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8.29 21:29최종 업데이트 17.06.07 11:26

덴마크 스톡홀름스게이브 숲유치원 아이들이 사과나무에 올라가 사과를 따먹으며 놀고 있다. ⓒ 김경년


아이들이 따거나 먹다버린 사과가 사과나무 밑에 흩어져 있다. ⓒ 김경년


[관련기사 : 백발 할아버지가 유치원 교사, 왈칵 눈물이 났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나무를 꼬마 아이들 서넛이 한꺼번에 기어올라간다. 꼭대기에서 사과 하나씩을 따서 입에 넣더니, 한 입 베어물고는 이내 바닥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또 하나를 딴다.


"저런, 녀석들 봐라. 금방 딴 걸 아깝게 그냥 버리네..."

지난 15일 오전 덴마크 코펜하겐 북부도시 링비(Ringby)의 한 유치원. 한국에서 온 어른들은 시종일관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들은 오마이뉴스가 '행복지수 1위국가' 덴마크의 행복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띄운 '꿈틀비행기' 6호에 탑승한 30여명의 견학단이다. 6호기의 콘셉트는 '교육'. 지난 일주일간 덴마크의 초중등학교, 고등학교, 에프터스콜레(인생학교) 등을 차례로 둘러본 견학단은 이날 마지막으로 '숲유치원'을 방문했다.

숲유치원이라고 해서 깊은 산속이나 숲속에 자리한 유치원으로 생각했는데, 코펜하겐 시내에서 버스로 불과 30여분 만에 도착했다.

유치원 건물을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견학단의 눈에 확 들어온 것은 넓은 잔디밭과 정원,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이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사과나무와 놀이터, 오두막집이 보였다.

유치원측에 따르면, 이 유치원은 2개의 다른 유치원과 부지를 공유하고 있지만 7000㎡의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다.

첫눈에 아이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건물 앞 흙바닥에서 신발도 신지 않은 꼬마아이가 친구들과 진흙놀이를 하고 있는데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30여분 간 이어진 선생님의 유치원 설명 막바지에 어디선지 나타난 두 세 명의 여자아이들이 선생님의 다리를 붙들고 잡아끌었다. 마치 이제 그만 하고 우리랑 놀러가자는 듯. 이제부터 밖에서 '노는' 시간인가보다.

쏟아져나온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나무 밑에서, 오두막에서, 사과나무에서, 혹은 친구들하고 혹은 선생님과 함께 놀거나 뛰며 시간을 보냈다. 막대기를 들고 한국에서 온 견학단 어른들에게 칼싸움을 신청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마당에 아무렇게나 풀어놓은 닭을 열심히 뒤쫓는 아이들도 보였다.

건물 한편에 있는 작업장에선 선생님과 함께 사과를 직접 갈아 주스 만드는 일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당에서 아이들이 한 입만 베고 던져버리는 사과는 그냥 버리는 게 아니고 이곳으로 모아졌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지만 낑낑대며 스스로 손잡이를 돌려 사과를 짜는 아이들의 표정에 싫어하는 표정은 전혀 없다.

아이들이 열심히 놀고 일(?)하는 모습을 넋을 놓고 지켜보던 한 유치원 교사는 "아이 1명당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여기는 우리의 10배는 되는 것 같다"며 부러워했다.

덴마크 스톡홀름스게이브 숲유치원 아이들이 마당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다. ⓒ 김경년


덴마크 스톡홀름스게이브 숲유치원 아이들이 정원에서 닭을 쫓으며 놀고 있다. ⓒ 김경년


"아이들을 교실보다는 밖에서 배우게 하는 게 더 좋은 교육"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는 이 유치원의 이름은 '스톡홀름스게이브(Stockholmsgave)'. 우리 말로는 '스톡홀름의 선물'이란 뜻이다. 과거 2차대전이 끝난 후 집이 없는 코펜하겐 아이들을 위해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시가 이곳에 보호시설을 지어준 데 따른 것이다. 이후 잠시 문을 닫았다가 지금과 같은 숲유치원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은 25년 전부터다.

이 유치원의 '리더' 격이라는 쇄른 에밀 마크프랜드(Søren Emil Markeprand) 교사는 "우리 유치원은 주변이 정원으로 되어있어 아이들이 주로 건물 내부보다는 야외에서 보낸다"며 "덴마크는 전체 유치원의 10% 정도가 여기와 같은 숲유치원인데, 숲유치원이 아니라고 해도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야외에서 보내게 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마 세상 모든 유치원들은 아이들에게 언어, 문화 등을 교육하려고 애쓰겠지만 우리는 자연과 함께 함으로써 다른 교육들이 향상될 수 있으며 아이들이 교실 안보다 밖에서 배우고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읽기나 숫자 세는 것에 대한 커리큘럼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교실 벽에 알파벳이나 숫자를 붙여놓지만 따로 가르치지 않고 스스로 익힐 때까지 기다릴 뿐이란다.

