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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효자

정치도 이를 본받는다면
16.08.27 06:3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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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도 같았다. 어쩜 그렇게 불과 하루 사이에 기온차가 이렇게나 심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여전한 찜통더위로 말미암아 짜증은 물론이요 밥맛조차 잃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밥까지 굶었다간 가뜩이나 기진맥진한 심신이 어찌될지 모를 일이었다. 하여 얼추 의무감에서 밥을 냉수에 말아 대충 먹긴 했으나 맛이 있을리 만무였다. 그러던 중 어제 아침이 되니 마침내 빗소리가 들렸다.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창문을 여는 것도 모자라 아예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곤 흡사 미친 놈마냥 비를 맞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마치 절치부심 끝에 탈옥한 뒤 축복의 비를 맞는 외화 '쇼생크탈줄'의 주인공처럼. 그 비는 어제 오전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폭염은 서둘러 달아났고 그 자리를 선선한 가을바람이 채웠다. 야근을 하려고 오후 3시에 집을 나섰는데 제법 쌀쌀하기까지 한 기온으로 치환되어 있었다. 그러자 행인 중엔 춥다고 엄살을 부리는 이도 있었는데 하지만 결코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한두 방울 잔여 비가 내리긴 했지만 일부러 그 비를 맞으려고 우산은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비(雨)의 종류엔 먼저 '는개'가 있는데 안개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 보다 조금 가는 비다. '먼지잼'은 겨우 먼지나 일지 않을 정도로 조금 오다 마는 비를 뜻한다.

'목비'는 모내기 할 무렵 내리는 비고, '웃비'는 좍좍 내리다 잠깐 그쳤으나 아직 비가 올 듯한 기색이 있는 비를 의미한다. '여우비'는 볕이 난 날 잠깐 뿌리는 비이며, '모다기비'는 한꺼번에 쏟아지는 비, 즉 집중호우다.

이밖에 '발비'는 빗줄기가 발처럼 보이는 비이며, '작달비'는 굵직하고 거세게 퍼붓는 비를 말하는데 지독한 가뭄 뒤에 찾아오는 이 비는 진정한 효자에 다름 아니다. 이 비가 내리기 전 우리나라는 일제히 사상유례가 없는 가뭄과 폭염에 시달렸다.

오죽했으면 전국각지에선 솔선수범한 기우제까지 열렸을까! 기우제와 연관된 뉴스를 보면서 '일부함원오월비상(一婦含怨五月飛霜)', 즉 여자가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그조차 마다치 않을 심산으로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이었다. 왜냐면 그렇게라도 해서 기온이 내려가고 서리로 말미암아 발생되는 수증기가 녹으면 그게 바로 물(水)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간절한 인간의 기우제가 하늘까지 움직였는지 기온이 급변했다. 덩달아 비까지 내려주어 전기료 폭탄에까지 신음하던 국민들을 모처럼 활짝 웃게 했다. 필자의 글을 유심히 보신 독자라면 잘 아는 상식이 하나 있을 터.

그건 바로 나는 비를 극진하게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과거 소년가장 시절에 우산장사를 하면서 비에 대한 감사함을 터득한데서부터 기인한다. 가뭄으로 인해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졌던 논과 밭에도 모다기비가 쏟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그 상처가 봉합된다.

따라서 효자도 그런 효자가 없는 셈이다. 즉 비는 '진정한 효자'라는 주장이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건 상식이다. 올 여름 지독한 가뭄과 타는 목마름 그 이상의 고통을 겪으며 새삼 터득하게 된 상식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인간이 제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정작 하늘이 외면하면 농사고 뭐고 죄 망치기 십상이라는 사실이다. 눈물을 참는다는 건 엉엉 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농사가 바로 그 축에 든다. '생떼 같은 자식을 잃었다'는 말이 있다.

이는 '생떼(한국의 잔디)'처럼 튼튼하고 건강하던 자식을 잃었다는 의미인데 농사 역시 마찬가지다. 자식처럼 애지중지했던 논과 밭작물이 말라 죽고 양식으로 고이 기른 물고기들까지 집단 폐사할 때 농.어부의 심정은 과연 그 얼마나 괴롭고 또한 처절했을까!

진정한 효자인 비가 내림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활기와 더불어 기사회생의 전기까지 마련되었다. 우리의 구태의연한 정치도 이를 본받는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덧붙이는 글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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