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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에 지은 석조 건물, 지금은 호텔(Abbey of the Roses)로 사용하고 있다.
 1800년대에 지은 석조 건물, 지금은 호텔(Abbey of the Roses)로 사용하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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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지은 고풍스런 건물, 봉건시대 영국 영주가 된 느낌

흔히 골코라고 부르는 골드 코스트(Gold Coast)에서 손녀들과 떠들썩하게 며칠 보냈다. 헤어지는 날이다. 시골의 한적함을 벗어나 떠들썩함이 그리워 찾아왔지만, 며칠 지내다 보니 나만의 시간이 그리워진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워릭(Warwick)이라는 동네를 찾아 나선다. 딸이 건네준 무료 숙박권이 있기 때문이다. 골드 코스트에서 200여 킬로 정도 내륙에 있는 처음 가보는 동네다. 도시를 벗어나자 초원이 펼쳐진다.

가끔 농가 한둘이 차창 밖으로 지나가고 소들이 한가하게 노니는 호주 내륙이다. 전형적인 호주 모습이다. 이런 곳을 등지고 오페라 하우스 등 이름 있는 관광지만 거쳐 가는 관광객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워릭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다. 식당을 찾으며 동네에 들어서는데 한국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뜻밖이다. 주차하고 천천히 걸어 식당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개업하지 않은 식당이다.

실내 공사를 하고 있으며 문 앞에는 종업원을 뽑는다는 광고가 있다. 호주 오지를 여행하다 중국 식당을 보면 중국 사람들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사람도 중국사람 못지 않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 건물이 예사롭지 않다. 넓은 대지에 돌로 웅장하게 지은 고풍이 물씬 풍기는 건물이다. 수수하게 차려입은 여자가 우리를 맞는다. 방 열쇠만 건네는 일반 호텔과 달리 건물을 안내하며 설명해준다. 수도원으로 쓰였던 건물인데 1891년에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숙소로 변경해 손님을 받고 있지만, 미사를 드리던 장소는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

일반 호텔과 달리 고가구로 장식된 방에 짐을 풀고 건물 내부를 돌아본다. 벽은 오래된 영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복도에도 골동품들이 비싼 가격표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베란다에 나와 앉는다. 너른 대지에 영국식으로 장식된 정원을 바라본다. 봉건 시대 영국의 영주가 된 느낌이다. 영국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 이 호텔을 선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숙박료가 비싼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엄숙함이 넘쳐흐르는 고급스러운 숙소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아침을 먹으러 약속한 시각에 맞추어 식당으로 내려간다. 어제 리셉션에서 만났던 여자가 음식을 가지고 온다. 음식은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않게 현대식이다. 골동품으로 둘러싸인 식당에서 푸짐한 식사를 끝내고 숙소 주위를 산책한다. 싸늘한 아침이다. 장미 정원이 있다. 꽃 피는 계절에 오면 좋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조금 이른 아침 숙소를 나온다. 집으로 가는 길에 관광안내소에서 가볼 만한 곳이라고 알려준 툴림바(Thulimbah)라는 동네와 기라윈 국립공원(Girraween National Park)을 들릴 생각이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사과 서리하는 짜릿한 기분

가끔 자그마한 동네를 지나치며 황량한 호주 내륙을 운전한다. 첫 목적지 툴림바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과일 농장으로 유명한 동네다. 특히 사과 농사로 유명한 곳이라 한다. 큰 규모의 사과 농장이 도로 양쪽에 끝없이 전개된다. 농장 입구에는 일손이 필요 없다는 팻말이 많이 보인다. 호주에 놀러 온 외국 젊은이들이 용돈을 마련하려고 많이 찾는 것 같다.

지금은 수확기가 아닌지 나무에 달린 사과는 많지 않다. 그러나 나무 아래에는 떨어진 사과가 수북하다. 사진도 찍을 겸해서 차를 세운다. 사진을 찍으며 큼지막한 사과 몇 개 줍는다. 예상외로 사과가 흠집 없이 깨끗하다.

한 입 먹어보니 맛도 일품이다. 다음 농장에서 차를 세워 더 많이 줍는다. 시골 생활을 해보지 못했기에 서리를 해본 적이 없다. 대낮에 호주에서 난생 처음 서리하는 경험을 한다. 

자연이 만든 작품, 한 번 밀어서 떨어뜨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자연이 만든 작품, 한 번 밀어서 떨어뜨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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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먹으며 기라윈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화강암 바위를 보러 오는 곳이다. 입구에 있는 안내소도 돌로 튼튼하게 지은 건물이다. 안내 지도를 보니 산책길이 많다. 그중에서 '화강암 아치'와 '피라미드'라고 이름 지어진 가까운 산책길을 골라 걷는다.

화강암 아치 산책길은 돌로 잘 정돈되어 있다. 산책길 옆으로는 기묘한 모양의 거대한 바위들이 줄을 서 있다. 외국에서 온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기묘한 바위를 카메라에 담으며 산책하고 있다. 사과를 먹으며 산책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 나처럼 서리한 사과일 것이다.

'화강암 아치'라고 이름 지어진 곳에 이르니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다른 바위들 위에 올라서 아치 모양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바위 아래를 거닐며 사진을 찍는다. 자연이 만든 아치다. 인공 조형물보다 섬세함이 없을는지 몰라도 웅장함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피라미드'라 이름 지어진 산책길을 걷는다. 작은 개울도 건너며 자연이 조각한 수많은 바위 사이를 걷다 보니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바위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가 오면 바위가 미끄럽다는 경고도 붙어 있다. 바위를 타고 정상을 향해 계속 오른다. 힘들다. 아내는 올라오기를 포기한 지 오래다.  

조금 늦어서인지 바위를 올라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하늘은 찌뿌듯하다. 바람도 심하다. 만약에 비까지 내린다면.... 아래서 내려오라는 아내의 손짓을 핑계 삼아 정상까지 올라가기를 포기한다. 조금 아쉽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

정상까지 올라가야만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세상 살면서 꼭 성공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하며 나만의 삶을 즐기면 된다. 자동차로 돌아와 사과 하나를 더 꺼내 먹는다. 맛이 좋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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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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