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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르미 그린 달빛>.
 <구르미 그린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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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최근의 여러 사극들처럼 남장 여인을 등장시키고 있다. 효명세자 이영(박보검 분)의 상대역인 홍라온(김유정 분)이 바로 그 남장 여인이다. 

홍라온은 생활비를 버는 것은 물론이고 병든 양아버지의 약값을 대고자, 한양 시내에서 연애 상담도 해주고 연애 비법서도 쓰면서 그럭저럭 생활했다. 출근 시각에 집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는 남성 삼놈이의 모습으로 하루를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궁궐로 끌려가 내시 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의 삶은 한층 더 기막힌 단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남장 여자가 등장하면, 시청자들은 스토리에 관계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긴장감을 느낀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시청자 스스로 조마조마해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도 적지 않을 것이다.

TV에 나오는 남장 여자를 보며 느끼는 그런 긴장감. 그보다 더한 긴장감을 시청자와 TV 사이의 거리보다 좀더 가까운 거리에서 느낀 사람이 있었다.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 그 허균의 아버지인 허엽(1517~1580년)이 바로 그이다.

허난설헌이 실제로 남장을?

조선 중기 때 사람으로, 임진왜란 12년 전에 세상을 떠난 허엽은 유명한 명문가의 일원이었다. 그는 다른 과거급제자들보다 7살 어린 서른 살에 과거시험에 급제하고 50대 후반에는 양대 당파의 하나인 동인당의 지도자가 되었다.

허엽은 정치 경력 못지않게 문장가로도 유명했다. 아들 허균이 문장가가 된 것도 그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허균 말고도 문장력이 좋은 자녀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딸 허초희(1563~1589년)다. 허초희는 난설헌이란 호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흔히 허난설헌이라고 부른다.

바로 이 허초희가 남장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남장을, 시청자와 TV 사이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하고 깜짝 놀란 사람은 아버지 허엽이다. 딸이 남장 차림으로 등 뒤에 접근할 때까지도 허엽은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래서 근접 거리에서 딸의 남장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던 것이다. 

조선 후기에 전 의령현감 서유영이 지은 <금계필담>에 따르면, 허초희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건축공사 고사 축문을 지은 여덟 살 때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금계필담>에서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은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며 중국에까지 들어갔다"고 했다.

여덟 살 소녀의 글이 국내는 물론 중국까지 알려졌으니 그 필력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나중에는 일본에까지 알려졌다. 과장을 약간 덧붙이면, '문학 한류'를 전파한 여성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허초희가 항상 한스러워한 것이 있었다. 조선 같은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도 그렇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제약하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그랬다. 작은 나라에서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게 항상 불만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자기 혼자 힘으로 나라 크기를 불릴 수도 없고 사회 체제를 바꿀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그가 택한 대안은 영웅호걸형의 남성을 만나는 것이었다. 자기처럼 스케일도 크고 능력도 좋은 여성을 승복시킬 수 있는 굉장한 남자를 원한 것이다.

허초희의 이상형은 당나라(618~907년) 말기의 정치인이자 시인인 두목(杜牧)이었다. 두보가 아니라 두목이다. 두목은 벼슬은 정5품 중서사인밖에 올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문학적으로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또 호탕하고 강직한 성품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기울어가는 당나라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두목을 좋아한 것에서 나타나듯이, 허초희의 이상형은 지위에 관계없이 호탕하고 강직한 동시에 세상을 건지겠다는 야망을 품은 남자였다. 이랬기 때문에, 그는 꼼꼼한 공직자 스타일의 선비는 좋아하지 않았다. 선비가 지배하는 사회에 살면서 선비 스타일 남성을 싫어했던 것이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시집갈 수 없습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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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초희가 열다섯 살 때였다. 아버지가 딸의 결혼을 추진했다. 물론 딸의 의사는 묻지 않았다. 이 시대에는 그게 당연했다. 하지만 허초희는 반기를 들었다. 그는 자기 마음에 맞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했다. 부모가 정해준,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죽어도 싫었던 것이다. 이래서 부녀간에 갈등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갈등이 1984년에 성신여대 허미자 교수가 쓴 <허난설헌 연구>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일화에 따르면, 허초희는 "소녀가 직접 보지 않고는 시집갈 수 없습니다"라며 버텼다. 또 "신랑감을 우리 집에 초청해주시면, 제가 몰래 훔쳐본 다음에 마음에 들면 시집가고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시집가지 않겠습니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애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양반 명문가에서 받아들여질 만한 애원이 아니었다. 결국 허엽은 자기 의사대로 결혼을 추진했다. '저도 함께 만나게 해달라'는 딸의 간청을 뿌리친 그는 자기 혼자 미리 신랑감을 만나볼 목적으로 30리 정도 떨어진 마을까지 걸어가서 예비신랑을 방문했다.

