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연승을 거두며 포스트 시즌 진출의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고는 있지만, 한화 이글스는 선수 수급에서 계속 위험한 상황을 겪고 있다. 한화 투수진의 베테랑 권혁과 송창식이 둘 다 부상으로 인하여 팀 전력에서 이탈한 상황에서 9월을 맞이하게 됐다.

사실 한화 마운드는 선발투수와 구원투수 보직의 명백한 구분이 사라진 지 오래다. 선발투수는 5이닝 이상을 채우는 경우를 찾기 힘들고, 대부분 경기에서 선발투수라기보다는 그냥 첫 번째로 나와서 2~3이닝 던지는 롱 릴리프 같이 보였다.

선발투수가 마운드에서 내려가고 나면 거의 모든 투수가 불펜에서 상황 대기를 해야 했다. 필승조와 추격조의 구분도 없이 비상 대기조가 되었고, 한 경기에 불펜에 있는 거의 모든 투수를 소모한 적도 있었다. '살려조'(필승조·추격조 등 대신 '살려줘'에서 따온 언어유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한화 투수들의 줄부상,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지난 6월 28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7회말 SK 공격 2사 만루 상황에서 한화 투수 권혁이 볼넷으로 SK 이재원을 출루시켜 한 점을 내준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 2015년 6월 28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7회 말 SK 공격 2사 만루 상황에서 한화 투수 권혁이 볼넷으로 SK 이재원을 출루시켜 한 점을 내준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올 시즌 한화 투수진에서는 이미 배영수, 안영명, 송은범, 장민재 등이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외국인 용병 투수 에스밀 로저스는 지난 시즌 뛰어난 활약을 통해 재계약했지만, 팔꿈치 인대 파열로 수술(토미 존 서저리)을 결정하면서 팀과의 계약을 해지했다(잔여 연봉 모두 지급).

게다가 특급 유망주였던 김민우는 올 시즌 5경기만 등판한 뒤 1군에서 말소됐다. 1군 말소 후 재활 등판이 한 차례도 없었던 김민우는 최근 어깨 관절와순이 손상되었음이 알려졌다. 일본까지 건너가서 검진을 받았지만, 상태가 영 좋지 않다는 소견을 들었다.

토미 존 서저리는 1년에서 1년 반가량 착실한 재활을 거치고 복귀한 사례가 많다. 하지만 어깨 관절와순이나 회전근 파열의 경우 재기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서 김민우의 경우도 수술을 해야 한다는 쪽과 재활로 이겨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갈려 있다.

어깨 수술은 재활 기간이 상당히 길며, 재기 가능성도 상당히 낮다. 한화 출신이었던 류현진(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작년에 관절와순 수술을 선택했는데, 류현진의 경우만 봐도 2015년에는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올 시즌도 정규 시즌 1경기에 그치고 있다.

물론 류현진의 경우 다시 부상자 명단에 들어간 배경이 어깨가 아닌 팔꿈치 건염이라고 밝혀졌지만, 어깨가 아닌 다른 부분에 무리가 갔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만큼 부상을 입었던 부위가 꼭 재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체의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말해준다.

김민우의 경우 이미 2013년에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고, 고등학교 시절에 무릎까지 수술받아 유급까지 겪었던 선수다.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출신이었던 김민우는 2015년 데뷔 시즌이 되자마자 큰 주목을 받았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2015년 4월 1일 구원 등판에서 2.1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자 당시 한화에서의 첫 시즌을 맡았던 김성근의 눈에 들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김민우는 데뷔 시즌부터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혹사의 길을 걷게 됐다. 현재 재활을 진행하다 중단하기를 반복하고 있는 김민우는 올 시즌 복귀는 사실상 불투명하다.

유망주도 베테랑도 예외 없는 "살려조"의 집단 부상

베테랑 왼손 구원투수 권혁은 삼성 라이온즈 시절까지만 해도 철저한 관리 속에 등판했다. 삼성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4년 권혁은 34.2이닝을 책임지며 554개의 공을 던졌다. 그리고 FA 계약을 통해 한화에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권혁은 2015년에 들어와서 갑작스럽게 이닝이 증가했다. 선발로 등판한 적이 한 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112이닝이나 맡아 2098개의 공을 던졌다. 올해에도 별반 다르지 않아 66경기 등판에 95.1이닝 1654개의 공을 던졌다.

한 시즌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꾸준히 등판하는 구원투수들은 대개 한 시즌에 70경기 남짓 등판한다. 많아도 80경기를 넘기는 선수는 몇 안 될 정도로 등판 간격을 철저히 지켜주며 2~3일 연투 후 휴식은 필수 코스였다.

그런데 144경기를 치르는 KBO리그에서 권혁은 지난해 무려 112이닝을 던졌다.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 100이닝을 넘겼던 구원투수도 한때 두산 베어스를 거쳐 갔던 구원투수 스캇 프록터(은퇴) 정도였다. 프록터 역시 당시 감독이었던 조 토레(현 메이저리그 부사장)의 중용 속에 100이닝을 넘겼던 후유증을 확실히 겪고 메이저리그에서 경쟁력을 잃었던 선수다.

결국, 권혁은 2015년에도 전반기가 끝날 즈음 평균 구속이 뚝 떨어졌다. 구속만 떨어진 것이 아니라 공의 회전수도 밋밋해졌다. 2015년 전반기 4.01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던 권혁은 후반기 평균 자책점만 따졌을 때 무려 7.07로 구위 약화가 너무 눈에 띄었다.

