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최대 성수기 8월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한국 텐트폴 영화(대형 기획사가 성수기를 겨냥해 내놓은 기대작)가 우세를 보였다. 지난해 8월 나란히 1000만 관객 고지에 오른 <베테랑> <암살>만큼은 아니었으나 <터널> <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 <부산행>이 박스오피스 1위부터 4위까지를 사이좋게 점하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저 아래로 밀어냈다. 기대를 모은 <수어사이드 스쿼드> <제이슨 본> <스타트렉 비욘드>는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았다.

다가오는 열매달(9월)은 이름 있는 감독의 영화가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국에선 김지운과 강우석, 김성수 같은 무게감 있는 이름이 포진해 있고 할리우드에선 클린트 이스트우드, 팀 버튼, 우디 앨런, 마이클 무어,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안톤 후쿠아 등이 출격을 앞두고 있다. 일본의 이와이 슌지와 홍콩의 진가신, 프랑스의 끌로드 를르슈도 무시할 수 없다.

한여름을 가득 채웠던 뜨거운 공기는 지난 계절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 오랜 기간 갈고 닦은 성취를 관객 앞에 내보이려는 감독들을 기쁜 마음으로 영접할 때다.

열매달 기대작 10편을 소개한다.

[하나] <사랑이 이끄는 대로>

사랑이 이끄는 대로 포스터

▲ 사랑이 이끄는 대로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거장이란 칭호가 잘 어울리는 끌로드 를르슈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이어가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다. 영상이 말을 하는 듯한 섬세한 멜로영화 <남과 여>로 27살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이후 세계 최고의 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며 멜로, 범죄,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기만의 영화를 찍어왔다.

1일 개봉하는 신작 <사랑이 이끄는 대로>는 를르슈가 언제나처럼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은 작품으로 인도여행길에 만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그린다. 50년 전 <남과 여>에서 잊을 수 없는 음악을 들려준 프랑시스 레이가 다시 한 번 를르슈 영화의 음악을 책임지고 <아티스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장 뒤자르댕이 주연을 맡았다.

끌로드 를르슈와 프랑시스 레이, 장 뒤자르댕의 합작이라는 점만으로도 보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프랑스가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영화일지 모른다.

[둘] <밀정>

밀정 포스터

▲ 밀정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부산행>에 이어 2016년 2번 째 1000만 영화를 노리는 유력후보가 마운드에 오른다. 십 수 년 전 박찬욱, 봉준호와 함께 거론되며 한국영화계를 이끌 대표적인 신진감독으로 손꼽힌 김지운의 신작 <밀정>이 그것이다.

그로부터 십 수 년, 어느덧 한국영화계의 얼굴이 된 김지운 감독에게 1000만 관객 타이틀은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훈장이다. 그가 2008년 668만 관객을 모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넘는 초대형 흥행작을 빚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가는 이유다. 워너브러더스의 첫 한국 투자·배급작이자 송강호, 공유, 한지민 등 화려한 출연진을 갖췄다는 점에서 준비는 모두 마쳤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의열단과 친일경찰이 뒤얽힌 숨막히는 스토리다. 되찾은 나라에서 의기와 열의를 잃어버린 오늘, 의열단의 이야기는 더없이 시의적절하다. 7일 개봉한다.

[셋] <고산자, 대동여지도>

고산자, 대동여지도 포스터

▲ 고산자, 대동여지도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이후 크고 작은 제작사에서 앞다퉈 제작된 사극으로 한국 극장가가 뒤덮였던 때가 있었다. 이름 있는 사극만도 한해 10편을 훌쩍 웃돌았는데 그 가운데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둔 작품은 손에 꼽는 게 현실이었다. 배경이 과거란 점만 제외하곤 고만고만한 전개와 구성으로 일관한 경우가 태반이어서 어느 정도는 예견된 결과였다.

하지만 2014, 2015 두 해를 거치며 쫄딱 망한 사극이 늘어나자 올해부터는 사극 개봉빈도가 평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그래서인지 사극이란 소리만 들어도 염증을 드러내던 관객들도 많이 줄어든 모습이다. 7일 개봉하는 <고산자, 대동여지도>도 개봉 수 주 전부터 적지 않은 관객의 지지를 받아왔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힌 강우석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썩어도 준치라는 속담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차승원과 유준상 등 출연진의 면면은 여느 흥행작에 비해 꿇리지 않는다. 구글지도 반출과 관련한 국익논란이 화두로 떠오른 요즘 대동여지도와 정보공유의 문제를 슬쩍 다룬 이 영화의 파급력이 기대된다.

[넷] <다음 침공은 어디?>

다음 침공은 어디? 포스터

▲ 다음 침공은 어디? 포스터 ⓒ 판씨네마(주)


<볼링 포 콜럼바인> < 화씨 9/11 > <식코> 등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는 이들도 이름을 한번쯤 들어봤을 명작들을 제작한 이 시대 가장 유명한 다큐 감독 마이클 무어의 신작이 개봉한다.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고부터 전만큼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게 아니냐는 짓궂은 비판도 받았던 그가 미국 펜타곤의 전사가 되어 전 세계 곳곳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타깃은 소위 유럽의 선진국들. 복지든 급여든 놀만큼 놀고 받을 만큼 받는 나라를 돌며 이 시대 미국의 노동환경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멕시코, 코스타리카에 이어 OECD 노동시간 동메달리스트 한국사회도 눈여겨 볼만 한 작품이다. 가을을 맞아 조금 똑똑해지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8일 개봉.

