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한 슈틸리케호의 도전은 공한증(恐韓症)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한국은 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중국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을 시작으로 내년 9월까지 총 10경기를 치러 월드컵 본선행을 가린다. 한국은 최종예선 A조에 이란(39위), 우즈베키스탄(55위), 중국(78위), 카타르(80위), 시리아(105위)와 함께 편성되어있다. 최종예선 1, 2위 팀은 러시아행 직행 티켓을 차지한다.

한국은 최종예선 상대국 중 이란에만 역대 전적 9승7무12패로 뒤질 뿐, 우즈베키스탄(9승3무1패), 카타르(4승2무1패), 시리아(3승2무1패) 등 나머지 팀들에게는 모두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최종예선 첫 상대인 중국에게는 17승12무1패로 가장 강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공한증은 한국과 중국의 축구 대결사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단어다. 원래 중국에서 생긴 표현으로 지금은 한국에서도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이 됐다. 공한증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아시아 예선 최종전에서 한국에 완패하며 본선 티켓을 놓친 뒤 중국 언론 측에서 먼저 쓰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에서도 강세를 보이는 스포츠 강국이었고, 한국 스포츠는 그동안 다른 스포츠 분야에서는 중국의 벽에 부딪쳐 좌절했던 '공중증'의 아픈 기억이 더 많았다. 한국이 아시아무대에서 중국에 패할 때마다 '만리장성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식의 표현이 단골로 등장하기도 했다.

중국을 괴롭히는 공한증 징크스

 1일 열리는 한국과 중국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을 앞두고 8월 30일 오후 경기도 파주 NFC에서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몸풀기 달리기를 하고 있다.(사진 위) 같은 날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중국 대표팀 선수들이 몸풀기 달리기를 하고 있다.(사진 아래)

1일 열리는 한국과 중국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을 앞두고 8월 30일 오후 경기도 파주 NFC에서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몸풀기 달리기를 하고 있다.(사진 위) 같은 날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중국 대표팀 선수들이 몸풀기 달리기를 하고 있다.(사진 아래) ⓒ 연합뉴스


하지만 여기서 유독 예외가 되는 것이 바로 축구였다. 수많은 스포츠 중에서도 축구는 세계에서 가장 글로벌하고 내셔널리즘 성향이 강한 대표적인 종목이다. 하지만 중국은 축구에서만큼은 이렇다할 국제대회 성적을 올린 경우가 전무하다. 월드컵만 해도 2002년 한일 대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선에 진출하여 3전 전패로 탈락한 것을 끝으로 더 이상 본선무대 근처도 가지 못하고 있다. 국가대항전 부진과 더불어 중국의 '축구 콤플렉스'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 바로 공한증 징크스다.

한국 축구는 A매치는 물론이고 올림픽팀 같은 각급 연령대별 대표팀 간 대결에서 유독 강세를 보였다. 반세기가 넘는 긴 세월동안 국제무대에서 숱하게 격돌하고도 땅덩이와 인구 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 한국에 일방적인 열세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은 중국인들의 자존심에 큰 흠집을 냈다. 중국이 제자리 걸음을 거듭하는 동안 한국축구는 월드컵 본선에 8회 연속 출전했고 2002년에는 아시아 국가로 역대 최고의 성적(4강)을 올리는 등 승승장구하며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중국축구는 왜 한국만 만나면 유독 힘을 못쓸까. 기본적으로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과 경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강팀들도 종종 약팀에게 덜미를 잡히는 것처럼 전력 차이가 전부는 아니다. 2011년 중국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역임해던 크로아티아 출신의 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 감독은 공한증의 원인을 두고 "중국 선수들은 한국을 만날때마다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계속된 패배가 중국 선수들에게 부담감으로 쌓이면서 일종의 징크스로 굳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주의적인 정서가 강한 중국 선수들이 조직력과 협동심이 강조되는 단체종목에서 취약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산아제한 정책(1가구 1자녀)의 영향으로 가정에서 금지옥엽으로 성장한 선수가 대부분이라, 단체 생활에서도 자신을 희생하는 데 익숙하지 않고 인내심과 끈기가 떨어지는 풍조가 축구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최근 중국 프로축구가 막대한 자본을 등에 업고 급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대부분 유럽과 남미 등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영입된 외국인 선수와 감독들이다. 제대로 된 프로리그의 역사가 짧다보니 중국 축구계 내부에 제대로 된 축구 인프라와 시스템을 주도할 인재는 부족하다. 외형적인 성장에 비하여 전반적인 프로의식이나 문화가 자리잡기에는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기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는 능력이나 위기 상황의 압박감을 대처하는 정신력 같은 면에서 중국이 한국 선수들의 노하우에 뒤질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 A매치에서 중국에 단 1패, 여전한 실력 우위

슈틸리케의 특급 명령? 30일 오후 파주 NFC에서 대한민구 축구대표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황희찬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표팀은 9월 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중국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을 치른다.

