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김정호 역의 배우 차승원이 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차승원이 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가 연기한 김정호는 위인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 사람에 가까웠다. ⓒ 이정민


대동여지도를 남긴 위인 고산자 김정호와 차승원의 만남. 언뜻 쉽게 상상이 안 간다. 그간 TV 예능에서 각종 요리를 시전하며 시청자들에게 '차줌마'(차승원+아줌마)로 친근해진 그 아니던가.

차승원이 표현한 김정호는 그 간극을 적절하게 채운 인간미 넘치는 보통 사람이었다. 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대뜸 그는 "고산자가 속물적이면 어떨까 상상하며 연기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철저히 분석했고 분명한 목표지점을 두고 연기했다는 뜻이다.

위인 아닌 인간 김정호

사료가 풍부하지 않기에 오히려 상상의 여지가 많았다. 연출을 맡은 강우석 감독이 "나라의 지리 정보를 모든 백성과 나누고 싶었던 김정호"라는 대의명분으로 영화의 겉을 포장했다면, 차승원은 딸 바보이면서 뭔가 허술해 보이지만 열정만큼은 진심인 입체적 캐릭터로 속을 채웠다. 

"감독님은 보다 직선적으로 인물을 그리고 싶었을 것인데 난 보다 사람다운 모습에 초점을 두고 싶었다. 이 사람의 성격과 성품에 대한 자료가 아무 것도 없잖나. 다행히 가상인물이지만 조력자 바우(김인권 분)도 있고 딸 순실(남지현 분)도 있어서 그런 관계들에 기댔다. 지도에 미친 김정호만이 아닌 사람 김정호를 표현할 여지가 있었던 거지.

그간 왕을 비롯해 조선의 기득권층을 재조명한 영화는 많았다. 아무래도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으니까. 서민층의 이야기는 잘 전해지진 않지만 그들이 남긴 굉장한 유산들이 있잖나. 뛰어난 발명품을 남긴 장영실 같은 분도 당시 왕과 엮여서 부각이 될 뿐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 <고산자>를 하면서 생각이 트인 거지."

'외로운 사람'. 차승원은 김정호의 족적을 살피며 외로움을 읽었다. 또한 대동여지도 목판본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그에 대한 기록이 빈약하다는 점에서 기득권 세력의 탄압을 상상했다. 시대적 발견이 곧 신분 상승 및 출세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점도 주효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차승원 표 김정호가 탄생할 수 있었다.

"목판본이라는 걸 만든 건 곧 대량으로 지도를 생산하겠다는 의지잖나. 양반을 위해서? 그랬다면 기득권과 붙어서 자기 욕심을 채웠을 것이다. 양반 지위를 돈 주고 살 수 있는 시대니 지금까지 족보가 남아있었겠지. 그러지 않았기에 이렇게 그 분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게 아닐까.

그리고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대원군(유준상 분)이 이런 실학자를 아마 만났을 거라 상상했다. 영화적 허구지만 나 역시 김정호 그 분의 사상이 궁금하다. 어떤 마음으로 그를 연기했냐고들 물으시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웃음) 대동여지도 일대일 목판본을 실제로 봤는데 너무 세밀해! 단순 그림이나 조각도 아니고 지도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건 가히 미치지 않고서야! 비범하게 살았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뭐가 됐든 사람에 초점을 맞추자 생각했다. 그 분의 정신도 중요하지만 일단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잖나."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김정호 역의 배우 차승원이 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역사적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김정호라 더욱 부담이 컸겠지만 차승원은 "오히려 자료가 많았다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상상력으로 빈틈을 채워갔다"고 답했다. 그 결과물은 보다 인간적인 김정호의 면모였다. ⓒ 이정민