그 집은 안동 김씨 명문가로서 5대째 과거시험 대과(최종시험) 급제자를 배출한 집안이었다. 신랑감은 김성립이라는 10대 선비였다. 허초희보다 한 살 연상이었다.

허엽이 그 집 안방에서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웬 남자 노비가 불쑥 들어왔다.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허엽의 등 뒤에 섰다. 그 집 식구들은 그 노비가 허엽의 수행원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노비가 방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등 뒤에 선 물체의 정체가 궁금하여 허엽은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고함을 칠 수도 없었고 얼굴 표정이 바뀌어서도 안 됐다. 그 남자 노비는 자기 딸 초희였기 때문이다. 초희가 신랑감은 물론이고 시댁 식구들을 미리 '심사'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아버지 뒤를 몰래 밟으며 그 집 대문을 들어선 데 이어 안방에까지 불쑥 들어왔던 것이다.

허엽은 극도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 나오는 남장 여자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감정은 '재미있는 긴장감'에 속하겠지만, 허엽이 느낀 긴장감은 가슴이 쿵쿵 떨리는 긴장감이었을 것이다.

양반집 규수가 남장 차림으로 예비 시댁을 사전 답사했다는 게 알려지면 가문이 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다. 자칫하면 결혼이 깨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허엽은 거친 숨을 속으로 삭인 채, 겨우겨우 대화를 끝내고 그 집을 나왔을 것이다. 

허엽은 그날 만난 예비신랑 김성립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김성립의 묘비명에 따르면, 김성립은 엄친아 스타일의 모범적인 청년이었다. 마음이 똑바르고 언행에 과장도 없고 항상 독서로 정신수양을 하는 청년이었다. 이래서였는지, 허엽은 그를 사위로 맞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허초희는 김성립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 허초희의 눈에는 올곧은 남자라기보다는 좀생원 같은 남자였다. 거기다가 외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학자 홍대용이 쓴 <청장관전서>에 따르면, 김성립은 외모가 괜찮은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허초희가 거기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었다고 한다.

허초희는 이러저런 이유로 김성립과 결혼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허엽은 딸의 의사를 무시하고 결혼을 강행했다. 남장 여자 차림으로 예비 시댁을 침입한 허초희의 노력은 그렇게 해서 물거품이 되었다.

'남장' 했다는 걸 솔직히 말했더라면

그때부터 허초희는 한층 더한 한을 품게 되었다. 작은 나라에서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고 살아온 그에게 '시시한 남편을 두었다'는 새로운 불만이 추가된 것이다. 물론 김성립은 결코 시시한 남자가 아니었지만, 세상을 뒤흔들 영웅호걸 남성을 원한 허초희한테는 시시한 남자일 수밖에 없었다.  

<청장관전서>에 소개된 허초희의 시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이승에서 김성립을 이별하고 저승에서 두목(杜牧)을 따르고 싶다."

죽음을 통해 김성립과 이별하고 저승에서라도 두목 같은 남자와 살아보고 싶다는 시를 남긴 것이다. 이랬으니, 허초희가 김성립을 얼마나 냉대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을 무시하는 유능한 아내 때문에 기가 눌렸는지, 공부벌레 김성립은 결혼 후 오랫동안 과거시험에 급제하지 못했다. 인품과 외모도 마음에 안 드는 남편이 과거시험에도 붙지 못하니, 허초희는 더욱 더 남편을 무시했을 것이다.

어쩌면 허초희는 '그날 남장 차림으로 그 집에 갔을 때 내 신원을 솔직히 소개했더라면' 하고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결혼이 깨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더라면, 마음에 들지 않은 남편 때문에 속앓이를 할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초희는 남편 문제에 더해 건강 문제와 집안 문제로 고생하는 중에도 작품 활동을 하다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부인한테 무시 받으며 살아온 김성립은 부인이 죽자마자 갑자기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부인이 떠난 그 해, 그러니까 결혼 12년 만에 과거시험에 급제하고 1급 부서인 홍문관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결혼도 새로 했다. 하지만 허초희가 죽은 지 3년 만에 그도 죽고 말았다. 잠시 일이 잘 풀리는가 싶더니 그 역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그날 허초희의 남장 차림이 현장에서 발각됐다면, 마음 안 맞는 두 사람이 부부가 됐을 가능성은 낮아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정신적 갈등으로 인한 생명력의 소모도 그만큼 줄었을 것이고, 그렇게 됐더라면 두 사람이 그렇게 일찍 죽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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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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