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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부르키니' 논란으로 뜨겁다.

최근 프랑스 일부 지방은 신체를 대부분 가리는 무슬림 여성 수영복인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했다. 그러자 인권단체들이 소송을 걸었고, 프랑스 최고 행정재판소는 지난 26일(현지시각) 부르키니 금지 무효화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부르키니 금지는 이동의 자유, 양심의 자유, 개인권 등 기본적 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개인의 자유권을 제한하려면 증명된 위험이 있어야 하지만, 부르키니는 그렇지 않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사회 통합과 테러 방지를 이유로 신체를 가리는 무슬림 여성 의상인 부르카, 니캅, 히잡 등을 공공장소에서 착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어 유럽 전역으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부르키니는 무엇이며, 왜 논란이 됐나

프랑스 니스 해변에서 경찰이 무슬림 여성에게 부르키니를 벗도록 지시하는 사진을 보도하는 <인디펜던트> 갈무리.
 프랑스 니스 해변에서 경찰이 무슬림 여성에게 부르키니를 벗도록 지시하는 사진을 보도하는 <인디펜던트> 갈무리.
ⓒ 인디펜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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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세속주의 원칙에 따라 지난 2011년 유럽 국가 최초로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니캅과 신체를 모두 덮는 부르카 착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150유로(약 18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등에서도 지역에 따라 부르카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프랑스 유명 해변 니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사람들을 향해 트럭을 몰고 돌진하는 테러로 86명이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자 부르키니까지 겨냥하고 나섰다. 부르키니는 '부르카'와 '비키니'의 합성어로, 이슬람 율법에 따라 신체 노출을 꺼리는 무슬림 여성의 물놀이를 위해 만든 옷이다.

니스, 칸 등 유명 해변이 있는 프랑스의 30여 개 지방자치단체는 공공질서 위협, 수상 안전, 위생 관리 등을 이유로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이슬람 사회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될 무렵, 전 세계 외신에 보도된 한 사진이 유럽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니스 해변에서 한 무슬림 여성이 경찰 3명에게 둘러싸여 부르키니를 벗는 모습이었다. 경찰 측은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하는 정당한 단속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슬람과 여성 단체는 "권총과 곤봉으로 무장한 남성 경찰들이 여성에게 옷을 벗도록 강압한 것은 명백한 폭력"이라며 비판했다. 한 누리꾼은 이 사진을 1925년 경찰이 여성의 수영복 길이를 단속하는 사진과 함께 올리며 "공권력이 여성의 옷을 감시하는 것은 9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라고 꼬집었다.

프랑스 인권연맹(LDH)은 부르키니를 금지하는 지방자치단체 빌뇌브-루베 시를 상대로 이를 철회하라는 소송을 제기해, 법정에서 승리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이슬람 기구 무슬림평의회(CFCM)는 "상식의 승리"라며 환영했다.

하지만 대다수 지방자치단체는 특정 지역에 대한 결정일 뿐이라며 부르키니를 계속 금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송을 주도한 인권연맹의 파트리스 스피노지 변호사는 "이번 결정이 전국적인 선례가 되어야 한다"라며 "법원 결정에 불복하는 모든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벌일 것"이라고 받아쳤다.

유럽이 부르키니를 벗기려는 이유

2016년 경찰의 부르키니 단속과 1925년 여성 수영복 길이 단속을 나란히 보여주는 소셜미디어 갈무리.
 2016년 경찰의 부르키니 단속과 1925년 여성 수영복 길이 단속을 나란히 보여주는 소셜미디어 갈무리.
ⓒ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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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도 가세했다. 극우 세력은 부르키니 논란을 '반(反) 난민' 여론몰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남성을 유혹한다는 편견을 이유로 여성이 신체를 가리는 것은 안 된다"라며 "부르키니는 프랑스의 영혼에 대한 도전"주장했다.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중도 우파의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도 "부르키니 금지를 전국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라며 "프랑스 내 이슬람계는 사회 통합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있다"라고 거들었다.

주목할 것은 '친(親) 난민' 정책을 펼치며 문화적 다양성을 지지하는 프랑스와 독일의 집권 세력도 이슬람 복장 규제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최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와 난민 범죄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불안과 이슬람 혐오 정서가 높아지자, 이를 틈타 지지층 확보를 꾀하는 극우세력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마누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여성은 순결하기 때문에 신체를 가려야 한다는 믿음은 옳지 않다"라며 "부르키니는 프랑스의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토마스 데메지에르 독일 내무장관도 "부르카를 입어 얼굴을 가리는 것은 세계화된 독일과 어울리지 않는다"라며 "사회 통합을 위해 공공장소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무슬림 여성은 자발적이 아니라 남성 중심의 종교적 강압 때문에 신체를 가리는 것이며, 이러한 법이 무슬림 여성을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무슬림 여성의 해방인가, 또 다른 폭력인가

부르키니 논란에 대해 히잡, 니캅, 부르카, 차도르 등 무슬림 여성의 복장을 설명하는 소셜미디어 갈무리.
 부르키니 논란에 대해 히잡, 니캅, 부르카, 차도르 등 무슬림 여성의 복장을 설명하는 소셜미디어 갈무리.
ⓒ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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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뉴욕타임스>는 28일 사설에서 "부르키니 금지는 세속주의라는 또 다른 종교주의를 강제하는 것"이라며 "프랑스에서는 세속주의라는 민간 종교가 있으며, 이는 여성의 신체와 옷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다른 종교와 논리가 다를 바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부르키니가 만들어지기 전 무슬림 여성은 해변에 나오지도 못했으나, 지금은 (부르키니 덕분에) 제트스키도 즐길 수 있다"라는 한 무슬림 여성의 인터뷰를 소개하며 "부르키니를 금지하면 오히려 무슬림 여성들이 해변으로 나오지 못하고, 다시 집 안에 갇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디언>도 칼럼을 통해 "부르키니를 금지하는 것은 정부가 테러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쉽고 작은 방법일 뿐이고, 훨씬 더 복잡하고 모호한 근본 원인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무슬림을 포함해 모든 여성에게 그들이 원하는 옷을 입도록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부르키니 금지는 서구 세계가 이슬람에 대해 또 다른 낙인을 찍는 것"이라며 "오히려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극단주의 세력을 자극하고, 테러 공격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유엔은 스테판 두자릭 대변인 성명을 통해 "프랑스 최고 행정재판소의 결정을 환영한다"라며 "모든 인간의 권위는 존중되어야 한다"라고 부르키니 금지 무효화를 지지했다. 국제사회는 무슬림 여성의 손을 들어줬지만, 반대 세력도 더욱 결집하고 있다. 부르키니를 둘러싼 본격적인 논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태그:#부르키니, #무슬림,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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