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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따가운 햇살이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아내와 나는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립니다.

나락모가지가 올라온 벼논은 누릇누릇 가을색깔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풍요로움을 앞둔 들판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가지고 올까?

우리는 들길을 지나 길게 뻗은 하천 둑길로 들어섰습니다. 하천 주변은 그야말로 풀숲을 이뤘습니다. 하천은 물이 흐르는 곳이지만, 여기에 많은 생명체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풀숲에서는 청아한 풀벌레소리가 귀를 즐겁게 합니다. 풀벌레소리는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녀석들은 가을을 부르는 전령사들이니까요. 더위가 한풀 꺾일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한참을 달리는데, 무성하게 자란 줄 잎사귀가 바람에 스쳐 소리를 냅니다.

앞서 달리는 아내가 말을 겁니다.

"바람소리 들려요?"
"줄 잎사귀가 비비적거리는 소리 말하는 거지!"
"그래요. 쓰사삭 쓰사삭!"
"자연의 소리가 바람 소리로 들리네!"

빽빽하게 들어찬 줄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아내는 "스사싹 스사싹"이라 표현합니다. 그럴 듯합니다.

와! 무슨 새 떼가 전깃줄에?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데, 아내가 자전거를 멈춥니다.

하천 둑길 전봇대 전깃줄에 앉아있는 엄청난 숫자의 제비떼를 만났습니다.
 하천 둑길 전봇대 전깃줄에 앉아있는 엄청난 숫자의 제비떼를 만났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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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저 건너편 전봇대 전깃줄 좀 봐."
"전봇대는 왜?"
"저기 안 보여요? 점 점 점... 작은 새떼들!"
"그러네! 무슨 새들인데 저렇게 많이 모여 있지?"
"참새뗀가?"
"아냐? 참새떼 같으면 되게 시끄러울 텐데 조용한데."

'어떤 녀석들일까?' 우리는 녀석들한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로 했습니다. 다리를 건넜습니다. 자전거에서 내려 살금살금 접근합니다. 녀석들은 우리를 못 본 듯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야 수많은 녀석들의 정체가 한눈에 드러납니다.

전깃줄을 수놓은 제비떼.
 전깃줄을 수놓은 제비떼.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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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정연한 모습의 제비떼의 모습입니다.
 질서정연한 모습의 제비떼의 모습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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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녀석들, 제비떼 아냐?"
"맞네! 와! 어떻게 저렇게도 많이 전깃줄에 앉아있지?"
"그러게! 몇 마리나 될까? 수백 아니 수천 마리?"
"아무튼 엄청나! 제비 정말 오랜만이야!"
"녀석들, 어디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마실 나왔을까?"

제비들이 전깃줄에 앉아있습니다.
 제비들이 전깃줄에 앉아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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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깃줄에 점점이 앉아있는 제비떼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참 오랜만에 보는 제비입니다. 몇 마리씩 어쩌다 마주치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제비떼를 한꺼번에 보기는 처음입니다. 제비들은 더위에 지친 듯 거의 움직임이 없습니다.

"녀석들, 땅에서 쉬지, 전깃줄에 나란히 나란히 모여 있을까?"

한쪽으로 고개를 돌린 제비들의 모습이 한가로워 보입니다.
 한쪽으로 고개를 돌린 제비들의 모습이 한가로워 보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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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제비들이 전깃줄에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게 신기한 모양입니다. 질서정연하게 편안한 자세로 쉬고 있습니다.

제비는 보통 땅에 앉아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둥지를 만들 재료를 구할 때나 땅에 앉고, 걸어 다니는 행동은 잘 목격되지 않습니다. 제비는 날개가 길고 뾰족한 유선형 몸매를 가져 나는 데는 선수이지만, 다리가 작고 약해 신체구조상 잘 걷지 못한다고 합니다.

뙤약볕 햇살에 전깃줄에 앉아있는 이유도 제비의 신체구조에서 찾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 흔했던 제비들은 지금은?

오랜만에 만난 제비떼가 무척 반갑습니다. 나는 반가움에 연신 셔터를 누릅니다. 혹시 인기척에 내빼지 않도록 발자국에 숨을 죽입니다.

녀석들의 얼굴을 좀 더 예쁘게 담을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점잖게 앉아있어 다행입니다. 휴대폰으로 줌을 최대한 당겨 찍어봅니다.

한가로운 제비.
 한가로운 제비.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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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제비는 정말 흔한 새였습니다. 초가지붕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사람과 친숙하게 살았습니다. 집주인은 제비집 아래 판자를 대주기도 했습니다. 똥도 받아내고, 혹시라도 새끼들이 떨어질세라 보살펴주었습니다. 어찌 보면 사람과 제비와는 한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제비는 여름철새로 따뜻한 새봄 3월께 우리나라에 날아와 10월까지 머물다 갑니다. 따뜻한 남쪽나라로 돌아갈 때까지 사람 주변에서 맴돌았습니다. 진흙과 지푸라기 등으로 둥지를 만들고, 1년 두어 번 산란하였습니다.

하천의 풀숲은 제비들의 새로운 서식지입니다.
 하천의 풀숲은 제비들의 새로운 서식지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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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들이 요즘 사람 곁을 떠난 것을 실감합니다. 집 근처에서 좀처럼 제비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제비집을 지어 새끼 치는 일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제비 개체수가 줄어든 게 분명합니다. 80년대로 기준으로 90%이상 줄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비의 개체수가 줄어든 데는 많은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예전 처마 밑과 같은 번식환경이 나빠진 것도 원인일 테고, 먹이가 줄어든 것도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맹독성 농약의 살포로 먹이가 되는 벌레나 곤충이 줄고, 그에 따라 제비의 수도 감소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궁금한 게 있는지 내게 묻습니다.

"여보, 제비가 왜 여기에 모여 있을까?"
"글쎄, 하천 풀숲이 녀석들한테 좋은 환경인가 보지!"

전봇대 전깃줄에 점점이 앉아 있는 제비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전봇대 전깃줄에 점점이 앉아 있는 제비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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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보통 번식을 마치면 둥지를 떠나 주로 하천 갈대밭이나 풀숲 등에 잠자리를 만들고, 해 떨어지기 전에 일제히 모여든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가 목격한 곳을 보니 하천 풀숲이 녀석들에게 좋은 보금자리가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사람 곁을 떠나고, 개체수가 줄어든 제비떼를 만나 반갑기도 하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제비가 귀소본능이 뛰어난 거 알지? 여기 있는 녀석들 강남으로 갔다가 내년 우리나라 환경이 좋아졌다면서 꼭 찾아오면 좋겠어! 식구들 많이 늘려가지고 말이야!"


태그:#제비, #하천 풀숲, #제비 개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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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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