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파참? 열파참이 뭐예요? 언니 열파참이 뭐예요?"

지난 5월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아래 마리텔)에 나온 EXID 하니는 채팅창을 보다가 '열파참'이라는 의문의 단어를 발견했고 이를 마리텔의 진행자 격인 '미스 마리테' 서유리에게 물었다. 아무 말 없이 일시 정지 상태로 있던 서유리는 하니가 등을 보이자 재빨리 문을 닫고 방에서 나갔다. 유튜브에서는 '열파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일시 정지가 되거나 말도 없이 방을 나가는 서유리의 모습을 편집한 영상이 따로 돌아다닌다.

하니야 모르고 물어봤다지만 데프콘은 알면서도 서유리를 놀렸다. 그는 <마리텔> 방송 중 옆에 서유리를 두고 편집이 될 법한 행간마다 '열파참'이라는 단어를 수시로 끼워 넣어 말을 했다. 그 바람에 결국 <마리텔> 제작진은 '열파참'의 정체를 자막으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말았다. 마리텔 제작진이 제공한 열파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서유리의 미모가 발전 과정에 있을 당시의 모 게임 홍보영상, 쉽게 말해 흑역사"

멀리 갈 것도 없다. 인터넷 검색창에 '열파참'을 쳐서 검색하면, 서유리가 과거 게임 <던전앤파이터> 홍보모델 '던파걸 로즈나비'로 활동하면서 촬영했던 영상, '열번째 파티에 참여하라'는 각 어절의 앞글자를 딴 '열파참'이라는 단어를 우렁차게 외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곤혹스러울 법한 영상, 하지만 서유리는 여전히 던전앤파이터 페스티벌 등 무대에 올라 시원하게 '열파참'을 외치는 것으로 그 민망함을 쫓아낸다. 그 모습이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특유의 시원한 웃음으로 '열파참'을 내지르는 서유리가. 희한하고 궁금한 마음에 그에게 만남을 청했다. 다음은 지난달 27일 서울 한남동에서 서유리와 나눈 대화의 일부다.

일이 되는 곳에는 다 갔다

서유리, 솔직함에 대하여 MBC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부터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까지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서유리. 29일 오전,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를 렌즈에 담았다.

"방송일... 저는 계속 할 건데... 계속 하고 싶은데요? 일하는 게 좋아요. 생각 같아서는 5-60대까지 하고 싶어요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 곽우신


"요즘 바쁘지 않느냐"는 질문에, 특유의 크고 시원한 웃음과 함께 "네! 제가 빚이 많아 가지고"란 직구가 돌아온다. 이런 말 해도 괜찮나? 당황스러움도 잠시, 비식비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으하하하하하! 네, 괜찮아요! 어렸을 때는 형편이 좋았다가 갑자기 집안이 고꾸라진 케이스예요,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됐고 빨리 타개를 해야겠다 싶은 마음에 돈 준다는 건 다했고. '이거 한 번 해볼래?' 하면 재고 그러는데 저는 받자마자 '예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요?'라고 대답했어요."

- 그러다 <마리텔>을 만났죠.
"맞아요. 제게 <마리텔>은 막 먹구름이 끼고 태풍이 부는데 비춰준 햇살 같은 존재예요. 사실 <마리텔> 하기 전에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방송을 접어야겠다' '방송은 내 체질이 아니구나' 싶었던 와중에 하게 됐어요. 처음 시작하고 정말 먹구름이 걷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됐다!' 싶었죠."

- 이후에 갑자기 일이 많아진 것 같아요.
"무리하는 것 같나요? 프로그램에 많이 나오는 것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재방송도 많아요. 사람 몸이 하나니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한정이 돼있거든요. 평균적으로 4~5개 정도는 하고 있어요. 그런데 되게 행복해요. 사실 얼마 전에 집도 샀고, 빚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라 '빡세게' 벌어야 할 것 같긴 한데..."

- 그 행복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에서 오는 행복감만은 아니지요? 
"성취감. 저를 필요로 해주는 곳이 있고 그에 대한 만족감이 있죠. 사실 애정 결핍이 있고 관심종자 기질도 살짝 있는 것 같고요. 그런 걸 충족시켜주는 뭔가가 있어요. (방송이 시작됐다는 의미의) 불이 들어오면 약간 살짝 '가는' 것 같은 느낌? 눈이 뒤집어지는 그런 느낌. 막 희열이 느껴지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중독된 것 같네요."