그런데도 권혁은 올 시즌에도 너무 많이 등판했다. 삼성에 있던 시절 중 마지막 1년 동안 권혁은 38경기에 등판했지만, 이닝은 34.2이닝에 그쳤다. 주로 왼손 타자들을 상대하기 위한 원 포인트 릴리프로 등판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투수가 급격하게 이닝이 늘어났으니 탈이 안 나는 게 이상할 정도다. 올 시즌도 권혁은 이미 66경기에서 95.1이닝을 던졌다. 작년 112이닝에 이어 올해도 복귀할 경우 100이닝을 넘길 것은 기정사실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혹사 앞엔 베테랑도 장사 없다, 권혁에 이어 송창식도 이탈

역투하는 송창식 지난 2015년 8월 20일 오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프로야구 한화와 kt의 경기. 한화 선발 송창식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 역투하는 송창식 지난 2015년 8월 20일 오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프로야구 한화와 kt의 경기. 한화 선발 송창식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한화의 또 다른 베테랑 투수가 부상으로 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왼손 투수 중 권혁이 혹사 후유증을 겪고 있다면, 오른손 베테랑 투수 중에서는 송은범에 이어 송창식까지 후유증이 발생한 것이다.

한화는 8월 28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 원정 경기를 치렀다. 정상적인 팀 일정대로라면 30일 두산 베어스와의 원정 경기가 열리는 서울로 가야 한다. 하지만 송창식은 서울로 간 것이 아니라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 요코하마로 갔다.

송창식은 29일 오후 비행기 편을 통해 일본 요코하마에 있는 미나미 공제병원으로 검진을 받으러 갔다. 27일에 불펜에서 공을 던지다가 오른쪽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 송창식은 일단 김성근 감독의 지시를 받아 병원 검진을 갔으며 1군 엔트리 제외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송창식도 2015년에 64경기에 등판했는데, 무려 109이닝을 던졌다. 팀 내 구원투수 중 권혁 다음으로 가장 많이 던진 투수였다. 이 등판 중에는 3경기 연속 등판이 4번이 있었고, 4경기 연속 등판까지 한 적도 있었다. 3이닝 이상 던진 경기도 5경기나 있었다(4이닝 이상 2경기).

권혁은 구원투수로만 등판했다지만, 송창식은 2015년과 2016년 모두 선발로 등판한 경기도 11번이나 되었다. 물론 선발투수라기보다는 첫 번째 등판하는 투수로서의 색이 짙었지만, 등판이 불규칙했던 것만은 확실했다.

송창식은 7월 12경기에서 3승 1홀드 평균 자책점 1.86으로 맹활약하면서 한화의 상승세를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탈이 났고, 결국 8월 13경기에서 2승 3패 2홀드 평균 자책점 7.36에 그쳤다.

이후 송창식은 2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홈 경기 이후로 등판하지 않고 쉬고 있었다. 이 역시 몸에 이상이 있었다는 징후였는데, 이후 27일 불펜에서 등판을 준비하던 도중 통증이 발생한 것이다. 아이싱을 해도 소용이 없었던 송창식은 결국 시즌 도중 일본행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었다.

송창식도 2005년에 팔꿈치 수술을 겪었다. 게다가 2008년에는 손가락 끝의 감각이 무뎌지는 버거씨병까지 앓고 있음이 밝혀져 주변을 더 안타깝게 했다. 이 때문에 송창식은 한때 선수 생활을 쉬기도 했으나 불굴의 의지로 현역으로 복귀한 선수였다.

남아있는 투수들의 부담감 증가, 한화의 운명은?

정규 시즌 114경기를 치른 한화는 현재까지 52승 3무 61패로 리그 7위에 올라있다. 아직 포스트 시즌 진출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며, 작년에도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포스트 시즌 진출에 대한 경우의 수를 놓고 SK 와이번스와 경쟁을 벌이던 한화였다.

4~5위 경쟁권과의 승차가 3경기(5위 LG와의 승차 기준)이며, 최근 6위 SK가 3연패로 내림세를 타고 있음을 감안하면 아직 경쟁권으로 비집고 들어갈 기회가 분명 남아있다. 하지만 외국인 용병 투수 에릭 서캠프가 아직 2군에 머물러 있는 등 선발진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베테랑 구원투수 2명이 한꺼번에 이탈한 것이다.

현재 한화에 남아 있는 주요 투수들은 박정진, 심수창, 장민재, 정대훈 등이다. 그중에 장민재도 39경기(8선발) 82이닝 5승 4패 평균 자책점 4.25로 다소 위험한 상황이다. 권혁과 송창식이 이탈한 가운데 그 빈자리를 메울 또 다른 선수도 분명 후유증을 겪을 것이다.

김성근은 2017년까지 한화와의 감독 계약이 남아 있으며, 사실상의 전권을 부여받은 상황이다. 그동안 마운드를 지켜왔던 베테랑 투수들이 줄줄이 이탈하는 가운데, 김성근이 어떤 방법으로 위기를 타개할지는 30일 경기를 보면 알 것이다.

다만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이미 논란은 지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감독 부임 첫해에 하위권 팀들을 포스트 시즌에 올려놓았던 기록도 작년에 이미 깨졌다. 감독에게 전권을 주었다는 것은 그만큼 구단 프런트가 확실한 성과를 바랐다는 것이다. 곪았던 상처들이 터지고 있는 한화가 올 시즌을 어떤 기록으로 마치게 될지 남은 시즌을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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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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