반기지 않았을 터이다. 얼마 전부터는 취직과 결혼이 늦은 청년들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인사 받는 것이 싫어서였다.

그런데 최근에 명절을 기피하는 또 다른 그룹이 생기고 있다. 바로 은퇴자들이다. 직업 일선에서 비자발적으로 떨어져 나와 뚜렷한 일이 없는 50대, 60대 역시 명절에 가족과 친척을 만나 어울리는 것이 불편하게 된 것이다.

이른바 100세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딱 그 절반 정도인 50대에서 일자리를 놓아야 하는 세태가 낳은 신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은퇴', 벌써 박물관에 처박혀야 했을 낡은 유물

환갑이 동네의 큰 잔치였던 1970년대 우리나라 기대 수명은 60세였다. 60세면 기대수명대로 장수한 셈이니 큰 잔치가 열릴 만하다. 그러나 지금은 80세가 넘었다. 무려 20년이 늘어난 것이다. 통계청 추계대로라면 2050년이면 여성기준으로 기대수명이 처음으로 100세를 넘는다. 적어도 지금 40, 50대는 거의 100세에 육박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단지 상징적인 셈법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처럼 기대수명은 무서운 속도로 뒤로 또 뒤로 밀려나고 있는데, "일에서 손을 떼고 여가생활하면서 여생을 즐기겠다"는 은퇴연령은 같은 속도로 뒤로 연장되고 있나? 우리 모두 아는 것처럼 천만의 말씀이다. 법적으로 60세까지 되어 있지만 40대 말이면 벌써 사실상 장기근속 직장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짐을 싸야 한다.

60세 정년까지 꽉 채워 30년을 일한다 해도 나머지 30~40년 여생이 남아있다. 예전처럼 단조롭게 여가나 즐기면서 살기에는 까마득하게 긴 시간일 뿐 아니라, 그런 식으로 살자면 엄청난 저축이나 자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은퇴 대열의 주축을 이루는 베이비붐 세대는 막대한 노후 저축이나 자산이 없다. 그래서 번듯한 직장에서 '은퇴'한 거의 대부분은 험한 일, 박봉 급여를 감수하고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무늬만 50대 은퇴이지 실질적인 은퇴는 남자가 약 73세, 여성은 71세쯤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은퇴라는 말은 사실상 무의미해진 것 아닌가? 바로 그렇다. 60세 기대수명이었던 시절, 체력이 받쳐주어야 일을 할 수 있었던 산업화 시대의 낡은 개념인 '은퇴'라는 제도가 지금까지 유령처럼 살아남아서 시니어들의 삶을 극도로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반전 30년 인생을 사는 법

오랫동안 사회적 경제와 금융 현장에서 일하면서 다수의 저서를 내기도 한 문진수의 신간 <은퇴 절벽>은 바로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시작점을 삼는다. 약간의 단순화를 감수하면 이 책은 아래 한 개의 도표로 단순화된다. 생애소득가설을 주장한 경제학자 모딜리아니의 아이디어에 따라 전체 생애동안 소득과 소비 곡선을 포개놓은 그림이다.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은퇴후 30년 이상 늘어난 노년기의 소득부족을 중년기 저축으로 메울 수 없는 상황이 발생
▲ 수명연장에 따른 모딜리아니 생애소득 가설 곡선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은퇴후 30년 이상 늘어난 노년기의 소득부족을 중년기 저축으로 메울 수 없는 상황이 발생
ⓒ 김병권

관련사진보기


30대 청년기에 소득이 생기기 시작하지만 아직 써야 할 돈이 많거나 빚을 얻어 집을 장만하니 실제 저축은 적다. 40대를 정점으로 한 중년기에 소득이 가장 크게 늘어나서 빚도 갚고 노후대비 저축을 할 수 있다. 그리고 55~60세 은퇴 후에는 소득이 없거나 매우 적을 것이므로 중년기의 저축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는 은퇴 후 삶의 길이나 기껏 10년 내외로 기대 수명이 60~70세 정도일 때 가능한 얘기다.

"정년 제도와 일하지 않는 은퇴라는 개념은 인간의 평균 생존 기간이 70살 전후에 불과하던 시대의 유물이다."

