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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이래로 구독해온 <한겨레신문>을 보던 5월 어느 날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바이칼에 가다!'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열차로 시베리아를 횡단해서 한민족의 모태 바이칼을 간다니 얼마나 환상적인 코스인가. 집사람이 해외여행을 추천해도 웬만해서는 동의하지 않던 내가 나서서 코스를 추천하니, 여느 때처럼 손녀랑 세 사람이 함께하는 여행에 쉽게 합의하였다. 게다가 이 코스를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주선해서 BK투어에서 진행하니 얼른 봐도 믿음이 간다. 한겨레 독자에겐 할인 혜택도 주고, 열차여행 중에 인문사회학 특강교실도 운영한다니 금상첨화다.

연일 폭염으로 시달리던 차에 광복절 연휴를 보내고 8월 16일 새벽 3시 반경에 집을 나섰다. 아들이 서울 출근길에 우리를 공항에 내려주고 갔다. 함께 가지 못해 아쉬웠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일행은 모두 70여 명으로 대형 그룹이었다. 주최 측은 신청자를 다 받을 수 없어 다음 기회로 대기 명단을 확보해 둔 상태란다. 오전 10시 경에 대한항공편으로 출국하여 동해로 빠져 바로 가지 않고 서해 쪽으로 중국 장춘을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니 비행시간이 두 시간 이상이나 소요되었다. 분단의 엄혹한 현실이 불편한 항공경로에 그대로 드러났다. 한반도 분단 이래 우리는 대지 위로 뚫린 역사의 길을 잃어버리고 바다와 하늘로 둘러서 다녀야 했다.

72시간 동안 달린 4000km... 전체 노선 완주엔 6박 7일 소요

손녀(김지현, 초등 5학년)가 편집한 블라디보스톡 여행일지. 위로부터 신한촌 기념비, 영원의 불꽃, 잠수함박물관 사진이 편집되어 있음.
 손녀(김지현, 초등 5학년)가 편집한 블라디보스톡 여행일지. 위로부터 신한촌 기념비, 영원의 불꽃, 잠수함박물관 사진이 편집되어 있음.
ⓒ 김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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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마치고 대형버스 두 대로 분승하여 첫 관광일정에 나섰다. 먼저 블라디보스톡 역주변을 둘러보면서 시배리아 종단철도 9288Km의 출발지점을 확인하였다. 전체 노선을 열차로 완주하려면 6박 7일이 소요되지만, 우리는 그 절반에 해당되는 약 4000킬로를 72시간 동안 승차하게 된다.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 동해 연안의 최대 항구도시로서 경제특구이자 군항이기도 하다. 북극해와 태평양을 잇는 북빙양 항로의 종점이자 시베리아철도의 동쪽 끝(종점)이기도 하다. 블라디보스톡 시가는 해안을 따라 구릉위로 펼쳐져 있다. 시는 연해지방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며, 극동과학센터와 국립극동대학이 있다. 국립극동대학에는 해외 최초의 한국학 단과대학인 한국학대학이 있다. 1995년에 설립된 한국학대학은 5년제 과정으로 한국어학과, 한국역사학과, 한국경제학과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일제치하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지로 애국지사들의 발자취가 생생한 곳이다. 1860년대부터 연해주에 한인들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블라디보스톡에 '신한촌'(新韓村)이 형성되었고, 이곳은 일제치하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이곳에 살던 한인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신한촌은 그 흔적을 잃었다. 다행히 1999년에 한민족연구소가 3.1독립운동 80주년을 맞아 이곳을 기리기 위해 '신한촌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기념비에는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며,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정신"이라는 비문이 적혀 있다. 우리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광복은 우리에게 '해방'이 아니라 '분단'의 비극을 안겨 주었다. 일행은 추모비 앞에서 묵념을 올렸다.

블라디보스톡 시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독수리 언덕을 올라 여유있게 시가와 바다연안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하늘이 맑고 공기가 쾌적했다. 하지만 시가지에는 서구적 현대화와 더불어 빈부격차가 뚜렷하게 드러났고,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소음과 공해가 만만찮았다. 독수리 언덕에서 내려와 2차 대전 때 활약한 대형 잠수함과 전사군인들을 추모하는 '영원의 불꽃'을 둘러보았다. 2차 대전 때 전사한 군인들만해도 전 세계적으로 2500만에 이르는데, 그들 중 단일국가로는 구소련의 전사자가 가장 많았다. 희생이 컸던 만큼 그 대가를 얻어내는 데도 러시아는 소홀하지 않았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소련 남하정책에 대한 제재방편의 하나로 느닷없이 패전국 일본은 그냥 둔 채로(독일은 동서로 분할 당했지만), 한반도의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그 허리를 잘랐다. 그로부터 한반도의 분단은 70년을 넘기고 있으나,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 분단의 비극을 딛고 오늘 우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길에 오른 게다. 지구도 돌고 역사도 음양이 돌고 돈다.

