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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자신이 쓴 글을 읽는 기분은 어떨까?

10년 전 혹은 20년 전 혹은 30년 전에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본 경험이 있는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어도 오래 전 아무렇게나 끄적거렸던 낙서나 일기를 대면한 적이 있는 사람은 그 느낌을 알 것이다. 생각이 난 김에 책꽂이에서 15~17년 전 필자가 군대에서 썼던 빛 바래고 뜯긴 일기장 몇 장을 찾아 읽어본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는 기분이 야릇하다. 훈련병 시절 편지를 받아든 동기생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글도 보이고, 군대라는 조직과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에 대해 어설프게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오래된 일기를 읽으며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어떤 대목에선 기특한 생각을  했던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작가는 과거 자신의 글을 마주하곤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작가 황현산은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자신이 30여년 동안 썼던 칼럼들을 엮어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를 냈다. 저자가 그 옛날의 칼럼들을 마주한 소회를 쓴 것을 보면 글을 전문으로 쓰는 작가나 필자와 같은 범인이나 글을 통해 과거의 자신과 대면한다는 점에선 비슷한 듯 하다.

"어조와 문체에 크게 변함이 없고, 이제나저제나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내가 보기에도 신기하다. 발전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동안 포기할 수 없는 전망 하나와 줄곧 드잡이를 해온 것 같기도 하다"(4쪽)

밤이 선생이다 표지
 밤이 선생이다 표지
ⓒ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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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이 꿈꿔왔던 세상과 내가 살아가는 세상

과거의 글에서 이전의 나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책으로 엮인 수십 년 전 이 칼럼들은 마치 타임머신처럼 우리를 과거로 데려다 준다. 과거에 우리는 어떤 문제 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황현산이라는 작가의 눈을 통해 바라볼 수 있다. 

또한 과거부터 지금까지 황현산이라는 작가가 포기하지 못하고 바라왔던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에 우리가 얼마나 근접해 왔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눈을 지그시 감고 황현산 작가가 봤던 과거의 우리 사회 문제들과 그가 바라는 세상, 그리고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비교해 본다. 일단 황현산 작가가 그렸던 세상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깊이 동감이 된다.

하지만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커 보이기 때문일까? 작가가 말한 세상은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대한민국은 비극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여전히 우리는 수 많은 비극을 겪고 있지만 그것이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기에 다행으로 여기며 위장된 평화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비극은 그 다음에 올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다른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련된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번들거리고 말쑥한 표정으로 치장"(진은영 시인, 용산 멜랑콜리아)될 때 올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삶이 될까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33쪽)

용산 참사 이후로도 우리 사회는 쌍용차 파업 진압, 제주 강정 마을 해군기지 건설, 세월호 참사, 밀양 행정대집행, 가장 최근의 사드배치 반대 성주 투쟁 등 계속해서 비극적인 사건들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참사의 당사자가 아닌 필자와 같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 문제들은 뉴스 화면 너머에서 벌어지는 멀리 있는 비극일 뿐이다. 참 안타깝다고 생각은 하지만 생업을 이어가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가면서 황현산이라는 작가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마치 자신의 문제인 것처럼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다양한 사회 문제에 자신의 일처럼 공감하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칼럼들을 읽어가며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황현산이라는 사람은 문학적 감수성을 유지해 왔던 사람이었다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칼럼에서 독자들이 진정성을 읽을 수 있고 삶의 태도를 바꿔가려는 의지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록하고 기억하며 공감해야 한다

우린 참 많은 역사적 사실을들을 잊고 살아간다. 또한 저자도 말했듯이 기억해야만 하는 사실들을 일부 세력들은 기억속에서 지우려 혹은 착취하려 하기도 한다. 요즘의 대한민국 사회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으로 가득하지만 그 고통이 국민들 다수에게 공감되거나 확장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같은 상황에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황현산 작가가 주목했던 '기억과 기록'에 더해 시대의 아픔을 지금 나의 아픔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갖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 어떤 사람에게 현재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겠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연쇄살인의 그 참혹함이, 유신시대의 압제가, 한국동란의 비극이, 식민지 시대의 몸부림이, 제 양심과 희망 때문에 고통당했던 모든 사람의 이력이, 모두 현재에 속한다.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의해 가름된다. (중략) 당신이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204-205쪽)

이 비극의 시대를 치유하며 역사적 퇴행을 중단시키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기록하며 기억해야 한다. 저자도 썼듯이 모욕적이며 비루한 삶 속에서 이렇게밖에 살 수 없다고 체념하던 것에서 벗어나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고 싶은 세계의 그림을 그려봐야 한다.

시, 소설 등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다가올 미래 세계를 그려왔던 것을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실현했던 경험처럼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음을 다시금 확신해야 한다. 이때 우리는 밤을 선생으로 맞이할 수 있다. 밤이 선생이다.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낭만주의 이후의 문학, 특히 시는 이 밤에 거의 모든 것을 걸었다. 시인들은 낮에 빚어진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해줄 수 있는 새로운 말이 "어둠의 입"을 통해 전달되리라 믿었으며, 신화의 오르페우스처럼 밤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걸어들어가 죽은 것들을 소생시키려 했다. 그렇다고 반드시 이성 그 자체를 불신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성을 빙자하여 말과 이론과 법을 독점하고 있는 사회와 제도의 횡포에 있다. 낮에 잃은 것을 밤에 찾기란 결국 그 횡포의 희생자들을 복권하는 일이며, "어둠의 입"이 해줄 수 있는 말이란 현실에서 통용되는 말의 권력을 넘어선 역사의 말이자 미래의 말이다.(220-221쪽)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난다(2013)


태그:#황현산, #밤이선생이다, #산문집,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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