한 마디로 100세 시대인 지금은 어림도 없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젊었을 때 더 저축을 하거나 노후 대비 보험을 들라고 금융회사들의 마케팅이 극성이다. 그러나 저자는 당초 이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명확히 긋는다. 노후를 대비한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이 이 문제의 솔루션이 될 수 있을까? 사적 보험보다는 안정적이고 유리한 해법이지만 국민연금 단독으로는 역시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 대목에서 이 책이 풀어내는 진가가 나온다. 저자는 후반전 인생 30~40년을 또 다른 '일'을 하면서 살기위한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단지 일거리를 계속 유지할 뿐 아니라 시니어에 맞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라고 권고한다. 소득이 중심이 아니라 '삶을 위한 일'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니어에게 필요한 세 가지 일, 배움, 관계

<은퇴 절벽>
 <은퇴 절벽>
ⓒ 원더박스

관련사진보기

저자는 60대 이후의 삶을 위해서 미리부터 10년 계획을 세울 것을 조언한다. 그 시작점으로 앞선 30년 삶에서 적용했던 기준들을 과감히 버릴 것을 주문한다. "체면, 교만,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 미련, 허영심, 두려움, 힘든 일을 피해가려는 비겁함 등,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마음의 찌꺼기 들이다." 그렇게 버리고 다시 배우고 습득할 것을 주문한다.

은퇴 후의 새로운 삶에 대한 수많은 개인적, 사회적 조언들이 풍부하게 넘쳐나지만, 단연 압권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살 것을 강조한 대목이다. 얼마 전 한 민간 연구소의 조사에서도 나왔지만 시니어들의 갈구하는 절실한 필요는 단지 소득만이 아니다. 소득 외에도 배움과 교육, 그리고 특히 관계에 대한 욕구가 대단히 크다.

저자는 은퇴 후의 경제 생활도 협동조합처럼 함께 위험을 나누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경제활동 방식을 권고한다. 또한 온라인, 오프라인을 망라해서 무겁지 않은 새로운 스타일의 인간관계를 능동적으로 만들면서 삶을 풍요롭게 가꿀 것을 제안한다.

다만 이 대목에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현실의 1인 노인가구의 벽을 어떻게 넘어야 좋을지가 조금 더 이야기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최근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2010년 1인가구가 23퍼센트 수준이었는데 2015년에는 27퍼센트 이상으로 뛰었다. 그런데 아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의 지난 5년 동안 1인 가구 증가는 모조리 50대 이상에서 나타났다. 이처럼 1인 가구 문제와 고령화 문제의 교집합이 매우 커지고 있는 것이다.

50대 이상에서만 1인가구가 지난 5년동안 비율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 2010년대비 2015년 연령대별 1인가구 비율 변화 50대 이상에서만 1인가구가 지난 5년동안 비율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 통계청

관련사진보기


세대가 연결되어야 노후도 편안하다

사실 이 책은 분량 이상의 다양한 제안과 권고로 가득 차 있어 은퇴를 앞둔 중년이나 이미 은퇴를 한 세대들이 필독서로 삼아도 손색이 없다. 은퇴자들이 읽기에 딱 좋은 형식으로도  구성되어 있다. 대체로 10쪽이 넘지 않도록 짧게 소주제들이 연결되면서 엮여 있어 딱딱함과 지루함을 덜면서 힘들지 않게 260여 쪽을 읽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대목이 세대에 관한 이야기다. 한때 세간에서 임금피크제와 정년연장 문제가 마치 청년실업과 대체관계에 있는 것처럼 여론화된 적이 있다. 청년과 은퇴세대 사이의 세대 갈등이 경제적으로 불가피한 것으로 언론에서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시각을 단호히 거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세대 간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차이가 곧 갈등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회자되는 세대 갈등 담론은 지양되어야 한다. 차이를 감추자는 말이 아니다. 반대로 차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그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함께 모색해 가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연결되어야 소통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어야 이해할 수 있으며 이해의 폭이 깊어지면 상대편의 입장에서 바라 볼 수 있다."

어쨌든 저자가 결론 부분에서 인용한, 이 책의 한줄 요약이라 할 만한 다음의 구절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은퇴 문제를 푸는 해법은 은퇴하지 않는 것이다."


은퇴 절벽 - 노후 공포 시대, 젋은 은퇴자를 위한 출구 전략

문진수 지음, 원더박스(2016)


태그:#은퇴, #고령화, #인생이모작, #`세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