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 고(故) 로빈 윌리엄스의 추모 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와 <굿 윌 헌팅>이 극장에서 재개봉했다. 재개봉 일주일 만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와 <굿 윌 헌팅>은 각각 관객 수 3만 명, 2만 명을 돌파했다. 그만큼 관객들은 두 영화의 재개봉에 뜨겁고 열렬하게 응답한 것이다. 지난 2015년 극장가에 재개봉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재개봉 영화 최초로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재개봉한지 18일 만에 20만 명을 넘어섬으로써 개봉 당시 관객 수 약 17만 명을 거뜬히 추월했다. (2015년 11월 5일에 재개봉된 영화는 이듬해 5월 15일까지 전국 49만 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처럼 관객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받은 영화들이 재개봉이라는 이름으로 극장가에 소환되어 흥행의 역사를 새로 쓰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영화 업계에서는 이미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영화이므로 홍보의 부담이 적고 기존의 필름 영화를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재개봉하므로 비용대비 효과가 좋으며 재개봉된 영화의 경우 IPTV, VOD 등 부가판권 시장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른바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영화의 재개봉을 추진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와 배우를 극장에서 만날 기회를 놓쳤던 아쉬움을 달랠 수 있고, 작품성보다는 상업적 흥행에 기울어진 최근 영화계에 대한 피로감을 덜고 다양성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재개봉은 반길만한 일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자신의 독특한 신념을 믿어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재개봉 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재개봉 했다. ⓒ 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우리 사회의 교육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교육이 나아가야 할 이상과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이다.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존 키팅 선생은 교육자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흠모의 대상이자 닮고 싶은 롤모델이었다. 그와 같은 멘토를 만났다면 우리의 인생도 지금과는 조금쯤 달라져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만들기도 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영화를 꼭 교육의 관점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존 키팅의 수업 장면을 통해 그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다 보면 그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삶의 방식 즉,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키팅이 강조했던 라틴어 'Carpe Diem'은 'Seize the day(현재를 즐겨라)'라는 의미로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말이다. 키팅은 'Carpe Diem'을 통해 무엇보다 학생 개개인의 열정과 내면의 가치를 일깨우고, 시의 가치와 아름다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성을 깨닫게 하는 한편, 획일화를 거부하고 전통에 도전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의 고유함을 믿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저마다 독특한 삶을 살도록 독려했다.

영화는 키팅의 목소리를 단지 교육의 장에서 풀어놓았을 뿐, 그의 가르침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닿아 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영화를 통해 각자의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말이다. 키팅이 건넨 이야기 중에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을 하나 옮겨본다.

자신만의 길을 가라

 키팅이 학생들에게 타인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기 위해 세 명의 학생들에게 마음대로 걸어 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 명의 학생들은 처음엔 제멋대로 걷다가 나중엔 발을 맞춰 걷게 된다.

키팅이 학생들에게 타인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기 위해 세 명의 학생들에게 마음대로 걸어 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 명의 학생들은 처음엔 제멋대로 걷다가 나중엔 발을 맞춰 걷게 된다. ⓒ 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일체감이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한 거다. 즉,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여러 분 중, 나라면 다르게 걸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대답하라. '왜 나도 손뼉을 쳤지?'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신념이 독특하고 나 자신의 소유임을 믿어야 한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이상하다거나, 인기 없다거나, 심지어 '나쁘다'고 생각하더라도. 로버트 프로스트는 말하길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했다. 이제부터 여러분도 자신만의 길을 찾길 바란다. 자신만의 걸음걸이와 속도로. 어떤 방향이든지, 무엇을 원하든지. 그것이 자랑스럽든, 어리석든, 무엇이든지."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신념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신념은커녕 생각조차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때가 많다. 타인의 인정에 연연할 때도 있고,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 조심스러울 때도 있다. 타인의 비난이 두려워 자신의 신념을 숨기기도 한다. 남들이 네 생각은 틀렸다고, 잘못된 생각이라고 몰아세우면 굳은 신념조차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키팅은 누가 뭐라고 하든 '나의 신념이 독특하고 나 자신의 소유임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가 '자신만의 길을', '자신만의 걸음걸이와 속도로' 나아가길 바란다. 키팅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멘토인 것이다.

