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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일(國恥日), 건국절 프레임을 생각한다

[주장] 망국과 해방 사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16.08.27 18:34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왜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투쟁을 과소평가하고 국난 시 나라를 되찾고자 투쟁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지난 8월 12일 청와대가 주최한 독립유공자 및 유족과의 오찬 자리에서 아흔을 넘긴 광복군 출신의 김영관 선생은 건국절 제정을 추진하는 일부의 주장과 대통령을 향해 거침 없이 진심이 담긴 충언을 했다.
이 발언에 대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대본에 없던 돌발상황이었는지 뜬금없이 사드 배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 모두를 당혹하게 하였는데, 진심이 담긴 화답은 3일 뒤 광복절 축사에서 나왔다.  작년에 이어 다시 한번 '건국 68주년'을 또렷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국회부의장을 겸하고 있는 심재철 의원이 가세했다.  의원 연찬회, 방송 인터뷰 등을 통해 건국절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군불을 지폈다.  2003년, 2008년, 2014년 세 차례에 이어 또 다시 준비하고 있는 건국절 법제화 법안 발의.  수구세력의 상당수가 자유롭지 못한 친일과 독재에 대한 면죄부를 확실하게 하려는 의도가 하나라면, 이 논란을 좌우 이념대결의 프레임으로 만들어 지지세력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꼼수가 또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으려는 사려 깊음 때문인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대응은 여당처럼 조직적이지도 않고 문제를 대하는 결기가 느껴지지도 않는다.  국민 정서상 건국절 법제화는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비롯하는 여유인가?  그 말도 안 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얼마나 어이없게 이루어졌던가.  국정 교과서가 나오지 않은 지금도 이미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는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 대신에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사실상의 건국절 표현이 들어가 있다.  사안을 만만하게 보다가는 내년, 내후년이면 8월 15일 밑에 '대한민국 건국기념일'이라고 인쇄된 달력을 보게 될 것이다.

무명의 대한독립군 이름도 남기지 못한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존재를 기억해내는 것에서부터 건국절 프레임 깨기가 시작될 것이다.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에서 캡처) ⓒ 정수현

8월 29일은 국치일(國恥日)이다.  조선(대한제국)이 망했다.  공식적으로 문을 닫은 것은 1910년이지만 이미 그 이전에 망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무능한 왕실과 부패한 집권세력이 망할 만한 짓을 하고 매국노들이 나라 팔아먹기 경쟁을 하고 있을 때, 정작 나라로부터 외면받고 갖은 착취와 핍박의 대상이 되었던 민초들은 의병이 되어 총을 들었다.  깨어 있던 선각자들은 국경의 삼엄한 경계를 넘어 만주와 연해주 그리고 해외 각지에서 독립 투쟁을 위한 자금을 모으고 조직을 만들었으며,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을 하고 군대를 양성하였다.  국내 진공을 위한 무장투쟁을 준비하고 실행했다.  1919년의 독립선언과 만세운동 그리고 임시정부의 수립은 어느 순간 갑자기 툭 튀어 나온 것이 아니라 이런 기저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역사이다.  마찬가지로 1945년 해방은 원자폭탄 두 방으로 거져 주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전승국가들이 일본을 패퇴시킨 국제적인 요인이 물론 큰 것이지만, 나라를 찾고자 35년간 치열하게 싸워온 우리 스스로의 저력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봉오동 전투나 청산리 전투의 승리, 윤봉길 의사나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독립투쟁이라는 거대한 산맥에서 돋보이는 몇 개의 봉우리일 뿐이다.  해방 이후 꿈꾸는 조국의 모습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에 모든 독립투쟁세력이 하나가 되지 못한 것은 통탄할 일이었지만, 각자의 입장과 위치에서 일제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싸워온 의지와 열정은 '독립'이라는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소 냉전과 분단은 거대한 산맥을 전체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눈을 빼앗아 버렸다.  남한에서는 독립군 때려 잡던 친일파가 독립투쟁을 했던 사회주의자들을 때려 잡아도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고, 북한에서는 독립투쟁을 하던 민족주의자들은 반동으로 몰려 설 자리가 없었다.  한국전쟁은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더욱 고착화시켰고, 남북 어디에서도 민족사 전체의 관점으로 독립운동사를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그렇게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잊혀지고 버림받고 은폐된 독립투쟁과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가 얼마인가?  이회영 선생과 신채호 선생이 아나키스트였다는 사실은 알아도 정작 독립운동의 큰 축이 되었던 아나키즘의 이론과 투쟁의 성과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대종교와 나철 선생을 일제시대 생긴 단군을 숭배하는 종교 정도로 이해하지 민족주의 무장투쟁세력으로서 당시 가졌던 입지와 업적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분단이데올로기 때문에 독립운동의 또 다른 축이었던 국내외 사회주의세력의 대일 투쟁의 역사와 성과를 객관적으로 조망할 기회 조차 우리는 갖지 못했다.

조선 후기 집권세력이었던 노론은 이미 망해버린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목숨 보다 중히 여겼다.  그 명분으로 자신들이 쥐고 있는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1948년 건국절을 내세우는 이들의 명분이 무엇이든 그것은 현재 그들의 기득권과 미래 권력을 위함이다.  사실 건국절은 뜬금없는 이야기다.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건국절을 만들어 기념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민족정서상 우리는 5천년을 이어온 하나의 역사공동체로서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와 남북 분단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건국절에 대한 반박의 논리는 자명하다.  대한민국 헌법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조금만 찾아보면 해방 정국의 관련 사료들로도 1948년 건국의 허구를 증명하고도 남음이다.  광복회 김능진 이사가 CBS와의 인터뷰에서 "건국절은 보수 대 진보의 논쟁이 아닙니다.  광복회 회원의 절반 이상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에 가까운 분들입니다"라고 밝혔듯이, 이 문제는 좌우논쟁보다 '민족vs반민족' 혹은 '독립vs친일'의 구도로 만들어 가기 쉬운 이슈이다.  정부여당의 공세에 야당이 표계산으로 주저하지 말고 결기있게 나서길 촉구한다.
그리고 1948년 건국 주장에는 35년 독립투쟁의 성과가 미미하기에 쉽게 덮어버릴 수 있다는 오만함이 깔려 있다.  1945년 해방까지 일제강점기 대일항쟁이라는 기준으로 이념이 아닌 민족해방의 눈으로 독립투쟁사 전체를 인정하고 복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독립운동의 성과와 가치는 더욱 풍성하게 기억되고 자리매김 될 수록 건국절 주장은 옹색해지기 마련이다.  8월은 국치의 달이자, 해방의 달이다.  또한 여전히 역사전쟁이 계속 되고 있는 달이다.  망국 이전부터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들이 투쟁, 단 한번도 정신적으로 일제와 그 주구들에 굴복한 적이 없었던 뜨거운 가슴으로 건국절 프레임에 당당히 맞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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