저녁 식사 후 시간 여유가 있어 참가자 모두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 수가 많은 만큼 그 구성분포도 퍽 다양했다. 80대의 노부부에서부터 초등 5학년 학생에 이르기까지 한겨레를 매개로 함께 여행을 하게 된 게다. 소개가 끝난 후에 단국대 특수교육과 1회 졸업생으로 금년에 정년퇴임한 일행 중 한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밤 11경에 마침내 블라디보스톡 역에 대기하고 있는 횡단열차에 승차하였다. 4인용 침실에 여장을 풀어야 했는데, 제한된 공간에 짐을 정리하고 잠자리를 마련하려니 쉽지가 않았다. 더욱이나 우리 가족 일행 3인 외에 한 사람이 더 보태지니 서로가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를 때 서로를 배려하지 않으면 자칫 여행이 피곤해 진다.

최연혜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잊혀진 대륙의 길을 찾아서>(2013)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최첨단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차여행은 진정한 만남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아날로그적 코드다.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대륙을 여행한 사람은 결코 공간은 소멸될 수 없다는 것을, 빨리 빨리 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느림의 미학을 성찰하게 된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현대인에게 대륙 철도 여행은 '지구 위에 남아 있는 최후의 모험'이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모험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일생에 한 번 쯤은 반드시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몸을 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시베리아 철도 여행은 식사시간과 화장실 사용시간 외에는 좁은 침대칸에 있어야하니 따분함의 '모험'이다. 하지만 여유를 가지고 러시아 벌판 풍경을 감상하고 가끔 역에 내려 이국 풍경과 먹거리를 접하는 이색적인 여행경험을 즐길 수 있다. 하여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행은 익숙한 세상 속의 일상과의 단절이다. 인터넷은 고사하고 TV조차 없이 갑자기 맞닥뜨리게 되는 그 많은 시간을 혼자서 견뎌내야 한다.

"러시아는 광활하고, 황제는 멀리 있다."는 속담이 있다. 영토가 워낙 넓어 황제의 입김이 구석구석 미치기가 어렵다는 게다. 러시아 연방 면적은 구소련 영토의 76%를 승계했다. 이는 남한의 약 157배에 해당하는 면적이고, 미국과 중국 영토를 합한 것보다도 큰 면적이란다. 우랄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펼쳐진 '잠자는 미인' 시베리아 면적은 러시아 연방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이것은 미국과 유럽 대륙을 합친 크기와 맞먹는데, 인구는 약 1억 4천만 명, 그마저도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란다.

창 밖으론 바이칼 호수의 장엄한 풍경이...

1982년 여름 나는 워싱턴 DC의 Gallaudet 대학(농인 특성화대학)에서 객원연구교수 생활을 마치고 귀국길에 가족과 함께 자동차로 미국대륙을 2주간에 걸쳐 횡단한 경험이 있다. 그때는 젊었으니까 헌 중고차로 대륙횡단을 했지만, 지금은 열차에 실려 광활한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한다. 최연혜(2006)는 시베리아의 여름철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사람들은 시베리아 하면 으레 눈 덮인 설원과 극한의 추위를 떠올리지만, 백야가 있는 시베리아의 여름 풍경은 환상에 가깝다. 금빛‧은빛으로 하늘거리는 자작나무의 끝없는 행렬부터 지평선 끝에서 수백 가지 서로 다른 녹색 빛깔로 빛나는 타이가의 그림자, 어디를 봐도 흰색‧노랑‧보라 세 가지 색깔의 야생화가 오밀조밀 뒤덮인 넓은 초원을 지나다 보면 세상 걱정과 부산함이 모두 부질없게만 느껴진다. ...(중략) 그 넓은 땅에 비해 욕심 없이 자그마한 감자밭을 옆에 낀 인가들이 잊어버릴 만하면 나타나곤 한다.'

시베리아의 신목(神木)으로 일컬어지는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진다. 나는 열차에서 틈틈이 장회익 교수의 <물질, 생명, 인간-그 통합적 이해의 가능성>(2009)을 읽으면서, 그가 말하는 온생명 속의 낱생명으로 '나'라는 존재를 다시금 반추하게 된다. 열차여행 마지막 날에 맞춰 이 책을 완독했다.

열차여행 2일 째 저녁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고광헌(한림대 교수, 시인) 선생의 '시베리아와 문학'이라는 주제의 인문학 강의가 있었다. 시베리아에 얽힌 러시아문학과 함께 시베리아 열차에 얽힌 한민족의 애환도 짚어 주었다. 시베리아는 유배의 길이고 거기에 담긴 문학은 비주류의 저항문학이었지만, 세계적으로 러시아문학을 빛나게 한 산실이기도 했다. 나는 고 교수에게 시베리아 유배를 배경으로 한 러시아문학이 세계문학으로 우뚝 자리 매김 되듯이 한반도의 분단(극복) 문학이 세계문학 속에 그 빛을 드러내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고 교수도 나의 제의에 공감하면서 그 실천을 위해 노력하겠노라고 했다.

