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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대교 사고현장
 장안대교 사고현장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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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용답역 인근 장안철교에서 교량 보강 공사를 하던 20대 비정규 일용직 노동자 박아무개씨(29)가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또다시 지하철 2호선 20대 노동자 사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고 가슴이 덜컹했다. 지난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20세 청년의 억울한 죽음이 반사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요일(4일) 아침, 계속해서 그 청년의 죽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봄 구의역을 찾았던 것처럼 흰 국화꽃 한 다발을 들고 장안철교로 갔다. 사고 장소는 역과 역 사이를 잇는 철교가 위치한 곳. 한참을 헤맸다. 현장에 도착하니 주변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이들이 많았다.

사고 현장은 자전거 도로에서도 안쪽으로 더 들어가야 해서 인적이 드물었고, 언제 사고가 있었냐는 듯 조용하고 휑했다. 마음이 씁쓸해졌다. 챙겨갔던 국화와 메모지로 사고 현장 주변에 간소한 분향소를 차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쓰리에스엔지니어링'이라고 쓰인 안전모가 있었다. 기사에서 보았던, 그가 소속되어있던 회사의 이름. 어쩌면 그가 썼을지도 모를 안전모 같았다. 안전모를 잘 닦아 그 노동자를 모시듯 분향소 위에 잘 올려두고, 추모글을 남겼다.

'오늘도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

장안대교 사고현장 추모공간
 장안대교 사고현장 추모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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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철교 사고현장 추모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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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일 전 있었던 구의역 사고 때는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이 업무에 쫓기던 김군의 가방 속에 들어있던 컵라면, 늘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하청 비정규직의 일터, 갓 스무 살이 된 꽃다운 청년 등의 키워드로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그의 일터와 삶을 다른 청년들과 비교했을 때 유난히 다른 것도 아니었다. 내일이 불안한 비정규직,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사회 속의 평범한 한 청년의 일이었기에 더욱 많은 이들이 슬퍼했다.

추모 공간이 마련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구의역을 찾았을 때, 많은 청년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퍼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 사고를 개인의 부주의로 일어난 우연한 일이나 남의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예상할 수 있는 위험에 눈 감은 채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쥐어짜는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명확히 직시했다. 사고는 그의 잘못이 아니고, 김군은 바로 또 다른 나이고, 오늘의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을 뿐이라고 했다.

구의역 사고 현장 추모공간 포스트잇
 구의역 사고 현장 추모공간 포스트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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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다. 바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이다. 세월호 참사 역시 자본 앞에 안전 시스템이 와르르 무너지고 귀중한 생명들이 스러져 간 사건이다. 전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 그 세월호에서 희생된 이들이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더 많이 괴로워했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세월호 노란리본과 구의역 검은리본
 세월호 노란리본과 구의역 검은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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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사회에서 안전한 것은 '자본', 단 하나뿐이다. 자본의 몸집을 더 크게 불리기 위해 안전도, 노동도, 생명도 죄다 무시한다. 반복되는 사고에도 여전히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안전 비용을 줄이고, 하청 업체를 두고 인건비를 줄인다. 그렇게 책임을 떠넘긴다. 세월호 이후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고 했고 구의역 사건 이후에도, 억울하게 떠나버린 많은 노동자들의 죽음 앞에서도 항상 달라져야 한다고 외쳤다. 그런데도 괴물같은 자본은 '가만히 있으라'고만 외친다.

장안철교 아래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각자의 일터에서, 또는 온라인 공간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청년노동자의 죽음을 함께 애도해주었으면 좋겠다. 불안한 하청 일용직의 일자리만큼이나, 불안하고 위험했을 그 철교 위에서 떨어진 청년의 명복을 위해, 그리고 오늘도 운 좋게 살아남은 우리 모두를 위해, 이윤보다 생명이 소중하게 여겨질 날을 위해.

장안철교 사고현장 추모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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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공간 찾아가는 길]
2호선 용답역 (서울특별시 성동구 송정동 75-2)

장안철교 사고현장 추모공간 지도
 장안철교 사고현장 추모공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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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장안철교, #추락사고, #청년노동자, #9월3일,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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