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백>의 스틸 사진

영화 <자백>이 고발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이 부끄럽기만 하다. ⓒ 엣나인


불과 6개월이 흘렀을 뿐이다. '테러방지법'이라는 괴물이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갔고, 우리는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개인의 사생활'과 '국가 안보'의 경계에 대해 고민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Enemy of the state)>를 떠올리며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나'가 국가의 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위협을 느꼈고,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경고했던 '파놉티콘'이라는 또 다른 괴물을 떠올렸다.

그 거대한 두려움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우성'이라는 탈북자를 간첩으로 증명하기 위해 모든 권력을 동원하고 있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2015년 10월 대법원 판결이 나 '유우성은 간첩이 아니다!'라고 선고된 지금, 우리는 그 모든 '조작'의 증거를 영화를 통해 만날 수 있게 됐다. 바로 최승호 피디의 감독 데뷔작 <자백>(2016)에서다.

<자백> 포항 지역 시사회 열려

"여러분! 대형 극장 프랜차이즈를 뚫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 포항에서도 열어주셨는데, 다른 지역에서 안 해주는 게 말이 되냐고 잘 좀 써먹어 보겠습니다."

<자백> 시사회 포항에서 5일 <자백>의 시사회가 있었다. 최승호 감독은 포항 시사회에 몰린 관객들에 놀랐고, 아무데서도 열어주지 않았던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됨에 놀랐다.

▲ <자백> 시사회 포항에서 5일 <자백>의 시사회가 있었다. 최승호 감독은 포항 시사회에 몰린 관객들에 놀랐고, 아무데서도 열어주지 않았던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됨에 놀랐다. ⓒ 이창희


지난 5일 최승호 감독의 <자백> 시사회가 포항에서 있었다. 포항지역 21개 시민단체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 개최한 이번 시사회에는 여러 모임이나 행사를 통해 안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객석을 채운 관객을 보며 반가움에 던지는 감독의 인사가, 그래서 더 반가웠다. 이 작은 시작을 계기로, 다른 지역에서도 대형 멀티플렉스를 포함해 많은 개봉관이 허용되길 기원해본다.

영화는 이미 뉴스나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진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의 전모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국가라는 거대 권력이, 국정원이라는 밀실의 통제 불가능한 권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국민'을 어떻게 이용하고 망가뜨리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그 적나라함은 나라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이어져, 종종 실소를 자아내기까지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국의 안보에 관심이 있긴 한지 의심을 멈출 수가 없다.

영화는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아 냈기 때문에 나름의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자백>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어떤 잔인한 역사가 있었는지를 잊지 말라는 경고를 하기 위함인지, 감독은 재일 유학생 간첩 조작사건(1974)을 포함해 2013년 이후 벌어진 몇 건의 간첩 조작사건도 보여준다. 처절한 실패와 아픔의 기록이다. 유학생 간첩 사건의 피해자들은 40년이 넘는 세월을 끝없이 견딘 후에야 '무죄' 판결을 받아냈고 최근 조작된 간첩사건의 피해자는 이름까지 잃어버린 채 아무렇게나 매장돼 버려졌다.

김기춘과 원세훈은 미안함을 느낄까?

 <자백>의 한 장면.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최승호 감독이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자백>의 한 장면.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최승호 감독이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 엣나인


"나는 한국이 얼마나 나쁜 나라인지 말하고 싶어!"

영화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1974년 재일 유학생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러 일본에 가던 감독은 '운명처럼' 그 당시 사건 수사 담당자였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공항에서 마주친다. 감독의 집요한 질문에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회피하는 김 실장의 모습이 씁쓸했다. 그 당시 '국가 안보'라는 핑계로 국민들을 희생시킨 가해자들이 과연 잘못에 대해 조금이라도 '미안함'을 느끼기는 할까?

집요한 '회피'를 지켜보는 내게는 "그냥 지금만 피하고 보자"는 그의 '불쾌함'이 전달돼 분노가 치밀었다.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한국을 향해 던지는 분노는 그분만의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같이' 분노해야만 희생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공식을 충실하게 따른다. 그러나,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고 믿는 이야기가 낯설게 보이는 이유는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의 반응 때문이다. 피해자의 아픔은 잠시 뒤로 물러두더라도, 가해자들의 반응이 현실 같지 않아 낯설다. 국민을 이렇게나 철저하게 망가뜨리는 '권력'이 우리의 권력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이게 차라리 '영화'였으면 좋겠다.

"영화가 갖는 힘을 믿는다.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국정원은 꿈쩍도 안하고 있어서, 이것을 영화로 만들어 개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같이' 외쳐달라."

영화가 끝난 후, 감독과의 대화에서 최승호 감독은 <자백>을 영화로 개봉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민주주의'의 진정한 힘은 '개인의 사생활'이 주는 자유라 말했고, 여전히 세계를 떠돌고 있는 스노든은 현 세계가 '안보'와 '자유' 사이의 전쟁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니 이대로 관심을 거두지 않기를 바란다. <자백>이 보여주는 끔찍한 일들이 내게 오지 않는다고 백 퍼센트 확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영화읽기 자백 최승호 국정원 간첩조작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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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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