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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와 시간을 기록하며 스스로 공간을 만들어 지켜가는 곳, (주)월간토마토(대표 이용원).

2007년 5월 창간해 올해로 9년째, 매월 빠지지 않고 발간한 잡지가 현재 112호에 이르며, 카페 '이데'와 '딴데'를 운영하는 법인체다.

'이데'는 '생각'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라고 한다. 카페는 대전 대흥동 대전평생학습관 옆, 1980년대 건축된 건물 1층에 자리하고 있다. 타일외벽 등 건축당시 유행이던 외관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리모델링했다.

지난해 리모델링 공사 전(왼쪽) 이데 외관과 이후 모습.
 지난해 리모델링 공사 전(왼쪽) 이데 외관과 이후 모습.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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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동의 어제를 기록하고 오늘을 이어가고 있는 ‘이데’의 내부모습. 30년 넘은 나이를 그대로 드러낸 구조물과 편안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꾸준히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대흥동의 어제를 기록하고 오늘을 이어가고 있는 ‘이데’의 내부모습. 30년 넘은 나이를 그대로 드러낸 구조물과 편안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꾸준히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 <무한정보>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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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6년차인 조지영(토마토 문화사업팀) 팀장은 "2층 천장에 비가 새고, 외벽 타일도 너무 추레해져 공사를 했는데, 단골고객들 중에 '너무 세련돼졌다'고 서운해 하시는 분도 있다"며 "그만큼 공간의 역사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아니냐"고 전한다.

3년 전 대흥동 일대에 다가구주택붐이 일면서 존립을 위협한 적도 있다. 건물주가 이 곳도 원룸으로 리모델링하려 했던 것. 다행히 토마토 주주 한사람이 건물을 매입해 싼 월세로 임대를 해준 덕분에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방문고객은 하루 평균 70~80명이다. 번화가에서 약간 비껴난 골목에 위치한 점을 감안하면 적은 수가 아니다. 특히 상업성에 물들지 않은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감안하면 단순한 수치 이상의 '희망'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2층 '딴데'는 문화공간이다. 공연장도 되고, 토론장도 되고, 모임공간도 되고, 전시장도 되고, 학교도 되고, 놀이터도 되고, 때론 조용히 책을 읽는 도서관이 되기도 한다.

"옛날 어른들이 '딴데 가서 놀아라'고 하셨잖아요. '딴데'서 억눌림 없이 놀고 싶은 사람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예요."

‘딴데’가서 놀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2층 ‘딴데’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진지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다.
 ‘딴데’가서 놀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2층 ‘딴데’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진지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다.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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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영 팀장이 ‘우리동네책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지영 팀장이 ‘우리동네책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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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데'의 벽면은 책들로 채워져 있다. 북카페를 지향해온 '이데'가 갖고 있던 책과 '딴데'의 효용성을 인정하고 활성화를 바라는 이들이 기부한 책들이다. 다양한 장르의 단행본은 기본이고, 폐간된 영화전문잡지의 모든 발간본, 원서, 전문서적들도 눈에 띈다. 누군가의 독서력이 공동의 공간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독서력이 되는 '우리동네책장'이다.

간이칸막이 너머에는 짧은 새 '유물'이 돼버린 비디오테이프들이 벽면책꽂이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 그 또한 기증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는 꼭 무엇이어야 하는 곳이 아닌, 모두의 놀이터'라는 메시지가 공간 구석구석 뿜어져 나오는 듯 하다. 거대한 자본의 흐름 속에 장소성을 지켜가는 힘은 소소한 일상 속 소통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도.

2층높이 이데 옥상에 서면 발전하는 도심 속 시간과 공간을 지키는 이들의 현재마음이 느껴진다. 간혹 공연장소로도 쓰인다는 이곳 벽면에 (주)월간 토마토 직원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2층높이 이데 옥상에 서면 발전하는 도심 속 시간과 공간을 지키는 이들의 현재마음이 느껴진다. 간혹 공연장소로도 쓰인다는 이곳 벽면에 (주)월간 토마토 직원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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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옥상에서 바라보는 대흥동은 땅에서의 그것과 또 다른 세상이다. 이웃한 건물의 옆얼굴, 이데보다 더 낮은 주택의 지붕, 대흥동성당의 십자가, 누군가 옥상정원에 심은 녹색식물, 땅에서 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하늘, 멀리 고층빌딩들마저 여유로워 보이는.

간혹 공연장이 되기도 한다는 이 곳에 서면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을 관조하며 자신의 설 자리, 놓치지 말아야할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 것 같다. 옥상 난간에 그려진 토마토 일꾼들의 얼굴벽화는 그런 다짐의 의미로 읽힌다.

이들 공간의 모체인 <월간 토마토>는 지난 1월 첫 단행본을 펴냈다. 이용원 대표 외 기자들이 취재해 쓴 기사를 묶은 책 <우리가 아는 시간의 풍경>이다. 그 중 '김삿갓다방' 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역사라는 게 말이야, 문화라는 게 다른 게 아니야. 지나가는 사람이 '아 여기 아직도 있네?'하면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으면 그게 역사고 문화인 거거든. 여기는 그런 공간이야. 대전에서 이런 공간은 역사로 보존해 줘야 돼."

6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김삿갓다방에서 만난 70대 노인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아마도 '이데'와 '딴데'가 되고자 하는 공간도 그런 곳이려니.