- 체질에 맞는다는 말씀인 거죠?
"그렇습니다! (호탕하게 웃으며) 앞으로 사람들이 '믿고 쓰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피디님이나 작가님께서 기획을 할 때 '그래, 서유리 데려오면 어느 정도 기본은 하지' 라고 떠올릴 수 있는, 믿고 쓰는 방송인이 되고 싶어요. 사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늘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성의 있게 임하려고 하죠."

- 부족이요? 스스로 어떤 점이 부족한 것 같나요?
"꼭 하늘에서 내린 것 같은 분들이 계세요. 김구라, 신동엽, 현영 선배님 같은. 정말 신이 내렸어요, 예능신이. 건강검진을 받았다는 사실을 가지고도 웃길 수 있더라고요. 너무 부러워서 어떻게 하면 될까 생각도 했고, 저만의 무기를 찾고 있어요. 물론 실제 제 모습이기도 하지만, 게임을 미친듯이 사랑하고 서브컬쳐나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서브컬쳐 오타쿠' 같은 모습은 방송인들 중엔 누구에게도 없던 캐릭터잖아요. 그게 제 개성이고 무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마리텔>에서 잘 맞아 터진 느낌이에요."

서유리, 솔직함에 대하여 MBC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부터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까지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서유리. 29일 오전,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를 렌즈에 담았다.

속초에 간 서유리의 포켓몬GO 꿀팁. "포켓몬GO를 하러 속초에 갔어요. 피카츄는 속초 해변에 있고요! 바닷가에 갸라도스가 많아요. 차 안에서는 포켓몬스터 노래 틀어놓고 다 같이 '피카피카' 하면서 다녔어요!" ⓒ 곽우신


서유리라는 다면체

누군가에게는 '미스 마리테'로 대표되는 방송인, 누군가에게는 성인잡지 <맥심> 표지 모델, 누군가에게는 서브컬쳐 오타쿠, 또 누군가에게는 SNS에 여성주의를 비롯한 사회 문제 관련 발언을 스스럼없이 올리는 연예인. 서유리는 이 모든 면의 총체이지만, 어떤 이들은 그에게서 어떤 단면만을 보고 쉽게 규정짓는다. 때로는 거센 공격도 받는다. 지난 5월, 서유리의 사회로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와 진행하려던 여성주의 토크콘서트는 행사에 반대하는 악성 댓글과 반응으로 결국 무산되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는." 이 다양하고 격한 반응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질문에, 서유리가 말했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시기 때문에 열심히 해서 희석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그가 선택한, 세간의 냉랭한 시선을 견디는 법이다.

"누구나 고생을 하지만 저도 그랬어요. 정말 힘든 방송도 많이 했고, 밑바닥부터 조금씩 올라온 케이스라 이런 반응들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성우가 돼 여러 가지 인신공격도 많이 받았는데 그런 것들을 많이 겪고 시간이 지나니 괜찮아졌지요."

- 그래도 SNS 상에서 여전히 옳다고 믿는 점에 대해선 발언을 계속 이어 가잖아요?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으니까요. 나중에 제게 2세가 생기고 그랬을 때, 내 딸이나 아들이 지금보다는 잘 살 수 있었으면 해요. 우리 세대는 교육을 이렇게 받아왔고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당장 모든 걸 바꾸기는 힘들어도,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후대의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서유리, 솔직함에 대하여 MBC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부터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까지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서유리. 29일 오전,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를 렌즈에 담았다.

"방송일과 성우일 둘 다 너무 소중해요. 이건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정도예요. 수명을 깎아서라도 두 마리 토끼 모두 잡고 싶습니다." ⓒ 곽우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유리'라는 다면체 위에, 서유리는 또 하나의 면을 더 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드라마까지 발을 넓혔다.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서유리는 홍지민 역할을 맡아 생애 첫 드라마 도전을 하는 중이다.

"홍지민 역할에 제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해서 출연을 했는데,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아, 정말 내가 얼굴이 이렇게 '싸납게' 생기긴 했구나. 피디님들이 '드라마에서 보면 얄밉고 못됐고 그런 애들 있잖아 너는 그런 역할에 딱이다'라고 말을 하셨는데."

