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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와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 전국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그리고 참여연대가 '나는 자영업자다' 공모를 띄웠습니다. 자영업자의 절절한 속사정, 자영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주세요. [편집자말]
자식 많던 시절에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했다. 다 옛말이다. 요즘은 자식이 한둘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내리 사랑의 집중도가 높아졌다. 게다가 맞벌이라면 자식에게는 늘 모든 게 미안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아이가 집안의 가장 높은 위치에서 '감투'를 쓰고 호령한다. 우리 집이 그렇다. 내 평생 가장 많이 머리를 조아린 상대는 단연코 우리 아이다.

내가 배꼽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 존재가 또 있다. 손님이다. 자식과 손님,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내 생활을 쥐고 흔드는 존재. 그 둘에 관한 이야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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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가? 이따금 우리 아이에가 럭비공 같다. 시시각각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방긋방긋 웃다가도 뭔지 알 수 없는 이유로 토라진다. 그러다가 아이스크림 사다 물리면 금방 "아빠 사랑해" 하면서 하트를 날려준다. 그 말에 감격해서 방심하고 있으면 아이는 입을 앙당 물고 내 가슴팍이 샌드백인양 주먹을 날린다. 이런 갈팡질팡을 몇 번 반복하면 정말 돌아버린다.

이런 손님도 많다. 제 뜻대로 흥정이 되지 않는다고 웃통을 까고 배를 득득 긁으면서 조폭 흉내를 내지 않나, 왜 이렇게 먼 데서 장사를 하느냐고 화를 내질 않나(누가 오라고 했나…). 그중에서 압권은 스토커 손님이다. 전화로 상품 문의를 하면서 내 말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반말 찍찍'에 왕 대접을 받으려고 하기에 그 번호를 차단해버렸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어온다. 이상한 건 나에게 따지지 않는다는 거다. 어이없게도 처음 전화 거는 사람인 척한다. 아닌 척해도 내가 그 목소리를 모를까. 열 번쯤 통화를 하고 수십 번 고민하다 번호까지 차단했다.

등골이 서늘했다. 번호를 바꾸는 걸 보면 내가 자신을 차단한 줄 아는 건데 왜 이렇게까지 하지? 단순히 골탕을 먹이려는 건가, 작정하고 해코지를 하려는 전 단계인가? 세 번째 번호를 차단하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혹시나 해서 SNS 프로필 사진으로 올렸던 아이 사진을 삭제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경찰에 문의를 해 봤지만 이 정도로는 영업방해죄를 묻기도 어렵다고 했다. 다행히 네 번째 스토킹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니 내가 먼저 술안주로 꺼내놓는 해프닝이 됐지만, 당시에는 착잡했다. 내가 생판 모르는 사람의 과녁이 돼 일방적으로 당할지도 몰라 억울했다.

매일 '존엄'을 만난다

가끔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지만...
 가끔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지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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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설거지를 하면서 내 도시락은 자주 까먹지만 우리 아이 어린이집 식판은 매일매일 뽀도독뽀도독 닦아 놓는다. 다음에 이사 가려는 이유는 아이가 이 집에서 기침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난 화장실 변기 위에서도 나만의 시간을 누리기 어렵지만 아이는 전용 소파까지 있다. 외식 메뉴? 물어서 뭐할까. 우리 집에서 가장 미천한 계급은? 엄마 그 다음에 아빠다.

그리고 우리 가게의 '존엄'은 손님이다. 손님이 오시겠다고 하면 기다려야 한다. 얼마짜리 물건을 살 거냐, 정말 사기는 할 거냐 확답하라고 묻는 건 가당치 않은 일이다. 왕은 아니더라도 상전은 분명한 존엄이다. 그러니 약속 시각에 맞추기 위해 (이게 뭔 짓인가 싶지만) 아이를 다그쳐서라도 어린이집에 맡기고 급하게 차를 몰아야 한다. 설사 '노쇼(no show)'가 된다한들 손님에게 싫은 내색을 비춰서는 안 된다. 혹시 다음에라도 올 길을 터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뭐,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나도 성수기에는 손님한테 딱딱거리기도 한다. 특히 앞뒤 자르고 이거 얼마까지 깎아줄 거냐고 흥정부터 하는 손님에게는 말이다. 그 외에는 앉으나 서나 손님 생각이다. 어서 뵙기를 소원한다. 손님 앞에서는 있는 지식 없는 경험 다 쥐어짜서 손님을 분석한다.

