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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텃밭 농사지만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연장이나 농기구는 많다.

망치나 펜치 같은 공구는 물론 삽과 괭이 호미 낫 갈퀴 전정가위 등 종류를 헤아려 보지는 않았으나 농사에 필요하다고 갖춘 농기구만 얼추 30가지는 되지 않을까 한다.

그중에는 용도만 알지 정확하게 이름을 모르는 농기구도 있다. 또 사놓고 한 번도 쓰지 않은 녹이 슨 농기구도 없지 않다. 날이 닳아 못 쓰게 된 호미나 괭이도 있다. 그래도 함부로 버리고 싶지 않아 창고의 여기저기에 보관하고 필요한 일에 맞추어 찾아서 사용하고 있다.

10여 년 전 텃밭 농사를 시작하면서 무엇이 편한지 몰랐던 나는 덥석 외바퀴 수레를 구입하였다. 당시는 고무바퀴가 아닌 공기를 주입하는 소형 바퀴를 달고 있었는데 공기를 주입하는 기구까지 구입하여 의기양양하게 몰고 다녔다.

처음에는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았으나 수레가 좁은 이랑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아주 유용했다. 몇 년이 지나니 20kg짜리 퇴비 5포를 싣고도 곡예 하듯 다닐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혹사하다 보니 짐을 싣는 플라스틱 짐칸이 깨져 새로 갈았고, 바퀴도 생고무 바퀴로 바꾸었다.

그러나 물건도 그렇지만 사람도 세월을 이길 장사가 없는 법이다. 퇴비를 싣는 양이 점점 줄어 퇴비 4포만 실어도 미는 힘이 달렸고 팔에 힘을 단단히 주어도 조금만 장애가 나타나면 버둥거리기 일쑤였다.

'게으른 놈 짐 많이 진다'는 속담을 생각하고 몇 차례 더 왕복하는 한이 있더라도 3포만 싣자고 했는데 지난봄 그마저 균형을 잡지 못해 수레와 함께 넘어지는 낭패를 당한 것이다. 그 얼마 후에는 철거하는 폐가에서 구들장을 싣고 오다가 길바닥에 쏟는 바람에 다시 주워 담은 일도 있었다. 

수레가 두 대임을 인증하는 사진이다.
뒤의 수레가 바퀴 둘이다.
▲ 두 대의 수레 수레가 두 대임을 인증하는 사진이다. 뒤의 수레가 바퀴 둘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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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바퀴 수레에 비해 바퀴가 둘인 수레는 아무 곳이나 원하는 곳을 갈 수 없다. 그리고 매일 자주 사용하는 물건도 아니다. 텃밭 농사이기 때문에 실어 나를 농작물도 많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급히 바퀴가 둘인 수레를 구입한 이유는 안정감 때문이다. 언제까지 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더는 젊어질 수 없는 법, 그래서 예상되는 낭패를 예방하고자 서두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외바퀴수레의 용도가 애매했다. 버리기는 아깝고 주겠다고 해도 마을에서는 반길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작은 전정가위나 톱 등 필요한 연장을 담아 허리에 차는 연장띠를 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전문 농부도 아닌 주제에 너무 티를 내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손에 몇 종류의 연장을 들고 다닐 수 없고 일거리가 보일 때마다 창고나 비닐하우스로 달려가는 것도 번거롭다는 생각에 미치자 외바퀴 달린 수레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농기구를 싣고 다니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외바퀴 수레는 자주 필요한 삽 괭이 구와 쇠갈퀴 등 손잡이 자루가 긴 농기구와 호미 낫 톱도 한꺼번에 싣고 다니는 역할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톱이나 낫은 잘 쓰지 않다 보니 큰 농기구 밑바닥에 깔려 있어 수레의 짐칸을 고정하는 나사를 약간 풀어 철사로 작은 농구를 걸 자리를 마련했더니 일이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어서 그 점도 스스로 대견한 발견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농기구의 비를 피하다보니 수레도 그늘 차지가 되었다.
화분이 중요한 것이라기보다는 화분에 무슨 곷을 담았는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 창고안의 수레 농기구의 비를 피하다보니 수레도 그늘 차지가 되었다. 화분이 중요한 것이라기보다는 화분에 무슨 곷을 담았는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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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이나 톱은 자주 사용하지도 않지만 다막에 깔리면 찾아 꺼냐는 일이 어려워진다. 따로 걸이를 만들어 낫이나 톶 호미등을 걸었더니 단정하게 보이는 점도 좋다.
▲ 수레 안의 농기구들 낫이나 톱은 자주 사용하지도 않지만 다막에 깔리면 찾아 꺼냐는 일이 어려워진다. 따로 걸이를 만들어 낫이나 톶 호미등을 걸었더니 단정하게 보이는 점도 좋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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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텃밭에 나가는 시간이면 농기구가 실린 외발 수레를 앞세운다. 폭염 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되었다는 여름날 아침에도 운동 삼아 일을 나가는데 그때도 나의 든든한 벗이 되어 앞장선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수레는 비와 이슬, 그리고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창고 안에 들인다. 쇠붙이 농기구에 물기가 묻어 녹이 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일을 하는 중에 농구를 찾아다니는 불편을 덜고, 또한 밀고 다니는데도 부담이 없다는 이유로 선택한 것인데 새로운 발견이나 한 것처럼 좋다. 덕분에 졸지에 찬밥신세가 될 뻔했던 외바퀴 수레는 융숭한 대접까지 받게 되었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고 선선한 바람이 분다.

고라니가 휩쓸고 간 고구마밭은 우리 먹을 것이나 나올지 의심스럽고, 연작을 피한다고 자리를 옮겨 심은 야콘도 폭염 탓인지 시원찮다. 적은 수확이 예상되니 무거운 것을 운반하는 일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요즘도 아침을 먹으면 외바퀴 수레를 밀고 숙지원을 누빈다. 그 안에 담긴 괭이 삽 전정가위 톱 낫 호미도 나의 힘을 덜어준 벗들이다. 어느 날 용도가 바뀐 외바퀴 수레, 그 수레를 통해 현재 내 삶을 다시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블로그 다음 블로그 등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외바퀴수레 , #농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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