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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연세대학교에서 카카오톡 성희롱 논란이 있었다. 지난, 1일 총여학생회가 페이스북과 대자보를 통해서 남학생들의 카카오톡 메신저 내용을 공개하면서 생긴 일이다. 이를 본 어떤 남학생들은 흔한 일이라며 웃어넘겼다고 한다.

성희롱이 흔한 일이라니. 황당하지만 이 말은 사실이다. 내가 카카오톡 성희롱 기사를 접하고 느낀 감정도 비슷했다. 남자들끼리의 공간에서 여성을 성희롱하고 대상화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겪어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서울대, 고려대, 서강대, 국민대, 경희대 등 대학 내에서 성희롱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내 경험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일어나는 대상화

연세대 총여학생회가 공개한 '단톡방 성희롱 사건'에서 남성들이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
 연세대 총여학생회가 공개한 '단톡방 성희롱 사건'에서 남성들이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
ⓒ 연세대 총여학생회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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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였다. 학교에서는 우리를 데리고 수련회를 갔다. 힘든 일정을 마치고 나서 각자의 방에서 쉴 때였다. 수련회의 밤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던 친구들은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 내 방에는 반마다 일명 논다는 친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다. 치약이나 유성 매직 등을 들고 온 친구들은 자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 낙서를 하거나 짓궂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질렸는지 아이들은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모여든 남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것은 여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친구는 자기 반 여학생들의 신체 사이즈가 어쩌니, 속옷이 어쩌니 등의 이야기를 쏟아냈고 다른 친구는 엉덩이를 만져봤다는 경험담을 경쟁하듯 쏟아냈다. 어린 호기심으로 치부하기에는 노골적이었다. 엉덩이를 만지거나 특정 신체부위를 엿보는 행위가 용기 있는 행동으로 포장되었고 놀이처럼 퍼져나가게 되었다.

엄연히 성희롱이지만 여학생들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아니 대응을 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단지, 화를 내거나 하지 말라고 소리를 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성희롱이 난무하고 여학생들은 계속 대상화되었지만 이것이 잘못됨을 알려주는 사람이 부재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어릴 때부터 장난처럼 대상화를 해오던 아이들은 별다른 죄책감을 가지지 못했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 하는 것이 본능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치부됐다.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유지된다. 아니 더욱 심각해진다.

일상적으로 계속되는 대상화

웹툰 <뷰티풀 군바리>에서 남성 군인들은 여군인 주인공에게 환호한다
 웹툰 <뷰티풀 군바리>에서 남성 군인들은 여군인 주인공에게 환호한다
ⓒ <뷰티풀 군바리> 6화 장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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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로 군대의 이야기를 해보자. 훈련소에 있던 시절, 아침 구보를 하고 있었다. 구보를 하던 우리는 한 여군이 운동복을 입고 구보를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여군을 보고 우리가 밝은 표정을 짓자 군 간부는 우리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몸매 좋지? 엉덩이 보고 싶으면 더 빨리 달려!"

우리의 사기를 돋으려는 의도였을까? 군 간부는 성희롱적인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간부의 말을 여군은 듣지 못했지만 들었다고 해도 과연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을까?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훈련병의 여자 친구 사진을 보고 몸매를 평가하거나 성 경험을 물어보는 등 군 간부의 만행은 지속됐다.

같은 훈련병들도 다르지 않았다. 한 훈련병은 자신의 여자 친구를 이야기하며 "벗겨보니 몸매가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성 경험은 마치 영웅담처럼 전해졌고 그동안 이야기 속의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소비됐다.

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전입한 날, 나는 성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또한, 내 주변의 여성들은 선임들에 의해서 얼굴과 몸매 평가를 당하는 일을 겪어야 했다. 어떤 선임은 강제로 아는 여자를 소개시켜달라고 하기도 했다.

이는 나에 대한 단순한 놀림이 아니었다. 내 주변의 여성들은 나를 안다는 이유로 모르는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대상화 되었고 마치 예비 애인처럼 여겨졌다. 그녀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르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웃어 줘야 하기도 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에 복학하고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들끼리 모여 술자리가 벌어지는 날에는 신입생들의 외모를 평가하고 찜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마치 경쟁하듯 서로에게 대상을 예고했고 적극적으로 집적거렸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술자리에서는 나이가 많은 남학생이 여학생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 남학생은 고학번이었기 때문에 여학생들은 속으로만 분노했고, 억지로 웃어넘겼다.

더 이상 지켜보아서는 안 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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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였던 나는 수많은 여성들이 대상화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많은 술자리에 함께 했고, 묵묵히 있었으니 방관자나 마찬가지다. 나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불편하다 말하면 이상한 사람이 될까 무서웠다.

이번 연세대 카카오톡 성희롱 사건을 보고 한 누리꾼은 이런 댓글을 남겼다.

"사적인 공간에서 이야기 하는 것도 논란이 되면 어떻게 하냐. 이야기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이 의견은 특정 누리꾼만의 생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사적인 자리에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불편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사적인 공간에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아니다. 사적인 공간이든, 공적인 공간이든 남성들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동안 성 왜곡이 발생하고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또한, 그 자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여성들에게 전해지면서 실질적인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방관자로서 살아왔던 나는 마지막 고백으로 같은 남성들에게 말하고 싶다. 여성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멈추자. 그녀들도 동등한 사람임을 인정하자. 사적인 공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훈계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성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남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는 잘못된 행동이다.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잘못된 문화를 남에게 강요하지 마시라.


태그:#여성, #성적대상화, #연세대,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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