영화는 닐(로버트 숀 레오나드)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통해 학력 위주의 학교 풍토와 자녀의 삶의 방향을 미리 설정해주는 부모의 과욕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닐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학교를 떠나게 된 사람은 키팅이다. 학생들을 위해 참교육을 실천했던 키팅이 오히려 학생을 부추기고 헛된 일에 집착하게 함으로써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결과일 뿐이다. 닐의 죽음은 비극적이었으나 그 이면엔 닐이 처음으로 하고 싶어서 선택한 연극을 통해 맛본 삶의 자유와 열정을 아버지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한 극단적인 저항의 의미가 담겨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키팅이 교실을 떠나려 하자 토드를 비롯한 다수의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올라가 키팅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장면이다. 학생들의 눈빛과 몸짓, "오 캡틴 마이 캡틴!"이라는 부름 만으로 스승과 제자가 깊은 마음을 나눴음을 감동적으로 보여준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키팅이 교실을 떠나려 하자 토드를 비롯한 다수의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올라가 키팅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장면이다. 학생들의 눈빛과 몸짓, "오 캡틴 마이 캡틴!"이라는 부름 만으로 스승과 제자가 깊은 마음을 나눴음을 감동적으로 보여준 장면이기도 하다. ⓒ 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부모와 교장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키팅에게 책임을 돌리는 진술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던 토드(에단 호크)와 녹스(조쉬 찰스) 등의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자신들의 생각과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했으나 그 이면엔 키팅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한 자책과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토드가 진실의 목소리를 털어놓으며 책상 위에 올라가 외치는 "오, 캡틴 마이 캡틴!" 으로 승화된다. 학생들이 하나 둘씩 책상 위에 올라가 키팅을 똑바로 응시하는 장면은 단지 영화적 감동을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스승에 대한 믿음과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온몸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영화는 비극적인 결말을 맺었지만 키팅의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영화 밖에서나마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굿 윌 헌팅>, 공감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다

  영화 <굿 윌 헌팅> 재개봉 포스터 속 두 배우의 모습이 새롭다.

영화 <굿 윌 헌팅> 재개봉 포스터 속 두 배우의 모습이 새롭다. ⓒ 브에나 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영화 <굿 윌 헌팅>은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났으나 청소부 등 일용직 일을 전전하며 다소 비뚤어진 태도를 보이는 윌(맷 데이먼)이 숀 교수(로빈 윌리엄스)를 만나 서서히 마음을 열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함께 각본을 쓰고 각각 주연과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숀 교수 역할의 故로빈 윌리엄스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는 초반부에 대학 교수조차 풀기 어려운 수학 문제를 거뜬히 풀어내는 윌의 천재성을 부각시키지만 정작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윌의 불안한 내면심리다. 윌의 천재성을 알아본 램보 교수(스텔란 스카스가드)로 인해 심리 치료를 시작하게 된 윌은 자신을 치료하려는 이들을 비웃거나 조롱할 뿐, 자기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는다. 숀 교수와의 첫 대면에서도 숀이 그린 그림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그의 배우자를 모욕하는 등 무례하게 굴어 숀을 화나게 한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숀은 윌을 치료하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이 꽤 흥미롭다.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들은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뭐든 이야기를 해보라고 한다.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끌어내라는 것이다. 치료를 받거나 상담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찾아왔더라도 선뜻 자기 내면의 상처와 고통을 드러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숀은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윌에게 접근한다.

첫 만남에서 윌의 무례함에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의 고통을 떠올리게 된 숀은 윌이 뛰어난 천재성을 지녔다 할지라도 실제적인 삶과 관계에 대해서는 무지할 뿐만 아니라 책 속의 지식을 통한 앎과 오만한 태도로 자신을 방어할 뿐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에서 이를 정확히 지적한다.

실제적인 삶과 진정한 관계를 체험하라

 두번째 만남에서 숀이 윌에게 자신의 삶과 상실의 경험에 대해 진솔하게 털어놓는 장면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늘어놓으며 자기를 숨기려는 방어적인 윌에게 숀은 윌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두번째 만남에서 숀이 윌에게 자신의 삶과 상실의 경험에 대해 진솔하게 털어놓는 장면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늘어놓으며 자기를 숨기려는 방어적인 윌에게 숀은 윌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 브에나 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사랑에 관해 물으면 한 수 시까지 읊겠지만 한 여인에게 완전한 포로가 되어 본 적은 없을걸. 눈빛에 완전히 매료되어 신께서 너만을 위해 보내주신 천사로 착각하게 되지. 절망의 늪에서 널 구하라고 보내신 천사. 또한 한 여인의 천사가 되어 사랑을 지키는 것이 어떤 건지 넌 몰라. 그 사랑은 어떤 역경도 암조차 이겨내지. 죽어가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두 달이나 병상을 지킬 땐 더 이상 환자 면회 시간 따윈 의미가 없어져. 진정한 상실감이 어떤 건지 넌 몰라. 타인을 네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 느끼는 거니까. 누굴 그렇게 사랑한 적 없을걸?"

"내 눈엔 네가 지적이고 자신감 있기보다 오만에 가득한 겁쟁이 어린애로만 보여. 하지만 넌 천재야. 그건 누구도 부정 못해. 그 누구도 네 지적 능력의 한계를 측정하지 못해. 근데 그림 한 장 달랑 보곤 내 인생을 다 안다는 듯 내 아픈 삶을 잔인하게 난도질했어. 너 고아지?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고 네가 뭘 느끼고 어떤 앤지 올리버 트위스트만 읽어보면 다 알 수 있을까? 그게 널 다 설명할 수 있어? 솔직히, 젠장! 그따위 난 알 바 없어. 어차피 너한테 들은 게 없으니까. 책 따위에서 뭐라든 필요 없어. 우선 네 스스로에 대해 말해야 돼. 자신이 누군지 말야. 그렇다면 나도 관심을 갖고 대해주마.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지? 자신이 어떤 말을 할까 겁내고 있으니까. 네가 선택해, 윌."