지갑이 얇은 손님에게 고가의 제품만 소개해봐야 허탕이니 지갑 두께도 가늠해 본다. 문제는 대부분의 손님이 제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거다. 이제 다 됐어. 결제만 하면 돼. 그런데 손님은 지갑을 꺼내 만지작거리며 자꾸 먼 산만 쳐다본다. 카드를 받으려고 내민 내 손이 오그라들면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늘 궁금하다. 언제, 어떻게 손님의 지갑이 열리는지. 그러나 늘 안개 속이다. 손님을 중심에 세우면 뭐하나.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데. 오죽했으면 관상을 다 공부했을까. 자영업자들이 점괘를 본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 속 터지는 마음 백 번 공감한다.

그래도 원칙을 세워야 살아 간다

"업자"라는 말에 화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원칙을 갖고 손님을 맞는다. 냉탕과 열탕을 오가게 하는 존재, 바로 손님이다.
 "업자"라는 말에 화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원칙을 갖고 손님을 맞는다. 냉탕과 열탕을 오가게 하는 존재, 바로 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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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에게 휘둘리는 아빠다. 감정과 시간, 돈, 세계관, 습관까지. 내 가진 모든 것을 녀석에게 맞춘다. 내리 사랑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으나 내리 사랑이기게 일정한 기준을 세우고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줄도 안다.

손님을 대하는 자영업자의 자세에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 사실 자존심, 가치관, 사생활 등등 가진 거 다 퍼주고서라도 손님의 지갑을 열고는 싶다. 그게 가능하면 한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망가진다.

자영업자, 특히 1인 사업자의 가장 큰 자산은 몸뚱이다. 내가 아프면 모든 게 멈춘다. 누구도 나를 대신 해주지 않는다. 아파도 쉬지 못한다. 그나마 발이라도 부러진다면 다행이다. 깁스를 하고 절뚝거리면서 동정심을 유발해서라도 하루벌이를 할 수 있다. 반면 마음을 다치면 생활을 꾸려갈 의지가 발가락 끝까지 쑥 빠져 나간다. 돈이 내 눈 앞에서 뚝뚝 떨어진다 해도 멍청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은 홧술을 먹었을 때는 "나는 업자가 아닙니다"라고 나 자신을 부정한 날이었다. 일의 성격상 업체가 아닌 개인에게 중고 상품을 매입한다. 개인 대 개인 거래도 활발하다. 조건이 좋으면 나 말고도 만인이 그 물건을 노린다. 그날 거래하기로 한 사람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업자는 아니시죠? 전 업자랑은 거래하기 싫어서요."

업자. 사업자나 자영업자를 깔보는 저 표현이 내 귀에 꽂힐 때면 나는 본분을 잃고 화를 낸다. 상대는 감정 없이 말했더라도 내 자격지심에 속이 끓는다. 다행히 그 날은 잘 참았다. 그리고 업자가 아니니 나한테 팔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냈다. 어찌나 한심하던지 그날 저녁 원 없이 소주를 마셨다. 나 뭐하는 거냐 지금. 누가 따뜻한 손으로 등이라도 쓸어주었으면 속절없이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자식과 손님. 내 의지대로 몰아가고 싶지만 결코 내 손에 잡히지 않는 미꾸라지 같은 고약한 상대. 나를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대하는데 대거리 한 번 제대로 못해 보는 '넘사벽'. 많으면 귀찮지만 없이는 못 살겠는 애증의 존재.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냉탕과 열탕을 오가게 만드는 위대한 마법사. 그리고 내 생활의 활력소.

"저 여기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나는 자영업자'다 응모글입니다.



태그:#내리사랑, #손님, #자영업, #중고거래, #1인사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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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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