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마치 공기와 같아서 매우 만연하지만 손에 잡히지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인지되지도 않는다. 또한 이들의 존재는 아는 사람만 안다. 차별과 혐오는 보편적이지 않다. 그것을 겪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때문에 여기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들은 그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혹은 부정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명백히 안다. 간극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 성차별 문제를 놓고 당사자인 친구에게 어떤 느낌이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 마치 유령이 내 몸에 붙어있는것 같아. 나는 아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니라고 하지."

차별과 혐오라는 유령

 유령 사냥꾼으로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들의 모습이다.

유령 사냥꾼으로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들의 모습이다. ⓒ 컬럼비아 픽처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얼마전 개봉한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를 보며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떠올랐다. 가령 주인공들 중 한 사람인 에린의 사연을 들어보자. 그녀는 어린 시절 옆집 할머니가 죽어 유령이 되고, 그녀가 매일 밤마다 자신을 찾아오는 사건을 겪는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리지만 가족들 조차 믿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을 가게 되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유령 소녀'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하지만 또 다른 주인공인 애비는 그녀를 믿어주었고, 이후 두 사람은 유령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의기투합하게 된다.

물론 네 명의 고스트 버스터즈들이 모두 모이고, 실제로 유령을 포획한 이후에도 세상은 그녀들을 믿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이룬 업적은 부정되고 그녀들은 사기꾼으로 몰린다. 이 지점에서 나는 지금의 한국 사회와 영화가 묘하게 겹쳐보였다. 일련의 사건 이후 여성들은 차별과 혐오 위에 서있는 스스로의 위치를 인지하게 되었고,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부당한 일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통계와 연구 자료까지 들고와 자신의 경험이 단지 개인적인 일이 아님을 입증했다. 하지만 사람들, 특히 남성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차별과 혐오는 없다'가 아니었는가. 오히려 이들은 지금은 여성들이 더 살기 편한, '여성 상위 시대'라는 괴랄한 주장까지 펼쳤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영화 속에는 고스트 버스터즈가 거짓말을 꾸민다고 주장하는 캐릭터 '마틴'이 등장한다. 그가 주인공들의 사무실에 찾아와 주인공들을 일을 놓고 비아냥거리자, 애비는 그에게 가만히 앉아서 남이 하는 말로 훼방만 놓는다고 응수한다. 그렇다. 마치 고스트 버스터즈들이 뉴욕을 구르고 뛰며 귀신을 찾는 동안 이 캐릭터가 뉴스에 나와서 입으로만 떠든 것 처럼, 남성들은 일상 속 차별을 발견하려 하거나 그것에 대해 공부해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남성으로서 이들은 차별이나 혐오에 마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겪지 않았으니 존재를 알리도 없고, 그러니 공부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과 이들에게 여성 차별과 혐오는 더욱 보이지 않게 된다. 이러니 떠먹여 주다시피 알려줘도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더이상 유령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유령을 사냥중인 고스트 버스터즈의 모습이다.

유령을 사냥중인 고스트 버스터즈의 모습이다. ⓒ 컬럼비아 픽처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영화 속 주인공들의 반응이다. 애비는 다른 유령 사냥꾼들에게 저런 이야기들에 신경쓰지 말고 우리의 일에 매진해 유령의 존재를 입증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주저 앉거나 절망하지 않고 정말로 그렇게 한다. 때문에 나는 이 영화가 성별에 기반한 차별과 혐오가 부정되고,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비아냥을 마주하는 현실에 매우 힘있는 답변을 했다고 생각한다.

맞다. 그런 바보같은 말들은 신경쓰지 말자. 더 공부하고 관찰해서 입증하자. 사실 많은 이들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차별이 없나? 내가 살기 편한가?'라고 생각하고 주저하지 않는다. 최근 여성학 도서의 판매량이 급증한 현상은 이러한 상황의 방증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속 또 다른 흥미로운 캐릭터는 악역인 '로완'이다. 그는 사람들의 무시와 따돌림 속에서 악의를 품고, 귀신들을 풀어 도시를 위험에 빠트리고자 한다.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음에도,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노력하는 주인공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처한 현실을 개선하려 하거나 혹은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관찰하고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날 무시한 너희들은 나쁘고, 그러니 세상을 망가뜨리겠다는 식이다. 사실 이러한 그의 캐릭터는 한국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를 생산하는 남성들과 묘하게 겹치는 구석이 있다.

가령 '김치녀'나 '된장녀'와 같은 말들을 살펴보자. 이것들이 말하는 것이 결국 무엇인가. 한국 여성들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사치가 심해서 돈 많은 남성들을 선호하고, (자신과 같은) 평범한 남성들은 무시한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모든 혐오가 그렇듯 이 같은 표현들은 막연한 편견에 기대어 있다. 실체가 없는 것이다. 마치 유령처럼 말이다.

영화 속 로완이 도시 귀신을 풀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처럼, 이 비루한 남성들도 'OO녀'라는 유령을 만들어 퍼트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변했다. 그 유령들을 두려워하고 움츠러 들지 않는다. 고스트 버스터즈들처럼, 이제 사람들은 그 유령을 잡을 줄을 안다. 여성혐오에 대항하는 최근의 움직임들이 바로 그 사례다.
 주연을 맡은 멜리사 맥카시의 트위터에 업로드 된 사진. 여성 스태프들과 'Girl Power'라는 문구가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주연을 맡은 멜리사 맥카시의 트위터에 업로드 된 사진. 여성 스태프들과 'Girl Power'라는 문구가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 멜리사 맥카시의 트위터


때문에 나는 <고스터 버스터즈>가 단지 여름용 블록버스터나 단순한 코메디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사람들을 위한 훌륭하고 감동적인 임파워링(Empowering) 영화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며 영감과 힘을 얻으리라 생각한다. 멍청한 소리는 신경쓰지 말자.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자. 치열하게 공부하고 관찰하자. 그러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도 사회도 변화한다.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가자. 그러나 혼자서 갈 필요는 없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같은 지향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연대해 함께 가자.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고스트 버스터즈 여성주의 임파워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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