강만길 교수(고려대 명예교수)는 고려인의 시베리아 강제이주에 담긴 그 통한의 길을, 강제이주 60주년 기념행사 일환으로 참여한 후에 <회상의 열차를 타고>(1998)라는 책을 냈다. 나는 이번 열차여행 중에 그 책을 빌려 급한 대로 대충 읽어 보았다. 여행 3일째 저녁에는 1997년 최초로 시베리아 '회상의 열차' 운영 책임을 맡았고, 지금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강영식 선생의 '연해주 지역 고려인의 역사와 삶'에 대한 인문학강의가 있었다. 그는 당시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상황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중앙아시아로의 고려인 강제이주는 결코 편안한 열차여행이 아니었다. 당시 18만여 명의 한인들은 출입문이 하나밖에 없는, 가축을 실어 나르는 화물칸에 실렸다. 냄새 때문에 틈이 넓은 널빤지 벽과 선반을 매어 두 층으로 나뉜 칸에 짚을 깐 것이 다였다. 러시아의 가을은 한국의 겨울 날씨였다. 그 열차에서 한 달간 물이며 먹을 것도 급했지만 제일 급한 것은 용변 처리하는 일이었다. ...(중략) 열차 이동 중에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과 어린아이들이 많이 죽었다. 그들의 주검은 땅조차 팔 수 없어 얼음판을 헤치거나 눈을 덮어주는 게 고작이었다. 이 때 죽은 자는 전체인원의 5분의 1이었다고 한다."

참혹한 연해주 이민 잔혹사의 단면이다. 이런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한민족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 했다. 그런 역사의 고난을 교훈삼아 우리 민족이 거듭날 때에 '회상의 열차'가 '희망의 열차' 로 승화될 게다. 하여 함석헌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살아남는다고 했다. 지금 내가 타고 가는 시베리아횡단 열차가 당대 우리들 삶에 주는 함의는 과연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유라시아대륙 동쪽 끝과 세계에서 가장 큰 태평양 서쪽 끝이 만나는 지점, 그 한반도에는 태평양 세력(미‧일)을 축으로 하는 남한이, 유라시아(중‧러)를 축으로 하는 북한이 대치하는 가운데 지금도 남북분단은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한반도 문제는 세계 문제의 결절(結節)이다. 하여 한반도가 풀리면 동아시아가 풀리고, 동아시아가 풀리면 세계가 풀린다.

어제도 오늘도 시베리아열차 차창 밖의 대자연은 온생명의 신비를 언제나처럼 우리에게 어김없이 베푼다. 내가 살아 있음은 내 몸 밖에서 어김없이 햇빛과 공기와 물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하여 내 몸은 우주 속의 자연의 일부이자 그 모두와 하나로 얽혀 있다. 이것이 존재의 '연기'(緣起) 관계다. 시베리아 벌판에 지천으로 깔린 자작나무 숲과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을 바라보노라면 지구 '온생명'의 신비가 내 몸에 그냥 와 닿는다. 이른바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과 하나가 된다. 이 하나 됨을 불교에서는 '진여'(眞如)라 했다. 우리의 몸과 맘은 잠시도 자연과 진여 세계를 떠날 수 없는 그런 존재다. 다만 그것을 망각하는 우리네 몸과 맘이 문제이다.

시베리아 열차여행 막바지에 접어들자 마침내 바이칼 호수의 장엄한 풍경이 바다처럼 창밖을 스친다. 열차 카페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던 중에 바이칼 호수 위에 비치는 황혼은 내가 체험하는 시베리아 횡단 여행의 절정을 선사해 주었다. 황혼의 빛깔은 은은하면서도 황홀하다. 나는 나이 들면서 지는 해가 연출하는 황혼이 보기에 좋다. 그래서 평소에도 황혼녘에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달은 동녘에 뜨는 게 보기 좋고, 해는 서녘에 질 때가 좋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 꼬박 3일을 달리고 4일째 집사람과 손녀랑 함께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러시아의 파리로 일컬어지는 이르쿠츠크에서 그 막을 내렸다. 열차에서 내리 3일간이나 샤워를 하지 못했으니, 호텔에 여장을 풀면 따뜻한 물로 샤워부터 해야겠다. 3박 4일간의 시베리아 열차여행은 내게 평생 한 번 뿐인 추억으로 각인될 게다.


태그:#시베리아 횡단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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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로 태어나 지금은 명예교수로 그냥 읽고 쓰기와 산책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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