숀은 자신의 실제적 삶과 상실의 경험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윌에게 다가가기 위해, 윌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자신의 속내를 먼저 꺼내 보인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한 숀의 태도는 윌의 마음을 서서히 움직인다. 숀이 그러했듯 누군가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열어 보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치료나 상담의 목적으로 타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문제가 뭔지 내가 완벽하게 분석하고 치료해 줄 테니 어떤 말이라도 해보시오.'라는 고압적인 자세보다는 누구에게나 고통과 상처의 경험이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타인의 불안한 내면 심리를 이해함으로써 그 자신이 스스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숀은 윌을 기다려 주었고, 윌이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그리고 윌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끌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는 일

 숀이 윌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만큼 손꼽히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윌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진 건 숀이 보여준 공감의 태도였다.

숀이 윌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만큼 손꼽히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윌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진 건 숀이 보여준 공감의 태도였다. ⓒ 브에나 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숀이 윌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만큼 손꼽히는 장면이다. 우리가 타인에게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공감일 것이다. 공감이란 타인이 나와 같은 경험을 했거나 나의 입장이 되어서 나의 감정을 헤아려 주는 일이다. 양부에게 학대받고 파양 당했던 경험은 윌에게 자신이 학대받고 버림받을 만큼 뭔가를 잘못했거나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서 그런 일을 겪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스카일라(미니 드라이버)가 캘리포니아로 가자고 했을 때 윌이 불안해했던 모습이나, 윌이 감췄던 진실을 궁금해하는 스카일라에게 고아인 자신의 처지와 양부에게 학대받은 경험을 말하며, 이게 정말 알고 싶은 거냐고 묻는 윌의 거친 태도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런 윌의 마음을 어루만진 건 숀이 보여준 공감의 태도였다.

스카일라를 만나기 위해 떠난 윌은 결국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았을까? 책 속의 지식과 타인의 사유에 근거한 앎으로 오만하게 굴었던 윌은 마침내 실제적인 삶과 현실에 직접 부딪쳐 보고 타인과의 깊은 관계 맺음을 통해 삶의 진정한 가치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을까? 그러길 바란다. 윌에게 펼쳐질 두 번째 인생이 우리에게도 위로가 되는 까닭이다.

인생에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경험이나 생각, 감정 등이 타인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나의 처지에서 한번쯤 생각해주면 좋으련만, 대화는 늘 일방통행으로 흐르기 마련이고, 결국 각자 자신의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버리고 마는 대화는 소통의 단절을 느끼게 할 뿐이다.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 이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을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타인을 또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싶다. 내가 이해와 공감을 바라는 만큼 타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우리의 삶에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감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더불어 숀이 윌에게 이야기했던 실제적인 삶과 진지하고 깊은 인간관계를 통해서만 삶의 진정한 가치와 관계의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윌처럼 내면의 상처와 고통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길 두려워하며 진짜 삶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한 물음표를 던지면서 말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각자의 해답이 있을 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마지막 장면으로 제자들의 마음에 감동한 키팅의 눈빛과 미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는 우리의 곁에 없지만 그가 남긴 영화를 통해 우리의 마음 속에 그는 영원한 멘토로 자리하고 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마지막 장면으로 제자들의 마음에 감동한 키팅의 눈빛과 미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는 우리의 곁에 없지만 그가 남긴 영화를 통해 우리의 마음 속에 그는 영원한 멘토로 자리하고 있다. ⓒ 드램팩트 엔터테인먼트


故로빈 윌리엄스가 우리 인생의 멘토로 등장하는 이 두 편의 영화는 몇 번을 다시 봐도 우리의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준다. 이들 영화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우리에게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성찰할 기회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값싼 위로나 힐링이 아닌, 우리 삶의 중요한 가치와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기에 인간성을 점차 상실해가는 이 시대에 이 두 편의 영화가 더욱 묵직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게 아닌가 싶다.

흔한 말로 우리의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한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얼굴을 갖고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사는 까닭에 설령 정답이 있더라도 그 정답이 누구에게나 유효한 것은 아닐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맞는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를 말이다.

이 두 편의 영화가 故로빈 윌리엄스라는 배우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삶에 대한 메시지는 누군가에겐 답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의 인생은 완성해야 하는 무엇이 아니라 언제나 완성을 향해 가는 그 과정 속에 있기에 우리가 하는 모든 경험은 우리의 삶의 과정에 밑거름이 되리라고 믿는다. 끝으로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숀이 윌에게 한 말을 덧붙인다. 완벽하지 않은 우리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니까. 너도 완벽하진 않아. 기대를 망치게 돼서 미안하지만 네가 만났다던 그 여자애도 완벽하진 않아. 중요한 건 과연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한가 하는 거야. 남녀관계란 바로 그런 거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진주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chongah7)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로빈 윌리엄스 죽은 시인의 사회 굿 윌 헌팅 맷 데이먼 벤 애플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