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구 공방으로 악연을 맺었던 기아 임창용과 두산 내야수 오재원이 하루 만의 '용쟁호투' 리턴매치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두산은 28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원정경기에서 종반에 폭발한 타선의 힘을 앞세워 기아를 9-0으로 완파했다. 오재원은 이날 임창용을 상대로 결승타를 뽑아내며 전날의 빚을 설욕했다.

임창용과 오재원은 하루 전인 27일 경기에서 위협구 시비로 얼굴을 붉힌 바 있다. 기아가 5-3으로 앞서가던 9회초 2사 후에 오재원은 임창용을 상대로 볼넷을 얻어 출루했고 2루 도루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이어진 상황에서 임창용이 2루 견제를 시도하다가 기아 내야수들이 베이스 커버를 들어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돌연 2루 주자 오재원의 머리를 향해 강하게 공을 뿌리는 기행을 저질렀다. 오재원은 황급히 몸을 숙여 공을 피했으나 하마터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당시 주심은 임창용에게 경고만 주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지었다. 오재원 역시 불필요한 동작을 취했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았다. 이후 임창용은 마지막 타자 김재호를 아웃처리하며 경기는 기아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양팀 모두 못내 찜찜한 결말이었다. 지켜보는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임창용의 견제구를 두고 고의성과 원인을 두고 뜨거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임창용, 사과는 했지만 찜찜한 뒷맛

 25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KIA 마무리 투수 임창용이 9회초에 등판해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다.

25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KIA 마무리 투수 임창용이 9회초에 등판해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다. ⓒ 연합뉴스


고의성 여부를 떠나 위험한 공을 뿌린 임창용이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피해자라고 할수 있는 오재원도 덩달아 도마에 올랐다. 일부에서는 평소 오재원이 과장된 제스츄어와 승부근성 때문에 상대 선수들과 종종 마찰을 자주 빚었던 것을 거론하며 이번에도 먼저 임창용을 도발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위협구 상황 전후로 오재원이 특별히 임창용을 자극했다고 볼만한 근거는 없었다. 무엇보다 경기 중 상대 선수들끼리 신경전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주자에게 위협구를 던지는 행위 자체는 절대로 용납받기 어렵다.

하루가 지난 뒤 임창용은 직접 두산 측을 찾아가 오재원에게 사과의 의사를 밝혔다. 이미 기아 구단이 전날 임창용의 사과 방문을 약속한 바 있었다. 다만 임창용은 오재원과의 대화에서도 여전히 고의가 아닌 실수였다는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배인 오재원도 흔쾌히 선배의 사과를 받아들이며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다. 양팀 모두 갈등을 확전시키지 않고 사태를 마무리짓는 모양새를 취했고 이날도 더 이상의 충돌 없이 정상적으로 경기를 치렀다.

임창용의 사과 자체는 모두 진심이라고 쳐도 찜찜한 뒷맛은 남는다. 당시 임창용의 견제구가 여전히 고의성 짙은 위협구라는 의혹이 말끔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창용이  견제구를 던지기 전에 이미 오재원과 내야수들의 위치를 모두 확인하고 나서 굳이 오재원 쪽으로 다시 공을 뿌리는 모습이 뚜렷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투타 대결에서도 타자의 머리쪽으로 향하는 헤드샷은 무조건 퇴장이다. 하물며 무방비 상태의 주자를 향해 근접거리에서 투수의 위협구는 치명적일 수 있다. 당사자들끼리 서로 화해하고 용서했다고 해도 적당히 넘어가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임창용에게는 마땅히 사후에라도 KBO에서 별도로 징계를 내리는 것도 필요하다.

양팀간 위협구 시비는 그 정도로 일단락되었지만 두 선수의 악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날 경기는 투수전 양상으로 펼쳐지며 7회까지 스코어가 0-0으로 팽팽한 균형을 유지했다. 8회초 두산 공격에서 1사 1, 3루의 위기 상황에서 오재원이 타석이 들어섰다.

그러자 김기태 감독은 마운드에 마무리 임창용을 투입했다. 양팀 모두 승부처였기에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하필 전날 큰 논란을 빚은 투수와 타자 당사자들이 하루 만에 외나무다리에서 다시 만나는 얄궂은 상황이 됐다. 화해는 했다지만 남은 앙금이 완전히 없을수는 없었다.

임창용-오재원 맞대결 성사시킨 기아 김기태 감독의 악수

이날의 승자는 갚아야 할 빚이 남은 오재원이었다. 기다린 듯이 임창용의 초구 패스트볼을 받아친 오재원은 중견수 옆으로 향하는 1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이날 오재원의 유일한 안타이자 두산의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타이기도 했다.

맥이 빠진 임창용은 다시 김재환에게  3점 홈런을 얻어맞고 무너졌다. 최근 4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던 임창용은 0.1이닝 동안 홈런 포함 2피안타 2실점을 기록하며 고개를 숙였다. 사실 위협구 논란의 후유증이라기보다는 체력적 부담이 컸다. 임창용의 등판은 24일 NC전부터 최근 5일 사이에서 무려 4번째 등판이었다. 전날에도 이미 1.1이닝 24구를 던진 40대를 넘긴 투수에게 또 한 번 8회 조기등판을 강행한 것은 김기태 감독의 악수였다. 가뜩이나 전날 위협구 사건으로 벼르고 있는 오재원과 두산 타자들의 집중력만 높여준 셈이었다.

임창용을 무너뜨린 후 기세가 오른 두산은 9회초 공격에서 다시 5점을 몰아치며 점수를 9-0까지 벌렸다. 중반까지 투수전으로 진행되던 경기의 균형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오재원으로서는 전날의 위협구 시시비비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고 사과를 받아들이는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인데 이어, 그라운드에서는 실력으로 빚을 갚으며 가장 세련되게 복수한 셈이 됐다. 결과로는 1승 1패, 한 방씩 주고받은 장군멍군이었지만 불필요한 논란 없이 깔끔하게 실력으로만 승부한 오재원과 두산의 판정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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