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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사라진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기술의 발달은 우리 모두를 일자리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오래 전 끝났고, 100세시대 누구나 2~3번의 일(業)을 해야 생존한다. 국가도 사회도 답해줄 수 없는 문제, 결국 개인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내 일은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다. 직장을 다니면서, 또는 홀로서기를 통해 '1인기업'을 운영해온 이들에게서 답을 찾고자 한다. '직장 다닌다고 직업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한 '1인기업가'들의 경험담을 통해 해법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블로그 '삼채총각의 건강한 먹거리'를 통해 '삼채총각'이란 별명으로 알려진 20대 청년농부 김선영씨. 고교 졸업후 호주의 전문대학격인  SBIT TAFE에서 관광과 호텔경영을 전공했다.
 블로그 '삼채총각의 건강한 먹거리'를 통해 '삼채총각'이란 별명으로 알려진 20대 청년농부 김선영씨. 고교 졸업후 호주의 전문대학격인 SBIT TAFE에서 관광과 호텔경영을 전공했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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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유학과 창업, 두 가지 꿈이 있었다. 고교 졸업, 군 제대 후 밤낮없이 투잡을 뛰며 호주행 경비를 모았고 완강하게 반대하던 부모님을 '호주에서 굶어 죽더라도 가겠다, 도움 안 받고 유학생활 하겠다'며 설득한 끝에 스물두 살에 호주 유학길에 올랐다. 지금은 '삼채총각'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청년농부 김선영(28)씨 이야기다.

2010년 호주의 전문대학격인 SBIT TAFE(Southbank Institute of Technology Technical And Further Education)에서 관광과 호텔경영을 전공하면서도 김씨는 여전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새벽에는 길거리 청소, 낮엔 레스토랑 서빙, 주말엔 인력거운전까지 이력서를 채워나가다 보니 제법 경력이 쌓였고 영어실력이 늘면서 5성급호텔의 VIP만을 위한 다이닝 레스토랑 서빙까지 하게 됐다.

"호주 유학이 끝나면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베이징으로 갈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당시 제가 수업을 듣던 교수님의 강의 중 미래 가장 유망한 분야는 농업이 될 것이라는 내용에 확 꽂혔어요. 마침 한국의 지인으로부터 미얀마가 원산지인 '삼채'라는 채소를 소개받은 이후 하루라도 빨리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 더 이상 호주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2012년 12월 귀국한 김씨는 자신의 전공인 관광과 농업을 접목시킨 사업을 해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망설임 없이 실행에 옮겼다. 호주에서 모아뒀던 유학자금 3000만 원은 고스란히 창업 밑천이 됐다. 사업계획서를 쓰면서 모르는 것은 배우고 열심히 발로 뛴 덕분일까 2013년 충북 진천군 후계농업경영인(옛 영농후계자)로 선정되면서 스물네 살 청년농사꾼의 앞길에 청신호가 켜졌다. 2억 원의 정부지원 자금으로 충북 진천에 땅을 매입하고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하루 종일 '진짜 삽질'을 하는 농부가 됐다.

"우리나라 농업은 매스컴에 취약합니다. 어떤 특용작물이 몸에 좋다는 기사가 매스컴에 나오면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너도나도 그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하죠. 삼채도 2013년 초엔 킬로그램당 5만~6만 원선으로 고가에 팔리며 인기를 누렸지만 그해 말 부정적인 기사가 난 이후 주문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어요. 이후 정정보도가 나오긴 했지만 소비자들의 인식은 좀체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특용작물은 반짝 인기가 사라지면 판로에 문제가 생긴다. 인기를 믿고 대량생산에 나섰던 농업인들은 많은 양의 작물을 썩혀서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삼채 역시 2013년에 반짝 유행을 탔지만 지금은 공급자의 80%가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농업을 만만하게 보고 쉽게 진입하지만 판로에 대한 고민 없이 시작한다면 10명 중 9명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씨의 지론이다. 소비자만 바라보고 농사를 짓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청년농부 삼채총각의 도전

충북 진천군에 위치한 삼채농장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김선영씨.
 충북 진천군에 위치한 삼채농장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김선영씨.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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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경영자 마인드를 갖고 전략적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안정적인 공급처를 찾기 위해 기업 영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판로 개척을 위해 직접 발로 뛰어다녔습니다. 청담동 레스토랑, 샤브샤브 체인점 등과 직거래 계약을 맺기도 하고 함께 메뉴를 개발해보자는 프로젝트도 제안 받아 조만간 제품 출시도 앞두고 있습니다."