이 유치원에서 17년을 근무했다는 마크프랜드 교사는 '소셜스킬(사회성 기술) 향상'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유치원은 읽고 쓰는 능력이 아니라 인생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 부분에 대한 결과가 아니라 전체 분위기와 성장 모습이 더 중요하다"며 "유치원 교육의 핵심은 아이들이 서로 듣고, 이야기하고, 협동·보호하면서 민주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실에서 소음을 일으키면서 수업받는 것보다 친한 친구들과 바깥 너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때 더 좋은 소셜 스킬을 배울 수 있으며, 아이들이 행복할 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크프랜드 교사는 '아이들을 이렇게 풀어놓으면 다칠 위험이 있지 않냐'는 우려에는 "우리는 칼이나 망치를 도구로 하는 수업도 하지만 내가 온 지난 16년간 한 번도 큰 사고가 없었다"며 "손을 베는 정도의 부상은 있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도 배우는게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숲속에서 보내는 것이 집중력을 높이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많다"며 "야외로 나와서 노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의 다양한 경험을 위해 성별, 나이 별로 다양한 교사가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유치원에는 자칫 여자 교사가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유치원은 남자 교사의 비율도 높으며 젊은 교사, 나이든 교사가 골고루 있다고 한다. 실제 사과 따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는 65세의 할아버지 교사였다.

덴마크 스톡홀름스게이브 숲유치원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놀고 있다. ⓒ 김경년


마당에서 야외활동을 하고 있는 덴마크 스톡홀름스게이브 숲유치원 아이들. ⓒ 김경년


한 반에 아이가 23-24명, 교사가 3-4명

그럼 이 유치원 원생들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될까.

스톡홀름스게이브 숲유치원의 원생은 모두 70명이며 23-24명씩을 한 반으로 하는데, 한 반에는 3-4명의 교사가 배정된다고 한다.

아이들은 모두 코펜하겐 시내에 거주하는데 시내의 한 장소(컬렉션 플레이스)에 오전 8시 30분까지 모이면, 유치원 버스가 가서 데려오는 식이다.

9시에 도착하면 옷을 갈아입고 인원체크를 한 뒤, 15-30분간 동그랗게 모여 오늘의 경험과 느낌에 대해 얘기하고 오늘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한다.

마크프랜드 교사는 "의사표현 기법을 키워주고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게 하려고 오늘 뭘 할 건지 스스로 깨닫게 하려 한다"며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오전 11시 30분에는 담당자가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들 가운데 '도우미 3명을 뽑아 자원봉사 하게 하고 각자 자기 접시를 가지고 나와서 식사준비를 한다.

식사가 끝나면 3살 미만은 낮잠을 자고, 나머지는 다시 밖에 나가서 야외활동을 한다. 2시-2시15분에는 간식을 먹고 3시가 되면 옷을 갈아입고 짐 싸서 집에 갈 버스를 탄다. 부모는 컬렉션 플레이스에서 아이들을 픽업한다.

마크프랜드 교사는 "부지를 같이 쓰는 옆 유치원은 정원이 20명 부족한데 우리 유치원은 현재 대기인력이 50명이나 기다리고 있는 걸 보면 환경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뭘 배우는지도 중요하다는 얘기"라며 "난 우리 유치원이 세계 최고의 유치원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우리는 학부모에게 돈 받아 학습지 회사에 갖다바치고 있다"

남양주에서 왔다는 꿈틀비행기 견학단의 한 유치원 선생님은 "우리는 아이 80명이 부지 300평을 쓰는데 여긴 70명이 2000평을 쓴다는 것 아니냐"며 혀를 찬 뒤 "우리도 이런 시설을 갖추려면 그린벨트를 푸는 등 정부가 전향적인 조치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덴마크도 유치원은 의무교육이 아니라 부모에게 돈을 받는다더라"며 "부모에게 받은 돈을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한데, 덴마크는 아이들을 위해 쓰는 반면 우리는 그 돈을 학습지 회사에 갖다 바치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

또 다른 유치원 교사는 "우리도 아침에 오면 둥글게 모이게 하고 하루 할 일을 선택하게 하지만 짜여진 각본일 뿐 실제는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이조차도 교과화됐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믿음을 갖고 기다리고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이들을 맘껏 놀게 해야겠다"고 말했다.

덴마크 스톡홀름스게이브 숲유치원 아이들이 사과주스를 만들기 위해 사과를 틀에 넣고 으깨고 있다. ⓒ 김경년


덴마크 스톡홀름스게이브 숲유치원을 방문한 꿈틀비행기 6호기 견학단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가운데 약간 오른쪽 키 큰 이가 마크프랜드 교사. ⓒ 김경년


숲유치원이란?
아이들을 도심의 건물숲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지낼 수 있게 하자는 개념의 숲유치원이 처음 도입된 것은 덴마크로 알려져있다. 덴마크의 엘라 플라타우 부인이 1954년 그녀의 자녀들을 데리고 매일 집 근처 숲으로 가서 놀이활동을 했다.

마침 유치원에 자리를 얻지 못한 이웃 주민들이 그들의 자녀들도 함께 숲으로 데리고 가서 교육해보니 숲속을 걷는 동안 아이들의 정서가 좋아지고 강해지는 것을 경험해 주변 이웃들과 협심해서 숲유치원이 탄생하게 됐다고 한다.

지금은 덴마크는 물론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독일, 스위스 등 유럽 지역과 미국과 일본에서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숲유치원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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