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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의 장아무개씨가 라이언앤폭스와 정보자문을 맺은 계약서 일부
 국세청의 장아무개씨가 라이언앤폭스와 정보자문을 맺은 계약서 일부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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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25일 오전 11시 30분]

국세청이 국내 기업인 등의 해외 탈세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신분을 위장한 국세청 직원이 민간 정보 업체를 앞세워서 국내 기업인의 해외 금융자산 정보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집하는 등 민간인 불법사찰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미국전문조사대행업체인 라이언앤폭스의 김아무개 대표는 24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지난 5월과 6월 장아무개씨 등으로부터 국내 대기업 오너 가족의 미국 내 금융자산 등 정보제공을 요청받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하지만 이들이 요구한 정보 수준은 미국 금융정보보호법 등에 위배되는 것들"이라며 "이 같은 사실을 알렸지만, (이들은) 다른 나라에서의 (정보 수집)사례 등을 들어가며 불법적인 정보 수집을 종용해 왔다"고 폭로했다.

김 대표는 "뒤늦게 장씨 일행이 국세청 역외탈세담당관 소속 직원이라는 사실을 알게됐다"면서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제3의 가공인물로 (우리 회사와) 자문계약을 맺은 것 자체가 사문서 위조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세청의 불법적인 해외 정보 수집 활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정황도 포착됐다. 김 대표는 "장씨 등으로부터 'A국가에서 국내 기업인의 금융계좌 3개월치 입출금 내역과 잔고 등을 알아내는데 1억 원을 썼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이들로부터 제공받은 정보 내용과 형식 등도 사실상 불법"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법인이나 개인의 역외탈세 행위는 밝혀내서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불법적인 방식으로 조사가 이뤄질 경우 민간인에 대한 인권 침해는 물론 외교적인 마찰까지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김 대표는 장씨 일행의 불법적인 정보조사 의뢰를 거부하고, 국세청에 내부 감사와 공식적인 사과 등을 요구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

현금가방서 5만원짜리로 865만원 자문료 계산한 국세청직원 "영수증 필요 없다"

라이언앤폭스는 어떤 회사?
- 명함에 '구글이 모르는 미국정보'라고 돼 있던데, 라이언앤폭스는 주로 무슨 일을 다루나.
"말 그대로다. 미국에 있는 기업이나, 사람 등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조사해서 알려주는 일을 한다. 예를 들어 국내 기업인이 미국 현지 기업 등과 사업을 하기 전에, 해당 업체의 평판, 신뢰도 등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의 미국 내 재산 여부 등에 대한 정보를 요청해 오기도 한다."

- 그런 정보를 수집하려면 미국 내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해야 할 텐데(참고로 김아무개 대표는 전직 중앙언론사 기자 출신이다).
"물론이다. 예전 기자 시절에 미 국무부 출신 인사들을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됐고, 미국 현지 정보기관 출신 인사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그들과 소통하면서, 의뢰인의 정보 요구 등을 전달하고,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정보를 취합해, 재가공해서 전해준다."

- 국세청 직원들은 어떻게 이곳을 찾아왔나?
"지난 5월에 장아무개씨 등이 찾아왔다. 자신들은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 재력가 밑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대한항공 부회장을 지냈던 조중건씨 부부의 미국내 금융자산과 부동산 보유 내역 등 전반적인 재산 정보를 요구했었다."

- 그동안 대기업 오너의 재산 정보를 의뢰한 사람들이 있었나.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왜 이런 정보가 필요하냐'고 했더니, '우리도 시켜서 하는 일'이라며 제대로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5월에 자문 계약서를 쓰자마자, 5만 원권이 들어있는 가방에서 현금 865만 원(7500달러)을 곧바로 건네받았다. 내가 '영수증을 써 주겠다'고 했더니, '필요없다'고 하더라."

김 대표는 이후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면서, 이번 계약 수입의 10%에 해당하는 금액 86만 원을 세금으로 냈다고 했다. 그는 "한 달 후인 6월초에 조씨 부부에 대한 조사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건넸다"면서 "당시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조씨의 미국내 자산규모는 2400만달러, 약 266억 원 정도였다"고 말했다.

"266억 조사결과 내놨더니 '이보다 100배는 더 있을 것'이라며 실망"

국세청 직원이 내놓은 명함. 홍콩 등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진 않았다.
 국세청 직원이 내놓은 명함. 홍콩 등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진 않았다.
ⓒ 라이언엔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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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씨 일행이 조사 보고서에 만족했는가.
"(헛웃음을 지으며) 실망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오히려 나에게 '제대로 조사했나', '아마 이들 재산은 이것보다 100배 이상 더 있을 것'이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모든 정보를 다 알아내기란 쉽진 않다. 하지만 적어도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미국 내 파트너들로부터 최대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수집한 것이다."