역사의 중요성

이렇게 논리적으로 상상하며 차승원은 캐릭터의 빈틈을 채워갔다. "영화에선 편집됐지만 김정호가 가난한 환경임에도 어떻게 팔도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됐는지 설명하는 장면도 있었고, 또한 김정호에게 연정을 품는 여주댁(신동미 분)에 대해서도 나름 설명이 돼 있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여기에 또 하나. 차승원은 사극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덧붙였다. "역사를 다루는 일인 만큼 조심할 부분이 있다"는 게 요지였다. "아무리 영화라도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너무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는 "잘못된 역사를 접하면 성인도 일부 오해를 할 수 있듯 지금 세대 아이들도 자칫 허구를 사실처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왜, 우리가 그 분의 가치를 제대로 몰랐다며 대원군이 대동여지도 목판본을 몽땅 태웠다는(식민사관) 식으로 표현했다면 위험한 거죠. 역사를 다룰 땐 이렇게 조심할 부분이 있기에 허구의 세계를 너무 크게 만드는 것도 좀 아닌 거 같고요. 솔직히 <하이힐>(차승원의 전작으로 트랜스젠더 형사 역을 맡아 파격 변신이라는 평을 들었다- 기자 주) 같은 영화가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는 작품이지, <고산자>는 조심스러워요. 배우로서 이런 인물을 언제 해보나 싶어서 택했는데 다음부턴 사극… 어유! 안 해요! (웃음) 사회 부조리를 드러내는 블랙코미디가 요즘 하고 싶은데(웃음)."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김정호 역의 배우 차승원이 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역사의 중요성을 그는 강조했다. 아무리 사극이라지만 "역사적 사실에 서 크게 벗어나서는 안된다"면서 말이다. ⓒ 이정민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잘 알려진 대로 차승원은 모델 출신 배우 1세대이며, tvN <삼시세끼>로 편안한 매력을 유감없이 보이고 있는 예능인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가족을 지극히 사랑하는 가장이다. 주위에선 그의 예능 출연에 배우로서 이미지 소모가 있을 거라 우려했다. 또한 아들 노아와 관련한 친자 소송이 있었을 때 위기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가슴으로 낳은 내 아들"이라 밝히며 훌륭하게 정면 돌파 했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며 생긴 그만의 내공 아닐까.

"예능을 장시간 해왔는데 영화에 나오면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우려? 물론 있었지. 그렇다고 난 영화만 한다거나 뭘 또 안 한다거나 그러고 싶지 않다. 굉장히 큰 욕심인 줄 알지만 난 연기도 하고 <무한도전>에 나가 또 석탄을 캐고 싶기도 하고, 패션 화보도 찍으며 살고 싶다. 특별히 뭔가에 거부감이 없다. 물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고 싶진 않지. 드라마도 재밌는 게 있으면 할 거다.

아, 내가 말하는 재미는 웃음을 말한다. 다른 편에선 그런 거 말고 뭔가 센 역할을 해보라는데 '내게 그런 모습도 원하는군' 이런 생각도 든다(웃음). 근데 나이가 있으니 뭔가를 선뜻 못하겠다. 다양한 장르를 하면 물론 좋은 거지만 내 개인적으로 가려야 하는 장르는 있다. 이를 테면 사람을 막 해하거나 뭔가 정서를 훼손한다든가 하는 것들. 그런 건 자제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웬만하면 세상을 척박하지 않게 보는 걸 하고 싶은 거지.

요즘 보면 사람이 사람을 너무 미워하고 서로를 싫어하잖나. 올해 들어 좋은 뉴스가 뭐 있었나? 막 죽이고 해하는 보도가 난무했는데 왜 이걸 자극적으로 꺼내는지 참…. 예전엔 나 혼자 잘 살면 된다는 주의였는데 이젠 주변 사람들이 심적 고통을 안 받고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가는 걸까."

혀를 끌끌 차는 그의 모습에서 어느덧 세상의 이치를 일부 깨달은 중년의 성숙함이 보였다. 차승원의 진면모를 발견해 순간 마음이 밝아졌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김정호 역의 배우 차승원이 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차승원은 건강한 웃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각박해지고 보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뭔가 허를 찌르는 작품을 그가 한다면 어떨까. ⓒ 이정민



차승원 고산자 강우석 김정호 삼시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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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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