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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무꽃 한계령 길가에 피어난 가을꽃 골무꽃의 보랏빛이 선명하다. ⓒ 김민수
마른 장마로 시작된 여름은 내내 무더위와 폭염으로 일관했다. 겨울보다는 넉넉한 여름이지만, 열대야의 공격은 서민들에게 특히 가혹했으며, 전기요금 누진제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에게 에어컨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가을을 더 기다렸으나 입추가 지났음에도 포도를 달군 무더위는 물러서지 않을 기세로 최고기온을 갈아치우며 기록을 갱신했다.
흰물봉선 한계령을 넘는 길에서 만난 흰물봉선을 보니 가을이 실감난다. ⓒ 김민수
아스팔트 콘크리트 보도블록으로 포장된 도시를 떠나면 조금은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휴가행렬의 끝물에 동참했다.

한계령, 그곳에 서자 상쾌한 바람이 불어온다. 얼마만에 코끝에 느껴지는 상쾌한 바람인가 싶어 한 없이 작은 바람 한 점에 고마움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도시는 너무 인공의 것들이 많아졌다. 인공의 것들 사이에 있는 자연들이 맥을 추지 못하고,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닭의장풀 여름꽃이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까닭인지 한계령에서는 아직도 신비한 꽃의 빛깔을 간직한채 피어있다. ⓒ 김민수
이곳 한계령은 무더위를 타지 않았는지 아직도 여름꽃 닭의장풀(달개비)이 여전히 싱싱하게 피어있다. 흔하지 않은 꽃의 색깔이다.

그 생명력이 강한 닭의장풀도 도시에서는 견디지 못하고 아침 나절에 잠시 피었다가 꽃을 닫곤 했다. 그리고 수명도 그리 길지 못했으며 꽃보다는 이파리를 많이 냈다. 화단에 제법 닭의장풀이 많이 올라와 달개비차라도 만들어볼까 싶었는데, 꽃도 제대로 피우지 못한 것으로 만들어서 뭐에 쓸까 싶어 그냥 뽑아버렸다.

그런데 내년이나 기약해야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싱그럽게 피어난 닭의장풀이 고맙기만 하다. 여름꽃이라도 여전히 가을꽃 피어나는 계절에도 피어있음이 고맙기만 하다.
부추꽃 부추꽃이 폭죽놀이하듯 피어났고, 별을 찾아온 손님이 꿀을 얻고 있다. ⓒ 김민수
폭죽을 닮은 꽃, 하나하나 보면 작은 별을 닮을 꽃이 부추꽃이다. 이파리는 채소로도 많이 사용되고, 강장제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광야생활을 하면서 부추를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별을 닮은 꽃이 피었다 지고나면 까만 씨앗이 맺힌다. 팝씨보다도 작은 씨앗, 그 작은 씨앗은 별똥이다. 별을 닮은 꽃이 씨앗을 맺었으니 별똥이다.
바위채송화 오색약수터 근처의 바위에 한창 피었을 바위채송화, 극심한 가뭄, 제철이 아님에도 한 송이를 기어이 피웠다. ⓒ 김민수
오색약수터 부근 바위에는 지난 여름 한창 피어났을 바위채송화의 흔적들이 많이 있었다. 바위채송화의 꽃도 부추꽃처럼 별을 닮았다. 그 별빛은 노란색이다. 이미 한 철을 다 했기에 딱 한 송이 남은 꽃조차도 귀하다.

가뭄에 설악산 계곡도 말랐다. 오색약수터도 명맥만 유지하듯 물이 말랐으니 바위야 오죽했겠는가? 그래도 꽃을 피웠으니 어찌 기특하지 않을 수 있는가?
병조회풀 설악산에서 만난 병조회풀의 보랏빛 꽃이 튼실하다. ⓒ 김민수
병조회풀, 완연한 가을꽃이다. 높은 바위 틈에 피어있어 담지는 못했지만 구절초도 피어났으니, 물매화도 피어날 것이요, 가을임을 부정할 수 없을만큼 많은 가을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날 것이다.

꽃들은 기온보다는 일조량의 변화에 따라 피어나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제철에 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간혹 거기에 철을 잊은 '바보꽃'들이 섞여있을 뿐이니, 대체로 들판에 피어난 꽃을 보면 계절을 가늠하게 되는 것이다.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밥풀꽃이 피었는데 어찌 가을이 아니겠는가? ⓒ 김민수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배꼽 모두 가을꽃의 대명사다. 며느리배꼽의 꽃은 작아서 거의 일반인들은 존재조차도 알기 전에 열매가 보랏빛으로 익어가고, 며느리밥풀꽃은 진한 보랏빛을 간직하고 있는 데다가 혀를 닮은 꽃잎에 밥알 두 개를 붙인듯 피어있으니 이 꽃에 대한 전설을 알고 있으면 산책하는 길 이야기거리다.

"야, 신기해, 정말 혓바닥에 밥 알 두 알이 붙은 듯하네?"
마디풀 척박한 곳에서 아주 작은 꽃을 피우지만 갖출 건 모두 갖추었다. ⓒ 김민수
이런 가을꽃들의 행렬 속에 피어나는 가을꽃 하나, 마디풀은 잡초취급을 당하는 꽃이다. 너무 작아서 꽃을 피워도 보는 사람만 본다. 그 꽃을 보려면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진을 담으려면 아예 배를 땅에 대고 엎드려야 한다.

그렇게 낮고 작은 꽃, 그래서 아예 엎드리고 나서야 보이는 꽃이니 어쩌면 더욱 더 귀한 꽃이리라.
박주가리 솜털 가득 달고 피어난 박주가리,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에도 춥지 않을듯하다. ⓒ 김민수
조금 늦은 것일까? 여름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가을 초입에도 피어난다. 여름보다는 기온차가 급격한 가을이 더 잘 어울리는 꽃이 아닐까 싶다. 꽃잎마다 솜털이 송송하여 덥게 느껴질 정도다.

박주가리의 갓익은 열매는 어린 시절 주전부리였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갓익은 열매를 따서 먹으면 씨앗이 될 부분은 아삭거리고, 씨앗을 날려줄 역할을 할 부분운 촉촉했다. 무어라 표현할 맛을 아니었으나 확실한 것은 '박주가리맛'이었다.
산오이풀 산오이풀이 피어났으니 어찌 가을이 아니랴! 산오이풀은 꽃몽우리 윗쪽부터 순서대로 꽃을 피운다. ⓒ 김민수
산오이풀,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눈맞춤은 올해 처음이다. 계곡 건너편 바위에 피어있었으며 바람도 제법 심했지만, 오랜만에 담아야겠다는 열정(?)으로 계곡을 건너 바위에 매달려 찍은 사진이다.

산오이풀이 무성지게 피어난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상상을 하곤했다. 물론 이슬이 송글송글 맺혀있어야 하고, 바람은 아직 일어나지 않아야 하며 햇살은 붉게 타오르며 떠야 한다. 장소는 대청봉쯤이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번 가을에는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이른데 그들을 만났으니 말이다.

피어나는 꽃을 보면 계절을 안다. 옛날에는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 시간과 계절을 가늠했다. 이젠, 아날로그를 넘어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는 그런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래도 꽃은 여전히 그들의 시계를 가지고 피어나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태그:#골무꽃, #산오이풀, #닭의장풀, #설악산, #한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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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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