"역사적 경관요소 활용해야"

대흥동지킴이 유병구 건축가



유병구 대표. 뒤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1988년 준공이래 28년째 대흥동을 지키고 있는 (주)씨엔유건축사사무소 사옥이다.
 유병구 대표. 뒤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1988년 준공이래 28년째 대흥동을 지키고 있는 (주)씨엔유건축사사무소 사옥이다.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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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구 (주)씨엔유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대흥동 이야기를 하려면 '이데'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휴일임에도 취재의뢰를 마다하지 않고 인터뷰에 응한 유 대표는 머리 속부터 흘러내린 땀줄기가 셔츠를 흠뻑 적시고,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에 얼굴이 벌겋게 익어가는 것도 아랑곳 않고 더 많은 곳들을 보여주려 애썼다.

'이데'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한여름 오후 내내 대흥동과 선화동 일대 거리를 누빈 끝에 다시 '이데'에서 마무리됐다.

■ '대흥동립만세'로 상징되는 대흥동 살리기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대흥동에서 열리는 축제 '대흥동립만세' 2회때부터 합류했으니까 올해로 8년째다. 나는 대흥동에서 나고 자랐다. 내가 소속돼 있는 (주)씨엔유건축사사무소 사옥도 대흥동에 있다. 내 모태였고, 현재 활동근거도 대흥동이니 당연히 애정이 많다. 대흥동의 쇠락과 재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며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 대흥동살리기가 전국적 주목을 받았는데, 최근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대전 원도심 재생의 상징장소이며 명소였던 산호여인숙이 지난 봄 문을 닫아 다시 썰렁해진 모습(왼쪽). 오른쪽 사진은 2년 전 도심속 게스트하우스로 유명세를 떨쳤던 당시 모습.
 대전 원도심 재생의 상징장소이며 명소였던 산호여인숙이 지난 봄 문을 닫아 다시 썰렁해진 모습(왼쪽). 오른쪽 사진은 2년 전 도심속 게스트하우스로 유명세를 떨쳤던 당시 모습.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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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동은 현재 극심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시 환경이 변하면서 임대비용 등이 상승해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대흥동에 새 기운을 불어넣은 예술가들이 밀려나는 것도 문제지만, 기존건물을 밀어내고 다가구주택을 신축하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경관이 사라지는 게 더 심각하다. '다가구주택붐'이라 할 정도다. 많은 대전사람들이 기억하는 프랑스문화원이 헐린 곳에도 원룸이 지어지고 있다. 인구증가와 경제활성화라는 논리, 그리고 사유재산이라는 한계 때문에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다. 도시재생의 상징이었던 산호여인숙도 올초에 문을 닫았다"

■ 애써 되살린 공간들이 다시 무너질 때 느끼는 상실감은 더 클 것 같다.

대흥동 재생의 상징 중 산호다방(왼쪽)과 비돌(오른쪽)의 모습.
 대흥동 재생의 상징 중 산호다방(왼쪽)과 비돌(오른쪽)의 모습.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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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일상적 관심이다. 평소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다가 철거한다니까 갑자기 '소중하다'며 반대한다면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겠나. 대흥동을 지킨 초창기 업체들 가운데 문 닫은 곳들이 많지만, 최근에 재생건축을 기반으로 문을 여는 곳도 늘고 있어 다행이다. '비돌' '산호다방''이데' 같이 초창기 공간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도 힘이다. 대흥동은 전부터 10곳이 넘는 갤러리와 소극장, 작은 책방 같은 문화공간이 살아있는 곳이다. 비관하지 않는다"

■ 기획취재의 주제가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이다. 건축가로서 공간의 보존에 대한 생각은.

"내가 1991년에 처음으로 파리에 갔었고, 올해 두 번째 방문을 했는데 25년 전 내가 앉았던 벤치, 내가 봤던 건물들이 남아있는 것을 보는 순간 파리는 내게 특별한 도시가 됐다. 흔적을 남기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꼭 고향민이 아니어도 기억 속 공간이 유지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차다. 누군가의 대전, 누군가의 예산이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하는. 유럽의 경우 있는 것을 활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대전만 봐도 둔산동을 다 밀고 신도시로 개발해 버리지 않았나. '땅덩어리가 좁아서'라고 이해하기에는 대구 같은 도시에 비해 너무 많이 철거해 버렸다. 지방색이 없고 외지인이 많아 애정이 적은 것도 원인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 공간보존의 기준과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면.

"요즘 도시재생이 대세인데, 무엇보다 '역사적 경관요소 활용'에 집중해야 한다. 스페인의 빌바오 같은 사례가 주는 교훈을 살펴보면 좋겠다. 그렇다고 오래된 건물을 무조건 다 보존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선택의 어려움이 있다. 어떤 관점을 가질 것인지, 조정자의 역할을 할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공간은 보존만이 능사가 아니다. 활용이 중요하다. 건축물은 박물관이 아니다. 박제화 시키지 말고 생명력 있는 활용방안을 찾아야 오래갈 수 있다. 주민이 주체가 되어야 하고, 그런 경험을 해보는 게 중요하다. 관이 주도하게 되면 예산집행기간 맞추는 게 우선되기 때문이다. 또 공간이 지속성을 가지려면 임대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유럽처럼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고 장기계약을 할 수 있도록 주민과 지자체가 협약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대흥동, #이데, #딴데, #월간토마토,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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