- 첫 드라마 도전인데, 기분은 좀 어떠세요?
"촬영장 갈 때마다 조금은 어리둥절해요. 어떻게 큐! 하면 갑자기 감정이 바뀌고 표정이 달라지죠? 사실 '지민이'가 성격이 독한 애잖아요. 그래서 저는 현장에 가면 무서운 표정으로 감정을 잡고 있어요. 그런데 옆에서 보면 되게 웃긴가 봐요. (공)효진 언니가 저를 보면서 계속 웃어요."

- 혹시 드라마 말고 더 도전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세요?
"(잠시 고민하다가) 사실 <무한도전> 성우 특집이 너무 아쉬워요.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나는 왜 안 불렀지? 나 MBC의 딸인데? 그런 서운함? 그리고 정글도 가고 싶어요. 저 정말 잘 할 자신 있거든요. 저 안면도로 휴가 가서도 모래사장에서 조개 잡고 그랬어요.(폭소)"

서유리, 솔직함에 대하여 MBC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부터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까지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서유리. 29일 오전,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를 렌즈에 담았다.

서유리가 지향하는 인간상은 "안성기와 이경규 선배님"이었다. 자기 관리도 철저하고 구설수도 없고 맡으면 기본 이상은 해내는 사람들이라고. "탑은 왜 탑인지 알겠더라. 항상 겸손하시고... 너무 뻔한 이야기 같지만 그게 '진리'인 것 같다." ⓒ 곽우신


그리고, 초심에 대해서.

그를 화면 속에서만 접한 이들에겐 낯선 소식이겠지만, 서유리는 이제 성우로 데뷔한 지 9년차가 됐다. 게임이나 만화로 성우의 세계를 접한 서유리는 처음 성우를 시작했을 때 "정말 내 세상이었다,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어떤 종류의 행복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일이 너무 많아 30일 중에 27일을 일한다는 요즘도, 서유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잠을 줄여서라도" 꼬박꼬박 성우 일을 한다. 성우로서는 'A급'이 된다는 10년차 성우를 딱 1년 남겨두고 있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시종일관 호탕하게 웃던 서유리에게 결례를 무릅쓰고 내내 품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서유리에게 열파참이란 뭘까요" 서유리는 "초심"이라고 답했다.

"겸손해지게 만들고 초심을 잃지 않게 해주더라고요, 그 말이. 초심이란 게 대단한 게 아니라, 일을 하러 나오면 늘 '주어진 일에 집중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해요. 인지도가 늘고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제가 뭐가 된 건 아니잖아요. 거만해지지 말자,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자 생각하는 거죠."

대부분의 보석은 채굴만으론 빛을 보지 못한다. 한면 한면 깎아내 커팅 수를 늘려 빛이 그 안을 통과하는 속도를 줄였을 때, 비로소 단단한 돌덩어리는 광채를 뿜어내는 보석이 된다. 문득 서유리의 호탕한 웃음에서 느꼈던 희한함의 정체를 알 것만 같았다. 초심이라는 단단한 원석 위에, 서유리는 지금 천천히 한 면 한 면 컷 수를 늘리고 있다.

서유리, 솔직함에 대하여 MBC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부터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까지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서유리. 29일 오전,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를 렌즈에 담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하루가 주어졌을 때 서유리는 무얼 할까?라는 질문에 망설임도 없이 서유리는 답한다. 기대했던 그대로다. "게임해야죠! 이런 저라서 죄송해요. 으하하하" ⓒ 곽우신


서유리가 말하는 "내가 보고 싶은 연예 뉴스"
다른 질문에는 특유의 시원한 웃음이나 웃음만큼 시원시원한 대답이 나왔지만, 이 질문만큼은 쉽지 않았나보다.

서유리는 1분 정도를 곰곰 생각하다가 "진솔한... 인간으로서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뉴스면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사실 대필 작가가 쓴 것처럼 너무 똑같은 패턴의, 똑같은 뉴스들이 많지 않나"라며 한 번 더 "그런 것보다 인간으로서, 누군가의 진솔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뉴스면 참 좋을 것 같다"라고 말하며 마무리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사실 그게 힘들다... 매니저의 저지도 있고"라면서 어려움이 있다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음을 알렸다.


서유리 마리텔 성우 질투의 화신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