▲ 슈틸리케의 특급 명령? 30일 오후 파주 NFC에서 대한민구 축구대표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황희찬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표팀은 9월 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중국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을 치른다. ⓒ 연합뉴스


현재까지 한국이 중국에 공식적으로 인정된 A매치에서 패배한 것은 단 1차례다.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2010년 2월 동아시안컵에서 0-3으로 패한 바 있다. 당시 중국의 수장이 바로 현재의 가오홍보 감독이기도 하다.

30년에 걸친 공한증의 역사가 최초로 깨졌다는 점에서 당시 허정무 감독은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는 과정이었고 해외파 선수들이 빠진 1.5군급의 전력으로 성적보다 선수 점검과 전술 실험에 더 큰 의미를 둔 경기였다. 이후 5년간 한국은 다시 중국에 패하지 않았다.

슈틸리케호도 중국을 격파한 경험이 있다. 지난 2015년 8월 동아시안컵 중국전에서 김승대와 이종호의 연속골로 2-0 승리를 거뒀다. 당시 한국은 유럽파 한 명없이 국내파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2진급 으로도 중국 정예멤버을 압도했다.

1년 만의 재대결이지만 한국의 우위는 여전히 분명하다. 한국은 이번 최종예선에서 황희찬(잘츠부르크), 기성용(스완지), 손흥민(토트넘), 이청용(팰리스), 구자철·지동원(이상 아우크스부르크) 등 주력 해외파들이 모두 합류한다. 가오 감독은 해외파가 포진한 한국의 전력과 경험을 높이 평가하며 한국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중국 대표팀에는 이렇다할 유럽파가 없다. 네덜란드 비테세에서 활약 중인 19세 유망주 장위닝이 있지만 한국전에서 나설지는 미지수. 여기에서 장현수(광저우 푸리), 김영권(광저우 헝다), 홍정호(장쑤), 김기희(상하이), 정우영(충칭  등 수비진의 주력 선수들 대다수가 '중국파'로 구성되어있어서 중국 선수들의 특성과 정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도 유리한 부분이다.

중국 대표팀의 절반 이상이 한국 선수들이 소속된 광저우 헝다와 푸리, 장쑤 쑤닝 등에 소속되어 있다. 이장수, 홍명보, 박태하, 장외룡, 최용수 등 현재 중국 프로팀을 맡고 있는 한국 지도자들도 많아서 정보 수집이 더 용이하다.

방심은 금물, 소림축구도 경계해야

물론 방심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은 이번 중국전을 앞두고 석현준(트라브존스포르), 이정협(울산), 황의조(성남) 등 그간 대표팀 주력으로 활약하던 공격수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대거 빠졌다. 현재 대표팀에 정통 공격수 자원은 20세의 유망주 황희찬 한 명뿐이다. 2선 공격수 손흥민과 지동원도 최근 소속팀에서의 부진과 슬럼프 등으로 부침을 겪었다.

중국 내에 불고 있는 축구붐과 더불어 극성팬들의 원정 응원도 경계해야 할 변수다. 1일 중국전에서는 3만 명 이상의 중국 원정팬들이 찾아올 것으로 알려졌다. 슈틸리케 감독도 홈에서 치르는 경기가 자칫  원정과 같은 분위기가 될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중국의 전력보다 더욱 경계해야 할 변수는 역시 소림축구다. 중국 축구는 그동안 실력보다 거친 플레이로 더 악명을 떨쳐왔다. 한국도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에이스 황선홍이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하며 월드컵을 망친 바 있고, 2003년 동아시안컵에서는 이을용이 중국 선수들의 계속된 거친 플레이에 격분하여 상대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소위 '을용타'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중국 프로축구에서 발생한 외국인 선수 뎀바 바의 끔찍한 다리골절 부상은 동업자의식이 결여된 소림축구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다. 중국 입장에서도 이번에야말로 월드컵 본선출전과 공한증 극복에 대한 부담감이 강한 만큼, 국가대항전에서도 경기가 과열될 경우 언제든 난폭한 플레이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 선수들에게는 중국의 도발과 소림축구에 흔들리지 않고 부상 없이 무사히 경기를 마치는 것도 승리 못지않게 중요하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