- 그리고 또 다른 기업인의 금융정보를 요청했다고 하던데.
"H 그룹의 조 아무개 회장 관련이었다. 이번엔 아예 조 회장의 미국 대형 금융회사의 계좌번호를 알려주면서, 계좌 거래 내역과 잔고 등을 조사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A국가에서 받은 정보 사례 등의 이야기를 해가면서, 해당 금융회사에서 직접 발급한 서류로 주거나, 아니면 금융정보 조회 화면을 카메라로 찍어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 국내법에 어긋나는 불법이다."

- 앞선 대한항공 조씨 일가 조사도 비슷한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조씨 부부 재산 정보의 경우 금융계좌 전체 잔액을 조사해서, 일반적인 수준으로 금액 정보를 알아보는 것은 미국 안에서도 가능하다. 그런데 특정 금융회사의 특정 계좌 거래 내역이나 잔액 등을 조사하거나, 촬영하는 것은 미국 내 금융정보와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장씨 일행에 계속 이야기를 했고, 의뢰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대표는 "결국 양쪽의 입장 차이때문에 두 번째 계약은 이뤄지지 못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나 역시 미국 내 파트너들과의 신뢰가 크게 손상되는 등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토로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장씨 일행이 국세청 직원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또 업무의 특성상 의뢰인에 대한 구체적인 신상정보를 알려고 하지 않는 것도 관행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장씨 스스로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노출하면서 국세청 직원이라는 신분이 드러났다. 

- 국세청 직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어떻게 했나.
"이대로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정부기관이 민간기업을 앞세워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하겠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장씨가 앞서 맺은 계약 자체가 '제 3자' 명의로, 사실상 허위계약서를 작성하게 된 것이다. 이 자체도 사문서 위조가 될 수 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 국세청은 해외에 자체 정보요원을 두고 있는데, 왜 굳이 이런 무리수를 두면서 국내 민간업체를 이용하는 걸까.
"사실 나도 궁금하다. 아무래도 해외쪽에서의 정보 수집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고, 장씨 등도 나에게 여러 차례 '힘들다'고 했다. 또 한편으론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거액을 들여가며 무리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이것이 미국에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우리쪽에게도 탈법적인 요구를 끊임없이 해왔다. 단순히 역외탈세 성과를 올리기 위한 것으로 보기엔 여러 의구심이 들긴했다."  

- 국세청에선 '역외탈세 조사를 위한 통상적이고 정당한 정보수집 활동'이라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통상적이고 정당한 것'이라는 건가. 차라리 장씨 일행이 처음부터 국세청 직원이라는 소속을 밝히고, 떳떳하게 조사를 요청했으면 오히려 좀 더 나은 결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재벌 일가들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행위 등에 대해선 단호하게 나서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정부기관이 민간기업을 앞세워서,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민간인을 사찰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지 않나."

김 대표는 지난 11일 장씨를 만나, 국세청의 공식적인 사과 요구 등을 담은 회사의 입장을 전달했다. 그는 "국세청의 사과와 함께 관련 당사자에 대한 감사 등을 요구했지만, 아직 그쪽으로부터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세청, "정상적인 정보수집 활동... 특수활동비에서 정당한 집행"

세종시 국세청 현판.
▲ 정부세종청사 국세청 세종시 국세청 현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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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세청은 역외탈세 조사과정에서의 불법 논란에 대해 "법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인 활동"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해외탈세 정보 수집과 관련된 구체적인 활동 등에 대해선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박만성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세계 많은 나라에서 세원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언더커버(Under-Cover, 신분을 노출하지 않은 채 활동하는 요원 등을 일컫는 말) 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물론 법에서 보장하는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불거진 장아무개씨 등에 대해선 "해당 직원의 존재 여부 자체를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박 관리관은 답했다. 이어 그들이 라이언앤폭스 등과 맺은 계약과 현금 지급 등에 대해서도 "개별적인 정보활동에 대해서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대신 국세청의 정보 수집 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 등은 특수활동비 등으로 정당하게 집행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의 역외탈세담당관실은 지난 2011년에 만들어졌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통한 세원 발굴'이라는 국정 목표가 나오면서, 국세청은 기업인과 재산가의 역외탈세를 집중적으로 조사, 집행하는 조직을 확대 개편했다. 이미 해외 10여 개국에 정보원을 20여 명을 파견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실제 이들 해외 정보 요원들이 수집한 탈세 혐의 정보의 질이 그리 높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태그:#국세청, #역외탈세, #라이언엔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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