[다섯] <아이 엠 어 히어로>

아이 엠 어 히어로 포스터

▲ 아이 엠 어 히어로 포스터 ⓒ (주)영화사 빅


올해 동아시아 영화계의 대세는 좀비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과 <서울역>이 한국영화계에 일대파란을 몰고 온 데 이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일본 좀비만화 <아이 엠 어 히어로>가 영화로 만들어져 2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단편영화에 몇 차례 등장한 게 전부로 서양영화의 전유물로 여겨진 좀비가 자연스레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영화에도 스며든 모습이다.

원작 만화의 인기에 앞서 일본에선 스핀오프 5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예기치 않은 사태에 휘말려 영웅적인 행동을 해나가는 이야기다. 일상 속 영웅이 절실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한다.

<아이 엠 어 히어로> 극장판 연출은 <간츠> 등 만화를 실사영화로 살려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온 사토 신스케가 맡았다.

[여섯] <연인과 독재자>

연인과 독재자 포스터

▲ 연인과 독재자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지난달 개봉한 <히치콕 트뤼포> <그림자들의 섬> <내셔널 갤러리>에 이어 이달에도 주목할 만한 다큐멘터리가 다수 개봉한다. 196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로 일명 '납북 스캔들'의 주인공 신상옥, 최은희 커플의 이야기가 담긴 <연인과 독재자>도 그 중 하나다.

1961년 작 <성춘향>의 성공 이후 한국 영화계 한 가운데에 소위 '신상옥 제국'을 구축했던 감독 신상옥이 홍콩여행 도중 돌연 사라진 연인 최은희를 찾아 홍콩으로 갔다 사라진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북한으로 납북 당했다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는 그들의 증언과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을 영국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 로스 아담과 로버트 캐넌이 뒤쫓는다.

한국과 북한 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한 경력을 쌓아올린 두 사람의 감춰진 이야기는 22일 확인할 수 있다.

[일곱]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포스터

▲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팀 버튼과 그의 영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열성과 창의력, 능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특한 시각으로 늘 이전까지 이룩된 적 없는 세계를 창조해온 팀 버튼은 영화라는 예술의 장점을 더없이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연출자다.

28일 개봉하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빅 아이즈>에 이어 1년 반 만에 내놓은 팀 버튼의 신작이다. 스티븐 킹과 몬티 파이튼을 즐겨 읽었다는 랜섬 릭스의 독특한 소설을 특유의 상상력으로 스크린 위에 구현했다. 에바 그린, 사무엘 L. 잭슨, 주디 덴치 등 뭘 좀 아는 배우들이 팀 버튼의 세계에 기꺼이 몸을 내던졌다. 여러분도 팀 버튼의 세계에 풍덩 빠져보시길 권한다.

[여덟]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포스터

▲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클린트 이스트우드, 배우와 감독으로 모두 최고의 자리에 오른 전설적 인물. 만으로 86세, 당장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내놓는 작품마다 비범한 시선을 담아내는 그의 신작이 28일 개봉한다.

이번에 그의 관심이 가 닿은 건 2009년 허드슨강 항공기 추락사건. 기장 체슬리 설리 슐렌버거의 숙련된 대처로 탑승객 155명이 무사히 생존한 사건이다. 제목에서 보듯 체슬리 '설리' 슐렌버거의 영웅적 전기물에 가깝게 연출된 것으로 보이는데 건전한 보수적 시각에서 시대상과 어울리는 영웅을 그려온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이 기대된다.

톰 행크스가 주인공 설리를 맡았고 로라 리니, 아론 에크하트도 함께 출연했다.

[아홉] <아수라>

아수라 포스터

▲ 아수라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만나야 할 이들이 만났다.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까지. 김성수와 정우성의 만남은 언제나 옳았다. 2003년 <영어 완전 정복> 이후 완연한 하락세를 그리고 있는 김성수 감독이지만 15년 만에 페르소나 정우성과 재회한 작품이란 점만으로도 기대할 가치가 있다.

정우성에 더해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까지 느낌 있는 배우들이 즐비한 <아수라> 출연진은 범죄액션이란 장르의 극점에 가 닿겠다는 기세다. 선과 악이 뒤엉켜 알아볼 수 없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지옥도 가운데 어떻게든 선택을 내려야 하는 이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찍어냈다. 28일 개봉.

[열] <디어리스트>

디어리스트 포스터

▲ 디어리스트 포스터 ⓒ 콘텐츠판다


이와이 슌지의 <립반윙클의 신부>와 나란히 두고 어떤 영화를 선택할지 한참을 고심했다. 각기 일본과 홍콩을 대표하는 명감독의 작품이기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긴 쉽지 않았다. 끝내 고른 건 진가신의 <디어리스트>. 출연 배우들의 면면과 흥미로운 시놉시스가 눈길을 사로잡은 덕이다.

PC방에서 아들 펭펭이 유괴된 후 납치된 아이를 찾아 수년을 헤맨 아버지. 갖은 노력 끝에 아들과 재회하지만 아들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납치범의 아내를 엄마라며 따른다. 아들을 찾아 헤맨 아버지와 아이를 친자식처럼 기른 어머니 사이에서 벌어지는 드라마 <디어리스트>는 딜레마적 상황에 놓인 부모의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그린다.

<서유기: 모험의 시작>에서 잊을 수 없는 연기를 펼친 황보와 드라마 <황제의 딸> 시리즈로 한국에도 많은 팬을 확보한 자오웨이가 주연한다. 8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대작을소개합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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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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