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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걸까? 아이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엄마가 되고, 아픈 어머니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딸이 되고, 자신조차 지키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가 되면서까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걸까?" - 드라마 <욱씨남정기> 중에서

육아, 살림, 직장, 늙고 아프신 부모님…. 누가 시켜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닌데 문득 맞벌이 워킹맘의 삶, 그 하루하루가 힘들고 버겁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출 준비를 하고 급히 나갈 타이밍에 아이가 똥을 누구나 토해서 다시 옷을 벗기고 갈아입혀야 하는 상황이 닥치곤 합니다. 아침 출근이 늦었는데, 혹은 주말 출근 시 아이가 회사에 가지 말라면서 떼를 씁니다. 주말마다 아침을 힘겹게 먹이고 돌아서면 점심을 차려야 하고, 점심 먹고 한시름 돌리나 싶으면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가오는 등 종일 밥을 차리고 치우다가 하루가 끝나버리는 일상이 반복되곤 합니다.

반갑고 애틋한 마음에 퇴근을 서두르지만 대문을 열자마자 난장판인 거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하필이면 한창 싸우고 있는 쌍둥이 남매의 모습이 보이면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돌봄 이모님의 퇴근시간에 맞춰 저도 사무실에서 퇴근을 하고 교대해야 하는데, 급작스러운 임원 보고자료를 작성해야 한다든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시간이 지체될 때, 업무 시간 이후에도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린다든가…. 그런 일상들로 매일 숨 쉬고 있는 것조차 무겁다고 느껴질 때가 잦습니다.

그래도 회사일은 어른 사람들과의 일이고 노력하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기도 합니다만 육아는 때로는 말도 안 통하는 아이 사람과의 일이라 노력하는 만큼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대개의 워킹맘들이 육아가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는 회사일보다 훨씬 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밥을 입에 떠 넣어준다고 해서 삼키게 만들 수도 없고, 쉬고 싶다고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외출 역시 자유로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아이가 아프다면 당장 오늘 밤에 제대로 숙면할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하죠.

반복되는 삶의 쳇바퀴... 무너지는 자존감

이 시대의 워킹맘들은 너무나도 많은 역할을 요구받습니다.
 이 시대의 워킹맘들은 너무나도 많은 역할을 요구받습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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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엄마로 지내면서 이런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면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되고, 그런 느낌은 자존감뿐만 아니라 엄마로서의 효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점입니다.

통제 불가한 무기력은 스트레스, 분노를 불러오고, 그것은 결국 나와 가족에게 표출됩니다. 그럼 서로가 불행해지는 거죠. 특히나 가사, 육아, 회사일, 가족의 안위 등 일상에 관계된 안 좋은 일은 머피의 법칙처럼 한꺼번에 몰아닥치더군요. 이렇게 통제 불가능한 시간이 흐른다는 게 아깝기도 하고, 주도권을 상실한 내 생활이 계속 이어지면서 한 해 한 해 흘러가는 걸 보면 인생이 참 아깝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불임으로 6년간 애쓴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이를 건강하게 낳기만 하면 좋겠다던 바람과 달리, 아이가 태어나자 언어의 소통, 유치원 입학, 초등 입학 등의 여러 고비들이 있었습니다. 각각의 고비들은 이번만 넘기면 끝일 것 같지만 아이의 성장에 따라 또다시 다른 문제들이 계속 나타나게 됩니다. 회사일과 더불어 양쪽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계속될수록 늘 지금이 인생의 바닥인 것 같은 절박함에 일과 육아에 대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요?

워킹맘을 유지하려는 의지 아래에는 나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독립적인 여성이 돼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사주고,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습니다.

제가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기에 부모가 되면 내가 누리지 못한 것들을 아이들만큼은 누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것 저것 완벽히 해낼 수 없어서 직장을 다니며 집안일, 아내 노릇, 엄마 노릇, 며느리 노릇, 딸 노릇까지 해내느라 저는 늘 예민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외쳤지만 엄마만큼도 못한 엄마가 되어버린 저를 발견하고 한숨을 쉬게 되네요.

시간이 지나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로서 도와주는 일이 덜 힘들어지고 어느 순간에는 엄마를 귀찮아 하는 아이를 보며 망연자실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 고군분투하며 직장생활과 육아를 유지하다가 조직의 구조상 어쩔 수 없이 이른 퇴직으로 집에 머무르게 되고, 정작 아이가 엄마의 손이 필요 없게 될 때 본격적으로 뒷바라지하겠다며 아이와 다투다가 사이가 멀어지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주변에서 볼 수 있었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나이에 따라 느껴지는 삶의 가치 변화가 엄마로서의 역할, 직장에서 역할 변화를 자각하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아이를 키우는 오늘은 아이도 엄마도 처음 맞이하는 시간입니다. 직장의 업무와 달리 육아는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다른 점이긴 하죠. 그래서 서로 서툴고 힘든 것이 오히려 당연할 수 있는데, 엄마는 늘 아이에게 잘해주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모든 일들을 그대로 흡수해가며 하루하루 버텨내는 지금, 워킹맘으로서의 지금이 인생 최고로 열심히 살고 있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혹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워킹맘이란 지금의 저는, 직장인, 엄마, 아내, 며느리, 딸, 언니와 누나의 역할 모두를 다 해내느라 어쩌면 지금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인생 최대로 열심히 사는 기간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저 이렇게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최선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보겠습니다.

일과 육아, 둘 다 잘 할 필요는 없습니다. 혹은 일에서 자부심을 느껴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도록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찾아서 그것이 내 삶에서 가지는 비중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 그것만이 지금을 버텨낼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엄마, #워킹맘육아, #쌍둥이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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