젊은 농업인으로서 김씨의 강점은 빠른 피드백으로 바이어들과 원활하게 소통한다는 점과 더 싱싱하고 좋은 품질의 상품을 직거래를 통해 납품한다는 점이다. 최근엔 제주, 전남, 경북 등 다른 지역 삼채농가의 판로 해결에도 팔 걷고 나섰다. 협약을 맺어 그들의 수확물을 공급 받아 김씨가 뚫은 판로를 통해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올초부터 삼중 수막하우스를 설치하고 양액재배를 시작했습니다. 이 방법이 성공하면 사계절 내내 삼채 생산이 가능해지죠. 또 최근엔 농업펀드를 운영하는 VC(벤처캐피털)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펀딩을 통해 공장을 지어 삼채장아찌를 직접 생산할 계획입니다. 요리연구가들과 함께 최고의 레시피를 개발해 장아찌를 생산하면 대기업 백화점에 납품하거나 중국 수출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김씨는 현재 삼채나라 진천삼채 영농조합법인과 ㈜네추럴니즈 농업회사법인 두 개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김씨는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은 물론 마케팅, 영업까지 전담하지만 1만평의 농장을 관리하기 위해 친동생과 5~6명의 인부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김씨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판로개척이다. 적극적인 판로개척 덕에 4년차에 접어든 김씨의 수입은 날로 성장해 올 매출 15억~20억을 바라보고 있다.

"3년 후 매출 100억을 달성하는 것이 단기 목표입니다. 3개월 전 대기업 한식뷔페와 새로 계약을 맺었고 기존 거래처인 샤브샤브프랜차이즈와도 거래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4년 전의 거래처가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으니 매일 새로운 판로를 뚫어야 하죠.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췄다고 볼 수 있는 매출 100억대까지는 계속 부딪히고 발로 뛰어다닐 생각입니다."

1인기업 청년농부 김씨에게 농업은 단순한 1차 산업이 아니다. 농사를 짓다보니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떠올라 2차 산업에 뛰어들게 됐고, 2차 산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3차 산업인 서비스업에 관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농업계의 스타벅스를 꿈꾸다

삼채농사를 짓는 1인농업인 4년차에 접어든 김씨는 최근 자신의 모든 경험과 비전을 담은 책 <삼채총각 이야기>를 출간했다.
 삼채농사를 짓는 1인농업인 4년차에 접어든 김씨는 최근 자신의 모든 경험과 비전을 담은 책 <삼채총각 이야기>를 출간했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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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에 문화를 입힐 방법에 관심이 많은 김씨는 '농업계의 스타벅스'를 꿈꾸고 있다. 도시인들에게 불편하고 부정적인 느낌의 농촌을 휴식과 치유의 공간으로 어필할 수 있는 사업도 구상중이다. 삼채 삼계탕, 삼채 미니샐러드바 등 농업과 관광 또는 외식업을 접목시킨 사업도 같은 맥락이다.

월 1~2회 청년 또는 중장년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하고 있는 김씨는 최근 자신의 모든 경험과 비전을 담은 책 <삼채총각 이야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또한 연내 청년농부 100명을 모으는 '농축산디자인하우스포럼'을 추진 중이다. 포럼을 통해 젊은 층의 시선으로 농촌을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고, 상품 디자인에 젊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입혀 부가가치를 높이면 기존 농업인들의 판로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다.

1인기업으로서, 또는 청년창업가로서 김씨는 지금도 매순간 장애물을 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장애물을 하나하나 넘으면서 얻는 성취감과 행복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고되고 힘들지만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 선택할 만큼 만족도는 높다.

"일을 진행할 때 뭐 하나 쉽게 풀린 적이 없었어요. 한 곳에 납품을 성사시키기 위해 10번 리젝트 당한 적도 있었죠. 1인기업은 힘이 없고 경험이 없으니까 하나씩 부딪히고 깨지면서 나아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매순간 다가오는 장애물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매일 생각하는데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될 때가 제일 힘들어요. 그럴 땐 이불 속에서 고민만 하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움직이다 보면 답이 나왔습니다. 비즈니스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또래 청년들에게 김씨는 먼저 '어떻게 살아갈지' 뜻을 세울 것을 권했다. 뜻을 세웠다면 망설이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보라고 말했다. 실패하더라도 일단 행동으로 옮겨보는 것은 20대만의 특권이자 좋은 경험이 된다는 것이다. 수많은 창업 강연장에서 김씨는 매일 창업을 생각만 하다 50살이 된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다고 한다. '30년 전에 창업을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들은 결국 지금까지 실행에 옮기지 못한 사람들이다.

"저처럼 무조건 대학을 가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학에 가서도 아무런 뜻도 없이 대기업, 공기업에 취업하겠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뭐라 해도 저는 제가 세운 뜻이 있기 때문에 농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좋은 조언은 귀담아 듣지만 최종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죠."

30대 이후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는 김씨는 '왜 성공하고 싶은가'에 대해서도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호주에서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두개씩 할 때는 24시간을 다 소진했습니다. 그때는 노동을 해야 하니까 시간의 자유가 없었어요. 사업이 성공하거나 돈을 벌면 좋은 집 좋은 차보다 시간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유를 얻으면 다른 사람들과 에너지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행복의 원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대는 그런 자유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앞으로 2년 남았는데 20대라는 한 번밖에 없는 시간 속에서 독하고 치열하게 생존해나갈 생각입니다."

30대이후 시간의 자유를 얻게 위해 성공하고 싶다는 김씨는 한 번 뿐인 20대 시절엔 독하고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30대이후 시간의 자유를 얻게 위해 성공하고 싶다는 김씨는 한 번 뿐인 20대 시절엔 독하고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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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1인기업, #삼채총각, #청년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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