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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내가 마당 수돗가에서 흙 묻은 내 고무신을 닦습니다.

잔소리를 할 모양으로 말을 걸어옵니다.

"당신, 또 흰고무신 신고 밭에서 일했죠?"
"눈에 띄니까 그냥 신고 나갔지!"
"내참! 검정고무신 놔두고 마실갈 때 신을 흰고무신 신고 일하면 어떡해요!"
"그놈의 잔소리! 예전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하던 소리랑 똑같네!"

잔소리 좀 그만하라는 내 말에 아내가 웃어넘깁니다. 대신 더러워진 고무신을 박박 문지릅니다. 그냥 닦으면 좋으련만 잔소리는 왜 하는지요.

일할 땐 검정고무신, 외출할 땐 흰고무신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외출하시는 날, 신고 갈 흰고무신은 늘 하얗게 닦아놓았습니다. 아버지는 흰고무신은 주로 문밖 출입할 때, 검정고무신은 일할 때 신으셨습니다.

내가 신는 고무신 두 켤레.
 내가 신는 고무신 두 켤레.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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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행장을 차려 입고 어디 외출이라도 하시면 어머니는 흰고무신에 묻어있는 흙을 닦아내시며 잔소리를 하셨습니다. 제발 일할 때는 검정고무신 신으시고, 흰고무신은 아껴 신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고무신에도 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만 흰고무신, 검정고무신 두 켤레였고, 나머지 식구들은 검정고무신이었습니다.

흰고무신은 허물없이 바깥출입할 때 신습니다. 운전할 때 신어도 좋습니다.
 흰고무신은 허물없이 바깥출입할 때 신습니다. 운전할 때 신어도 좋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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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더러워진 신을 신고 외출을 하면 위신이 떨어진다고 여겼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흰고무신은 늘 깨끗하게 손질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깨끗이 닦아놓은 흰고무신을 신고 일이라도 하다 더러워지면, 어머니는 잔소리를 하였습니다. 지금 아내가 나한테 투덜대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내는 검정고무신을 술렁술렁 대충 닦고, 흰고무신을 비누칠까지 해서 깨끗이 닦습니다.

"당신, 고무신을 두고 차별하는 것 같아?"
"차별은 무슨?"
"그렇잖아!"
"검정색은 때가 타도 모르고, 흰색은 비누칠해야 깨끗하니까 그렇죠?"
"그래도 그렇지?"
"흰고무신은 뭔가 품위가 있잖아요!"

아내도 고무신에 격을 두는 것 같습니다. 예전 우리 어머니처럼 흰고무신은 늘 깨끗이 신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추억이 깃든 고무신

우리는 지나온 세월 속에서 많은 것을 잊고 삽니다. 하지만, 세월의 저편에서 그리운 것들이 참 많습니다. 아련한 옛 기억 속에 잊혀진 것들이 문득 생각나면 향수에 젖어들곤 합니다.

정말 어려웠던 시절 고무신은 우리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내 초등학교 시절 60년대만 해도 너나 할 것 없이 죄다 고무신을 신고 살았습니다. 어쩌다 부잣집 친구가 운동화라도 신고 다니면 정말 부러워했습니다.

검정고무신. 밭일할 때 신으면 편합니다. 때가 안 타고. 씻어 말리기도 좋습니다.
 검정고무신. 밭일할 때 신으면 편합니다. 때가 안 타고. 씻어 말리기도 좋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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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을 뒷굽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신었습니다. 헤진 고무신을 장날까지 기다리지 못하면 어머니는 실로 꿰매주었습니다. 그럴 때는 좀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장날에 새 고무신을 사오면 표시를 해두기도 했습니다. 행여 친구들과 새 신이 바뀌지나 않을까 염려를 한 것입니다.

여름에 양말도 신지 않은 고무신은 발에 땀이 차면 미끄덩거렸습니다. 고무신이 싫었던 이유는 바로 이거였습니다. 또, 고무신을 신고 공을 차면 고무신이 허공에 날리는 수가 많았습니다. 웃지 못할 일이었지요. 새끼줄로 고무신을 동여 메고 공을 찼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내가 뜬금없이 묻습니다.

"당신, 운동회 때 고무신 신고도 달리기 잘했어?"
"잘 했지! 근데 그건 왜 물어?"
"그때 달리다 고무신 벗겨지고 막 그랬잖아요!"
"많이 그랬지! 아예 신발 벗고 뛰는 게 되레 편했어!"

초등학교 운동회 때 고무신은 거추장스러웠습니다. 달리기 시합 때 운동장을 돌면서 고무신을 벗어 손으로 막 휘돌리며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맨발의 운동회였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고무신은 내 곁을 떠났습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고무신만 신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운동화를 신게 되었던 것입니다.

중학생이 되면 학교에서 지정해준 교복과 모자 그리고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운동화를 신었을 때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 발이 가벼워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고무신과는 자연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고무신은 지금도 편합니다

고무신은 신고 벗기가 편합니다.
 고무신은 신고 벗기가 편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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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게 풍족하지 않았던 그래서 가난했던 시절, 고무신은 우리의 소중한 신발이었습니다. 지겹도록 신었던 고무신이지만 참 정다웠습니다. 세상이 바뀌어 지금은 시대의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고무신은 내 몸처럼 가까이 지냈습니다.

내가 예전 생각이 나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고무신 다 헤지면 엿 바꿔먹었던 생각 나?"
"생각나고 말구요. 아이스깨끼하고도 바꿔먹었지요."

고무신이 너덜너덜 다 헤지면 그것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을 신을 수 없는 때까지 신다가 고물장수한테 엿이랑 아이스깨끼로 바꿔 먹었습니다. 고무신은 다른 것에 비해 꽤 값을 쳐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내와 함께 고무신을 닦으며 예전 생각을 떠올리며 나눈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추억의 저편에 자리 잡은 고무신이었습니다.

나는 시골에서 고무신을 늘 신고 삽니다. 흰고무신, 검정고무신 이렇게 두 켤레가 있습니다. 예전 아버지처럼 어디 허물없이 나갈 때는 흰고무신, 밭에서 일할 때 검정고무신을 신습니다.

고무신은 맨발에 땀이 차는 것 말고는 아주 편합니다. 허리를 구부려 뒤꿈치를 손대지 않고 신고 벗기가 쉽습니다. 끈을 멜 필요도 없구요. 더러워지면 비누칠 싹싹하면 잘 닦아집니다. 씻은 다음 엎어놓고 뒤집어 놓으면 금세 마릅니다.

아내는 볕이 드는 곳에 깨끗이 닦은 고무신을 놓습니다. 일할 땐 검정고무신, 마실 나갈 땐 흰고무신을 신으라는 아까 한 잔소리를 또 합니다.


태그:#고무신, #흰고무신, #검정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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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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